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약 오래 먹으면 머리 나빠진대"라는 이야기는 무척 흔하다. 특히 수면제 이야기가 나오면 한 번쯤은 듣게 되는 이야기이다. 수면제를 오래 먹으면 머리가 나빠지고, 치매에 걸리게 될 수도 있다고들 한다.

실제로 많은 환자 분들이 이런 우려 때문에 먹고 있던 약을 자의로 줄이거나 중단하기도 한다. 특히 노인 환자분들은 치매에 대한 걱정이 더욱 많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더욱 크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바보가 된다’, ‘기억력이 떨어진다’, ‘치매에 걸린다’ 같은 이야기들을 매일 주위에서 들어야 하는 것 자체가 장기간 약물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는 마음의 짐이 아닐 수 없다.
 

사진_픽셀


사실 일부 수면제의 기억력 저하나 인지기능저하 부작용은 이미 여러 차례 과거 연구를 통해 드러난 바 있다. 특히 항불안제로 사용되는 벤조디아제핀 계열 약물들이 그런 부작용의 주인공으로 집중적인 연구 대상이 되어 왔다. 수면제로 많이 사용되는 졸피뎀 같은 약물(Z-drug)도 마찬가지이다. Z-drug는 벤조디아제핀과 유사한 작용 기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런 약물들을 오랫동안 사용할 경우에는 실제로 약간의 치매 발병 위험성이 있을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 된 바도 있다. 심지어 무분별하게 오남용할 경우에는 의존성의 위험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벤조디아제핀 계열 항불안제들과 수면제(Z-drug)를 대부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하며, 그 유통과 보관을 무척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 전 발표된 한 대규모 연구에서는 그동안의 우려와 다른 결과를 보여주었다. 미국 정신의학회에 게재된 이 연구에서는 약 23만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장기간에 걸쳐 약물의 부작용 위험성을 조사했다. Z-drug과 벤조디아제핀 계열의 항불안제를 사용하는 경우를 모두 통틀어 조사하였으며 1996년부터 2015년까지 약 20년에 걸친 기간 동안 코호트 연구를 실시하였다. 연구 결과는 수면제와 항불안제가 모두 상당히 안전함을 보여주었다.

연구에 참여한 환자들이 대략 6년 정도 비교적 장기간의 약물치료를 받았음에도, 항불안제와 수면제 복용은 치매 발병과 그다지 관계가 없었다. 그보다 더 오랜 기간 누적하여 약을 먹은 경우나, 다양한 종류의 수면제를 먹은 경우에도 약물은 치매의 발병과 연관성이 없었다. 심지어 일부 결과에서는 약물 복용 자체가 오히려 약간 치매 예방 효과를 나타내기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적절한 약물치료로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치료한 것이 치매 발병을 늦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항불안제와 수면제의 기본적인 약물 효과는 중추신경계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전반적인 긴장을 줄이고, 흥분을 가라앉히는 것이 치료의 목적이다 보니, 약물 복용으로 인해 약간의 졸음이나 이완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일상생활에서 졸림과 이완은 때에 따라 '멍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또는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집중하고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긴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작용은 약물의 효과가 의도했던 것보다 과도하게 나타나거나, 의도보다 길게 남았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불안감만 가라앉혀줄 정도로 진정해야 하는데 그보다 더 과하게 진정되거나, 밤에만 잘 자도록 해야 하는데 낮까지 졸리게 만들거나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사용 가능한 수면제와 항불안제의 종류는 무척 다양하고 각 종류들마다 작용시간과 작용수준이 모두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약물을 바꾸거나 용량을 조절함으로 위와 같은 부작용은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증상이 약물의 효과에 따른 부수적인 증상이지 뇌 자체에 직접적인 손상을 주어 치매를 유발하는 작용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병원에서 처방받을 수 있는 약물은 모두 수많은 임상 연구를 거쳐 그 안전성이 입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불안제와 수면제의 후유증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안감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23만명을 20년간 관찰한 이번의 대규모 임상 결과가 보여주듯, 이 역시 충분히 안전한 약물임이 입증되었다.

모든 약물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약국에서 쉽게 살 수 있는 타이레놀이나 베아제 같은 약물만 하더라도 부작용 항목이 한 페이지 가득이다. 그중에는 생명이 위독할 수 있는 부작용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부작용에 대한 걱정으로 약물을 과도하게 거부하고 불편함을 억지로 꾹 참거나,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약 대신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잠을 잘 자기 위해 약 대신 술을 마시는 것 또한 올바른 선택이 아니다. 오히려 술이야말로 더욱 심각한 부작용이 많고 효과도 훨씬 덜한 수면제이자 항불안제가 아니던가.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기간의 약물 치료야 말로 건강을 지키는 가장 안전한 방법임은 의심이 여지가 없다.

안전성이 충분히 검증된 약물로 쉽고 빠르게 치료할 수 있는 병을, 과도한 걱정 탓에 놓치고 있다면 부담 없이 전문가와 먼저 상담해볼 것을 권유하고 싶다.

 

 

출처

Merete Osler, Associations of Benzodiazepines, Z-Drugs, and Other Anxiolytics With Subsequent Dementia in Patients With Affective Disorders,Am J Psychiatry 2020 Jun 1;177(6):497-505

Stranks EK, Crowe SF: The acute cognitive effects of zopiclone, zolpidem, zaleplon, and eszopiclone: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J Clin Exp Neuropsychol 2014; 36:691–700

GhoneimMM,Mewaldt SP: Benzodiazepines and human memory: a review. Anesthesiol 1990; 72:926–938

Lucchetta RC, da Mata BPM, Mastroianni PC: Association between development of dementia and use of benzodiazepine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Pharmacotherapy 2018; 38:1010–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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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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