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현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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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소정 씨는 중요한 가족 모임에 30분이나 늦은 남편 때문에 속이 상했다. 지각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퇴근 후 데리러 온다고 해놓고 완전히 까먹는 등 약속을 완전히 잊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남편은 상대의 말을 귀 기울여 잘 듣지도 않으니, 덤벙대고 실수도 잦고 직장에서도 맨날 혼나는 눈치다. 이번엔 또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내가 직장 상사라도 자르고 싶을 것 같다.

남편은 한 달 전에도 충동적으로 수십만 원짜리 게임기를 덜컥 사버리기도 했다. 보나마나 저것도 몇 번 안 만지고 처박아둘 게 뻔하다. 집은 충동적으로 구매한 후 금세 흥미를 잃고 방치된 것들로 너저분하다. 만들다 만 조립가구, 창고에 자리만 차지하는 레저용품, 음악 장비. ‘저 사람은 생각이라는 게 없나?’ 화가 치민다. 이번 달 카드값은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그러다 보니 소정 씨는 결혼 초에는, 나와의 약속을 매일 잊어버리니 남편에게 나라는 존재가 이거밖에 안되나 싶어, 부부싸움도 잦았다. 수시로 약속을 잊지 않았는지 챙기고, 잔소리하고, 함부로 물건을 사대지 않는지 간섭했다. 기가 막힌 것은 남편이 적반하장이라는 점이다. 자기를 애 취급하고 잔소리를 퍼붓는다며 화를 내서, 차라리 건드리지 말아야지 하는데도 자꾸 싸우게 된다. 소정씨는 이런 결혼생활이 외롭고 지긋지긋하다. 다시 태어난다면, 이런 사람은 절대 만나고 싶지 않다. 아니, 아예 결혼이라는 걸 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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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도 할 말은 있다. 남편으로선, 아내가 너무 비난하고 잔소리하고 간섭하는 느낌이 든다. 뭘 하든 부인을 만족시키는 일은 불가능할 것 같다. 동등한 성인이 아니라 마치 애 취급을 받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슬금슬금 회피하게 된다. 부인이 제발 좀 마음을 편히 가지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일을 멈춰주었으면 좋겠다.

아내도 불행하고, 남편도 불행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남편이 보여주는 모습은 전형적인 성인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로 보인다. 성인 ADHD는 직업적, 경제적 문제만이 아니라 관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반복되는 실수, 충동적인 소비, 뜻대로 안 될 경우 분노 폭발, 배우자의 감정에 공감하기 어려움 등 성인 ADHD의 증상들은 행복하고 화목한 부부관계를 방해하는 특성들만 모아 놓은 것만 같다.

성인 ADHD의 특성이 강한 배우자와 함께 산다는 것은 너무나 슬프고 버거운 일일 수도 있다. 그래도 이 상황이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조언과 마음가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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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잔소리는 해롭다. 잔소리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말한다. 잔소리는 순식간에 부부 모두의 감정을 고조시켜 최악의 상황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잔소리는 줄일수록 좋다.
 

2. 대신, 말보다 실질적인 조치를 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약속 시간을 자주 잊는다면, 말로 하기보다 당일 아침이나 약속 직전에 문자를 보내는 것이 좋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스케줄러를 사용하거나 알람을 맞추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충동적인 소비가 많다면 한 달에 취미생활에 얼마씩 지출할지 합의하고, 한도를 넘으면 다음 달 한도를 깎는 방법이 있다. 
 

3. 어조도 중요하다. 배우자와의 관계에 지친 아내(혹은 남편)는 그동안 쌓여 온 감정이 있기에 건네는 말 한마디가 날카로워지기 쉽다. 마치 아랫사람에게 하는 지시처럼 들리기도 한다. 비난이 섞인 말을 들은 배우자는 마치 사춘기 자녀처럼 하려던 행동도 하고 싶지 않아진다. 배우자는 자녀가 아니다. 일방적인 지시보다는 협조를 요청하거나, 부탁, 협상하는 것처럼 동등한 상대를 대하듯 하는 것이 서로 감정을 상하지 않으면서 효과적으로 요구하는 방법이다. 
 

4. 눈앞에 벌어진 배우자의 잘못을 비난하기보다, 배우자의 잘못으로 인한 내 깊은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사놓고 쓰지도 않는 저 텐트와 등산용품이 얼만지 알아? 도대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라고 말하면, 100% 분노가 섞인 변명이 돌아올 뿐, 다음 달에도 충동적인 소비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대신에 "당신의 충동적인 소비 때문에 이번 달 아이 학원비가 부족할 것 같아 너무나 걱정이 돼."라고 말한다면, 남편이 충동적인 소비를 하려는 순간 걱정하는 배우자의 모습이 떠오르며 조금이나마 주저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5. 입장 바꿔 생각하기를 가끔 사용하면 효과적이다. 내게 중요한 약속시간에 남편이 30분 늦었을 때 "왜 늦었냐?"라며 따지고 화내기보다, "당신에게 중요한 약속시간에 내가 30분 늦는다면 당신도 아주 화나겠지? 약속시간을 잘 지켜주기 바라."라고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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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배우자의 잘못을 비난하지만, 때로는 나 자신도 비슷한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다. 나 자신도 모범을 보이면서, 배우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또한, 내가 잘못하고도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 상대도 나중에 잘못을 저지르고도 인정하지 않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내가 잘못했을 경우 나도 잘못을 인정하고, 상대가 잘못했을 경우에는 상대에게도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좋다.
 

7. 배우자가 충동적인 행동으로 인해 좋지 않은 결과를 겪게 된 경우, 가능한 한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부부는 경제적 공동체라 남편이 저지른 사건의 영향이 아내에게도 미치기 때문에, 남편이 경제적인 사고를 저지르고 아내가 뒤치다꺼리를 하는 패턴이 평생 반복되는 가정이 있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자신이 겪음으로써 스스로 충동성을 조절하는 자제력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다.
 

8. 이런 배우자의 문제행동은 결코 단시간에 고쳐지지 않는다. 어쩌면 평생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마법처럼 바뀌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꾸준히 노력하면서 문제가 조금씩 줄어드는 것은 가능하다.
 

​9. 혹시 나 자신이 우울하거나 예민한 것은 아닌지, 또 눈높이가 너무 높은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평생을 우울하거나 너무 예민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그 상태를 정상으로 느끼면서, 다른 사람이 오히려 너무 부주의하고 실수가 잦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0. 자신이나 배우자의 문제가 오랜 기간 상당히 심각하다고 느껴진다면,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여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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