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현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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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세 남성 M 씨는 여자친구와의 이별 이후 가슴 두근거림과 두통, 불면을 주소로 내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같은 곳에 자신이 오게 될 것이라고는 평생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안 올 수가 없었다고 하였다. 헤어진 전 여자친구와 교제한 지는 2년 정도 되었는데, 헤어졌다 만나기를 수차례나 반복했으며, 이번에는 정말 끝인 것 같다고 하였다.

사연을 들어보니 매번 헤어지는 이유가 똑같았는데, 별일 아닌데 자신이 너무 욱해서 화를 내는 것이 항상 문제였다. 순간 화가 나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벽을 치거나 물건을 던지게 되는데, 정신을 차리고 나면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고 한다. 용서를 비니 여자친구가 몇 차례 기회를 주었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여자친구에게 손찌검했기 때문에 결국 떠났다고 하였다.

M 씨는 두통과 불면 때문에 왔지, 원래 자신의 ‘욱하는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며, ‘어차피 사람 성격은 잘 안 변하잖아요? 약에 의존할 게 아니라 제 의지가 중요한 거지’라며 면담에 회의적이었다.

 

M 씨의 말이 맞다. M 씨의 문제가 ‘성격’ 탓이라면, 그것은 평생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성격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흔히 평생 잘 변하지 않는 사람의 행동 성향과 선택하는 스타일을 성격이라고 한다.

'비슷한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려 하는가?'

겁이 많은 사람은 안전한 선택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낯선 것을 선택하려 한다. 욱하는 사람은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공격적인 행동을 한다. 이런 것을 성격이라고 부른다. 겁, 호기심, 욱하는 성향, 끈기, 관심받으려는 성향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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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성격과 병의 차이는 무엇일까?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성격일까, 병일까? 집을 나설 때마다 문이 잠겼는지 4, 5번 확인을 한다면 성격일까, 병일까? 부부싸움을 하다 칼을 들었다면 이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성격일까, 병일까?

아마도 어떤 문제를 병이라고 하려면 당연히 정도가 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성격과 병을 구분하는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으며 애매한 측면이 많다. 하루에 손을 10번 씻는 것은 평소에는 과도하다고 볼 테지만, 감염성 질환이 유행하고 있을 때는 오히려 필요하다고 볼 것이다. 배우자에게 손찌검하는 것은 평소에는 문제라고 판단하겠지만, 배우자가 외도해서 때렸다고 하면 우리는 손찌검이 당연하다고 이해해줄지도 모른다.

이처럼 애매한 측면이 있지만, 세상에서는 치료 필요성에 대한 판단을 내리고 조치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진단기준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 고혈압의 기준은 140/90으로 하고, 지적장애의 기준은 지능지수 70으로 정하고, 걱정이 과도하면 불안장애라고 부르고, 과도하게 확인하면 강박장애, 과도하게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으면 우울장애, 과도하게 욱하면 충동조절장애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라고 부른다.

 

그러면 예민, 짜증, 화, 욱, 분노폭발, 감정기복, 공격적인 모습이 심하면 다 같은 병일까? 그렇지 않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비슷해 보여도 그 원인이 다를 수 있다.

1) 너무나 간절히 바라던 일이 뜻대로 안 됐다면, 이처럼 욱하는 것은 너무 당연할 수도 있다.

2) 화를 많이 내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불합리하고 억울한 상황의 문제일 수도 있다.

3) 학대나 큰 심리적 충격을 받은 사람이 불안해하며 피하기보다 오히려 화를 많이 내기도 한다(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4) 성격적으로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 자존심을 자극하는 말을 들어서 격분한 것일 수 있다(자기애적 성격).

5) 타인의 사랑과 관심이 매우 필요한 사람일 경우, 상대가 떠나려 하는 느낌을 받을 때 극심한 불안과 함께 심하게 분노할 수 있다(경계성 성격).

6) 어릴 때부터 매사 걱정이 끊이지 않던 사람인데, 걱정하는 일이 일어날 것 같으면 극도로 짜증을 내게 된다(불안장애).

7) 꼼꼼하거나 강박이 심한 경우에 예정대로 일 처리가 되지 않으면 엄청나게 분노 폭발할 수도 있다.

8) 우울증의 경우에도 우리는 흔히 우울해하고 무기력하기만 할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각종 신체 증상과 함께 짜증 내고 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9) 알콜중독의 경우도 혈중 알코올 농도가 떨어질 때 갑자기 버럭 화를 내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10) 평생 동안 성격이 강하고 욱해서 사람들과 잘 다퉜다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일 수도 있다. 이처럼 자주 욱할 경우 구분해봐야 할 가능성은 매우 많으며, 때로는 여러 가지가 겹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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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진단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흔한 이유는, '평생 그렇게 살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생 우울하게 산 사람은, 원래 인생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족들도 그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고, 고쳐야 할, 또는 달라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게 된다. 평생 불안하게 걱정하며 살아온 사람은 남들은 과도하게 생각하는 걱정을 당연하게 여긴다. 이 정도의 걱정을 정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욱하는 경우도, 남들이 보기엔 심각하다고 생각하는데 자신은 그냥 성격이고 정상이라고 판단하기 쉽다.

 

M 씨의 경우 추가 심리검사, ADHD 검사, 발달력 평가를 통해 확인해본 결과, '평생 욱하는 성격'이라고 말했던 부분은 ADHD로 진단되었다. 즉, 가벼운 성격의 문제라기보다 심각한 병의 수준이라는 것이고, 평생 변하지 않는 특성이라기보다 치료를 통해 나아질 수 있는 문제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그는 평소 쾌활한 성격에 소위 말하는 ‘인싸’였지만, 덤벙거리거나 깊이 생각지 않고 한 행동 때문에 일을 그르치고, 자주 욱해서 싸우는 바람에 잘 지내던 친구와 멀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충동적으로 소비하고, 과음하고, 직장에서 다투고 나와버리는 일도 잦았다.

M씨는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받은 후, 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직장에서도 전처럼 다투지 않고 안정적으로 다니고 있으며, 최근 만나기 시작한 이성과도 순조롭게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참고문헌

Barkley RA, Myrphy KR, Fischer M. ADHD in Adults: What the science says. Guilford Press: 2008. P245-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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