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함께하는 마음공부] 알프레드 디 수자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정신의학신문 : 여의도 힐 정신과, 황인환 전문의]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디 수자가 쓴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시입니다. 유명한 시죠. 워낙 잘 알려져 외는 분도 많을 겁니다. 2005년 봄 류시화 시인이 펴낸 시집에 소개됨으로써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시처럼 사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전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좋으면 웃고 슬프면 우는, 자기감정에 충실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상처 받을 걸 두려워하지 않고 나와 관계된 모든 사람을 마음껏 사랑하며 살 수 있을까요? 주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흥겨우면 노래하고 할 말 있으면 하고 사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즐겁게 열심히 일하지만, 돈을 목적으로 삼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매일매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전부 이 시처럼 살 수 있다면 세상은 파라다이스가 될 겁니다. 천국이 따로 없겠죠. 아마 정신과 의사가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어쩌면 승려나 신부나 목사 같은 성직자도 직업을 잃게 될지 모릅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시처럼 사는 건 불가능합니다. 역설적이지만 그런 까닭에 많은 사람이 이 시를 좋아하고, 이 시를 통해 위로받고, 이 시를 외면서 눈물짓는 겁니다. 좋은 시 한 편은 그렇게 소리 없이 다가와 연약하고 불완전한 우리를 보듬고 등을 두들겨 줍니다.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말이죠.
 

사진_픽사베이


이 시를 쓴 시인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그녀의 삶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미국에서 태어난 그녀는 여섯 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힘든 시절을 보내다가 열여덟 살 때 열차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시련을 겪었다고 하네요. 여러 차례 척추 수술을 받은 끝에 다리를 절단하는 고통까지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 고통과 싸우느라 모르핀 중독에 시달리기도 했답니다. 긴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그녀는 마흔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과 이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수 없으나 꽤 험난한 삶을 살다 간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한 사람에게 이토록 많은 고난이 닥칠 수 있는지 가슴 한편이 먹먹하면서도, 그렇게 힘겨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 쓴 시가 어찌 이리 아름답고 지혜롭고 자유로운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눈물이 핑 돌만큼 말이죠.

시인이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남부러울 거 없이 누리며 살다가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세상을 떠났다면 이 시가 우리에게 애잔한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상처가 뭔지, 고독이 뭔지, 궁핍이 뭔지, 고통이 뭔지 모른 채 고고하게 살다 갔다면 이 시가 우리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을 수 있었을까요?

 

포기가 전염병처럼 번지는 사회, 알게 모르게 포기를 조장하고 권하는 사회,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삶에 장애가 너무 많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이에 맞서다 보니 많은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아예 상처 받기 전에 포기합니다. 연애도 포기하고, 결혼도 포기하고, 취업도 포기합니다. 이를 3포 세대라고 하죠. 5포 세대, 7포 세대를 지나 N포 세대까지 생겨났습니다. 꿈을 좇는 게 힘들고, 행복을 추구하는 게 버겁고, 마음껏 사랑하는 게 어렵다고 해서 이 모두를 포기하면 사는 게 편안해질까요?

포기는 해답이 아닙니다. 포기한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사라지거나 마음이 비워지는 게 아닙니다. 또 다른 생채기가 생기고, 온갖 잡념들이 엄습합니다.

시인은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아서 사랑하라는 게 아닙니다. 상처 받게 될 걸 몰라서 사랑하라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상처 받게 될 걸 알지만, 상처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지만, 사랑하라고 하는 겁니다. 상처 받으면서도 사랑하는 게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상처 받게 될 게 두려워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사랑하는 게 더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는 안전지대보다는 사랑이 있는 위험지대가 의미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오랫동안 나는 이제 곧 진정한 삶이 시작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내 앞에는 언제나 온갖 장애물들과 급하게 해치워야 할 사소한 일들이 있었다. 끝나지 않은 일과 바칠 시간과 갚을 빚이 있었다. 이런 것들을 모두 끝내고 나면 진정한 삶이 펼쳐질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마침내, 나는 깨달았다. 그런 장애물들과 사소한 일들이 바로 내 삶이었다는 것을.”

진정한 삶은 언젠가 마주하게 될 미래의 시간이 아닙니다. 장애를 다 치우고, 상처가 다 아문 뒤에 멋지게 맞이할 먼 앞날이 아닙니다. 장애를 맞닥뜨린 순간, 상처가 나서 아픔을 느끼는 순간, 사소한 일들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순간, 시간은 없는데도 마음의 빚은 차곡차곡 쌓여가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내 삶입니다. 춤추며, 사랑하며, 노래하며, 일하며, 오늘이 마지막 날인 듯 온 힘을 다해 살아가는 지금이 내게 주어진 시간입니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온전한 나로 살아갈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입니다.

 

내 삶 앞에 장애가 없고 상처가 없다고 행복한 인생이 되는 건 아닙니다. 힘들지 않은 삶이어야만, 혹은 무언가 이루어낸 이후의 삶만 의미 있는 게 아닙니다. 여전히 힘들고, 이룬 게 없다고 느끼지만, 묵묵히 참으면서 꾸준히 걸어가는 오늘 하루가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하루를 살았다는 만족감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힘겨워도 포기하지 않을 때, 매 순간 자신을 잃지 않고 온전한 나로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 춤출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노래할 수 있고, 일할 수 있고,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갈 수 있을 때, 작지만 비로소 행복한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막연함은 불안함을 낳습니다. 앞날이 확실한 행복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미래는 불확실하기에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하면 항상 막연하고 불안합니다. 그 불안함이 현재의 내 모습에까지 번져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가끔은 오늘 하루 뭘 할지, 이번 주에 뭘 할지 정도로 나를 가깝게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해 먼저 생각해보고, 여기에 집중하면서 살면 어떨까요? 하루하루 만족감을 느끼며 말이죠. 

매일 힘들지 않고, 긍정적인 느낌으로 차 있는 마음만을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힘든 일만 골라 피할 수도 없고, 힘들지 않게 넘겨 버릴 수도 없지요. 힘든 마음을 감내하면서 오늘 내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차분히 해나간다면 우리는 건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하루를 보낸 후에 스스로 잘했다고 말해주고, 잘했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만족감이 채워지다 보면,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 서서히 걷히면서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만족스러우니 먼 앞날도 만족스럽겠지 하는 마음으로 미래를 바라보게 될 겁니다.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를 원문으로 한번 읽어 볼까요? 쉬운 단어로 쓰여 있어 읽기 어렵지 않습니다. 영어로 읽을 때 느낌이 더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어때요? 희미했던 내 모습이 점점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지 않나요?

Dance, like nobody is watching you.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Sing, like nobody is listening you.
Work, like you don’t need money.
Live, like today is the last day to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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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의도힐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저서 <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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