황인환의 <시(詩)와 함께하는 마음공부> (4)

[정신의학신문 : 여의도 힐 정신과, 황인환 전문의] 

 

고통과 두려움 - 죽어서도 버리지 못할 그리움
: 울리히 샤퍼의 ‘하루밖에 살 수 없다면’ 

 

고통과 두려움이 일상이 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고통과 두려움을 벗처럼 이웃처럼 여기면서 평생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즐겁고 반가운 일보다는 그렇지 못한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현재 가장 큰 고통과 두려움의 대상은 코로나19입니다.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무방비로 코로나바이러스 앞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세계 최강대국으로 과학기술은 물론 보건의료 분야에서도 제일 앞서간다고 여겼던 미국에서는 600만 명에 이르는 확진자가 발생했으며, 지금도 매일 수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습니다. 

한때 방역 모범 국가로 꼽히며 코로나 사태에 비교적 잘 대응하는 듯 보였던 우리나라는 최근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다시금 위기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매일 수백 명의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어느덧 전체 확진자 수가 2만 명에 육박했고, 사망자도 3백 명을 넘어섰습니다. 주말과 휴일에도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가길 꺼립니다.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 학생은 온라인으로 수업하고,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를 해야 할 형편입니다. 해외는 물론 국내 여행도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재채기라도 할라치면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에 시달려야 합니다. 팬데믹이 집단 공포와 히스테리로 확산하는 느낌입니다.

 

울리히 샤퍼는 독일 시인입니다. 사진작가로도 활동했죠. 그의 시는 대단히 서정적이어서 한국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중 ‘하루밖에 살 수 없다면’이라는 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요즘처럼 마음이 울적하고 심란할 때 잔잔한 울림과 위로를 주는 시입니다. 
 

하루는 한 생애의 축소판,
아침에 눈을 뜨면
하나의 생애가 시작되고
피로한 몸을 뉘어 잠자리에 들면
또 하나의 생애가 끝납니다.
만일 우리가 단 하루밖에 살 수 없다면, 

나는 당신에게
투정 부리지 않을 겁니다.
하루밖에 살 수 없다면
당신에게 좀 더 부드럽게 대할 겁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불평하지 않을 겁니다.
하루밖에 살 수 없다면
더 열심히 당신을 사랑할 겁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모두 사랑만 하겠습니다. 

그러나 정말 하루밖에 살 수 없다면
나는 당신만을 사랑하지 않을 겁니다.
죽어서도 버리지 못할 그리움
그 엄청난 고통이 두려워
당신의 등 뒤에서
그저 울고만 있을 겁니다.
바보처럼. 

 

사진_픽셀

 

하루하루가 쌓여 인생이 됩니다. 오늘 하루가 없다면 인생도 없겠죠. 

시인은 우리 인생에 단 하루만 남아 있다는 심리적 부담을 줌으로써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지 고민하게 만듭니다. 아마도 그만큼 소중한, 한 번뿐인 삶이라는 의미가 들어있겠죠. 

하루만 살 수 있다고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니, 나는 좀 더 잘살아 보기로 합니다. 하루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잘하자,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 잘하자, 불평도 미움도 없이 사랑하며 살자, 라고 다짐합니다. 

그러다 정말, 지금 딱 하루밖에 안 남았으니 더 몰아붙이자, 이렇게 생각이 달라집니다. 조금 더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두려움이 느껴지면서 나를 보호하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만을 생각하기에는, 이건 나에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닌가 싶어 스스로 내 편이 되어 주기로 합니다. 고통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생각해도 이건 정말 바보 같지만, 사랑하지 않고 뒤에서 바라보기로 선택합니다.

시인은 하루, 정말 하루라고 우리를 몰아세우며, 솔직한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마지막에 가면, 결국 내가 나를 챙기고, 내 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을까요?

 

요즘 우리는 참 힘들고, 그만큼 더 소중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꼭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우리를 둘러싼 고민으로부터 힘들지만, 항상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합니다. 가끔은 선택이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나를 잘 돌봐줘야죠. 나를 돌봐준다, 나를 챙겨준다, 나를 소중하게 대해준다, 언뜻 들으면 당연한 말인 것 같지만, 돌아보면 그런 선택을 잘하지 못하며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사회는 늘 뭔가를 쫓아 달려가라고만 하기에, 나를 챙겨준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살죠. 가혹할 정도로 자신을 몰아붙이고, 내 편이 되어 주기보다는 내가 힘들더라도 그 무엇인가를 위해 질주하며 사는 것에 만족을 느끼려 합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할 수 있습니다. 한번, 내가 너무나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누군가를 떠올려볼까요? 그리고 그 누군가가 지금 내 상황에 놓여 있다면, 너무나 소중한 그의 마음이 편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그리고 그가 괜찮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의 편에 서서 괜찮다고 이야기해 줄 겁니다.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도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 하루 남은 오늘인 것처럼, 한 번뿐인 삶을 살아가며, 고민되거나 힘들 때마다 내가 내 옆에 서서, 내 편이 되어 줌으로써 나를 소중히 여기는 선택을 해나가는 것이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나를 편안한 상황으로 옮겨줄 수도 있고, 또 어떨 때는 나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이 되면 고통을 감내하며 무언가를 해보자 할 수도 있겠죠. 어떤 방향으로 가든 선택의 기준이 나를 위함이라면, 오늘 하루의 소중함을 잘 지켜 갈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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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의도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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