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지연의 <오늘, 내 마음 가는 대로> (5)

[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염지연 전문의] 

 

올여름 장마는 유난히 길었다. 사상 최장기간 이어진 장마였다. 이로 인한 피해 역시 대단히 심각했다. 각종 긴급 뉴스에서는 연일 홍수로 벌어진 사건 사고를 다뤘다. 온 국민은 코로나 사태 와중에 발생한 수해의 심각성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복구 지원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수해는 실제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처절한 공포와 불안을 동반한다. 

“평소와 다름없이 자고 있는데, 갑자기 물이 방 안으로 밀려들어 기겁했습니다.”
“급하게 도망치느라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했어요. 가축들이 축사에 그대로 있는데…….” 

자칫 목숨을 잃은 뻔한 위급한 와중에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이재민들의 사연은 하나하나 눈물겨운 것들이었다. 수해 피해를 복구하는 일은 민관이 힘을 모아 신속히 진행되어야겠지만,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부랴부랴 대피한 사람과 급히 몸을 피하느라 가족을 두고 나올 수밖에 없던 사람이 후에 느끼게 될 불안과 공포 그리고 죄책감은 이전처럼 복구하기 쉽지 않은 정신적 재앙이다. 이에 더해 수해를 입은 주민들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다가 순직한 소방관에 관한 소식은 가족과 동료들에게 큰 충격과 슬픔을 주었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충격적이고 심각한 외상, 즉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이 보이는 정서적 고통과 손상을 뜻한다.

‘외상’에 해당하는 건 어떤 것일까? 죽음, 심각한 부상, 성폭력과 같이 위협적이고 실제적인 사건에 노출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직접 경험했을 때는 물론이며, 우연히 그와 같은 현장을 목격하거나 가족 혹은 지인이 그런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게 된 경우에도 해당한다. 한 번의 충격적인 사건 외에도 상당 기간 계속해서 신체적 또는 정서적 학대를 당하는 등 만성적으로 외상을 입은 경우도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사진_픽사베이


외상을 겪은 모든 사람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되지는 않는다. 충격적인 일을 겪은 뒤에는 누구나 정서적 고통을 느낄 수 있지만, 1개월 넘게 이어지는 특징적 양상의 고통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본다. 비슷한 일을 경험했으나 한 달을 넘지 않는 증상은 ‘급성 스트레스 장애’로 구분한다.

외상을 경험한 적 있는 사람이 우울감을 느낄 때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진단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이 경우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보다 우울증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진단적 구분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판단이 필요할 수 있다. 

외상을 경험한 개인의 생물학적, 기질적, 환경적 요인도 영향을 미친다. 직간접적으로 사고를 체험한 모든 사람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에 외상을 경험한 적이 있거나 성격적 취약성이 있을 때, 또는 최근 스트레스가 심했거나 가족 등의 지지기반이 약한 경우가 더욱 위험하다. 대부분 사람에게는 별로 심하지 않은 사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외상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가장 필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공감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거야.”
“그만 잊어버려. 산 사람은 살아야지.”

이런 식의 말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면 빨리 안정감을 가질 수 있도록 대처방안에 관해 고민해야 하고, 누군가를 상실했다면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과 상실의 슬픔을 나누고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 무작정 외면하고 회피하거나 그냥 덮어버리기보다는 외상 사건에 잘 대처하고 치유할 수 있도록 서로를 격려하고 도와주는 게 좋다.

 

구체적인 치료방법으로는 크게 정신치료와 약물치료로 나눌 수 있다.

정신치료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은 인지행동치료다. 정신적 외상과 관련된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돕는 방법이다. 환자 스스로 자신의 어떤 생각이 불안과 혼란을 일으키는지 알게 하고, 분노나 공포 등의 감정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익히게 된다.

사고 후 불가항력적 결과에 대해 불필요한 죄책감을 가질 수도 있다. 수해로 가족들이 변을 당하고 혼자만 살아남았을 경우, ‘내가 무리해서라도 가족들을 먼저 살렸어야 했는데 혹은 차라리 내가 변을 당하더라도 가족들을 구했어야 했는데’ 하면서 자책할 수 있다. 사고의 결과가 본인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사고 기억에 대해 공포를 덜 느끼게 하는 노출치료, 여러 피해자가 비슷한 경험을 나누며 새로운 관계 속에 아픔을 치유하는 집단치료, 부부나 가족 전체가 참여해 충분히 대화하면서 스트레스와 고통을 공유함으로써 치료에 도달하는 부부 및 가족치료 등도 효과적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를 위해 우선 선택할 수 있는 약물은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차단제(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 SSRI) 계통의 우울증 치료제다. 우울증 치료제는 공황장애, 강박장애, 불안장애, 생리전증후군 등 여러 질환에 효과가 있는 것이 증명되었다. 아울러 SSRI는 불안, 공포, 충동성 경향 등의 증상 조절에도 효과를 나타낸다. 

 

외상을 다루는 일은 의외로 어렵고 복잡하며, 당사자와 주변인 모두가 고통스러울 수 있다. 혼자서 해결하기가 어렵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국가적 재난 상황에 대해서는 2018년 4월에 정식 개소한 국가트라우마센터에 직접적인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트라우마 전반에 대한 다양한 정보도 제공하고 있으므로 참고해 볼 만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에게는 외상으로 인한 아픔을 숨기거나 피하지 않는 것이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고통받고 있는 이에게 지지와 공감을 보내는 것이다. 충격적이고 슬플수록 좀 더 적극적으로 증상을 다루고 어려움을 나누며, 격려를 보낼 수 있는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꿈과 희망은 나눌수록 커지고, 고난과 괴로움은 나눌수록 작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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