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슬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38세 사업가 기철 씨는 부인의 성화에 못 이겨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실에 들어왔다. 남자가 일하는 게 힘든데 술 좀 마실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상대가 납득할만한 상황 설명 없이 다짜고짜 화를 내며 이야기해 당황스러웠고, 개인적 거리 유지 없이 얼굴을 들이밀어 다소 위협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부인은 이런 모습에 지친 듯 무표정한 표정으로 먼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기철 씨는 부인이 얼마나 예민하고 짜증스러운 사람인지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최근 진행 중인 사업에 관해 이야기하고, 내용이 채 끝나기도 전에 느닷없이 정신과에 오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등 주제가 자꾸 바뀌어 정신이 없었다. 말의 속도도 빠르고 목소리도 컸으며, 아내가 하는 말을 끊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였다.
부인은 남편이 술만 먹고 들어오면 욕을 하고 집안을 시끄럽게 해서 술을 자제해 주길 바라지만, 싸워도 보고 애원을 해봐도 소용이 없다며 눈물지었다.
기철 씨는 결혼 전부터 한 가지 직업을 갖고 꾸준히 일해 본 적이 없었다. 첫 회사는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인 컴퓨터 프로그래밍 능력을 살려 중소기업에 취직했는데 단조롭게 반복되는 회사 일에 쉽게 싫증을 느끼며 지루해하였고, 반복되는 사소한 실수에 상사와 트러블이 생겨 욱하는 마음에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이후 또 다른 회사들에 취직했지만 역시 비슷한 상황으로 그만두기를 반복하다 얼마 전 지인의 권유로 사업을 시작하였다.
부인은 꾸준히 일하지 못해 생활비를 제대로 주지 않는 남편 때문에 살림하는 것이 힘들었는데, 준비 기간도 없이 갑자기 사업을 하는 바람에 대출까지 생기고 일도 잘 안 되는 것처럼 보여 막막하고 불안하였다.
기철 씨는 늘 이런 식이었다.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갑자기 통보하듯 저질렀고, 충동구매를 일삼았으며, 어떤 것을 하든 성격이 급하고 참지를 못했다. 성격이 기분파여서 주변에도 비슷한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 친구들과 어울려 걸핏하면 술을 마시고 사고를 치기 일쑤였다.
쉬는 날이면 집에서 게임만 주야장천 잡고 있었고, 부인이 잔소리해 겨우 같이 장이라도 보러 가는 길엔 행인과 사소한 시비가 붙어 싸우기도 하였고, 계산 줄을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차에 가 있는 경우도 많았다. 부인은 이렇게 한 가지 일을 진득이 하지 못하고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성인 ADHD가 의심된다고 했다.
한참 시간이 지나 감정이 가라앉은 기철 씨는 그제야 일을 할 때 자꾸 미루게 되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아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집중하기 어렵다고 토로하였다. 중, 고등학교 때에도 수업 시간에 딴생각을 하거나 멍하게 있을 때가 많았으며, 숙제를 안 해버린 경우도 많았다고 하였다. 늘 말이 많고 장난기가 넘쳐 주변에 친구가 많았지만 사소한 일로 욱해서 싸우는 경우가 잦았고 지금까지 연락하는 절친은 없다고 하였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는 주의력 결핍과 과잉행동, 충동성을 주 증상으로 하는 질환으로 대개 소아청소년기에 진단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증상이 호전되기도 하거니와, 이러한 증상들을 평생 못 고치는 성격의 일부라고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는 경우도 많아서, 성인기에는 소아청소년기에 비해 ADHD 증상만을 가지고 진료를 받으러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은 편이다.
차라리 우울, 중독, 공황, 대인갈등, 불면 등 다른 증상으로 방문하였다가 ADHD 증상이 발견되거나, 중요한 시험을 앞두거나 직장 생활 중에 집중의 어려움, 건망증, 잦은 실수 등의 문제로 찾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기존에는 이런 문제를 흔히 개인의 성격 문제나 성실성, 능력의 문제로 생각해왔으나, 이제는 적절한 평가를 통해 성인 ADHD라는 것이 확인된다면, 치료를 통해 충분히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을 것이다.
* * *
정신의학신문 마인드허브에서 마음건강검사를 받아보세요.
(20만원 상당의 검사와 결과지 제공)
▶ 자세히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