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지연의 <오늘, 내 마음 가는 대로> (4)

[정신의학신문 : 광화문숲 정신과, 염지연 전문의] 

 

- 흉악범 중에는 왜 조현병 환자가 많나요?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흉악범이란 말의 정확한 뜻은 뭘까? 사전적 정의는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다. 흉악은 성질이 악하고 모질다, 모습이 보기에 언짢을 만큼 고약하다는 뜻이다. 한자로 ‘흉(凶)’은 사람을 해치거나 죽이는 걸 의미하고, ‘악(惡)’은 나쁘고 더럽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죄를 지은 사람 중에서도 유독 악하고 모질게 사람을 해하거나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를 흉악범이라고 일컫는다. 동정이나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흉악범에 관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심심찮게 같이 따라붙는 단어가 있다.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이다. 최근 매스컴을 뜨겁게 달군 흉악범에 관한 기사 몇 가지를 살펴보자.

 

얼마 전 지방에 있는 한 교회에서 새벽 시간에 어떤 40대 남자가 둔기를 마구 휘둘러 50대 여성 한 명이 숨지고 30대 남성 한 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경찰에 붙잡힌 범인은 살인과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그는 교회에서 잠을 자고 있던 두 사람에게 느닷없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들은 잠을 자던 중 공격을 받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범인은 조현병 환자로 정신과 치료 이력이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범행 동기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자신의 어머니를 흉기로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자에게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20년 동안이나 조현병 치료를 받아온 그는 어머니로부터 조현병약을 먹으라는 말을 들은 후 기분이 상해 있던 중 “북악스카이웨이에 가지 않으려면 엄마를 죽여라!”라는 환청을 듣고는 어머니를 흉기로 수십 차례나 찔러 숨지게 했다. 범행 2개월 전부터 약물치료를 중단해 망상 증세 등이 있었다고 파악된 범인에게 법원은 조현병으로 인해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에는 경악스러운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방에 거주하는 한 60대 남성이 한밤중에 자신이 세 들어 살던 집에 불을 질러 관리인을 살해한 것이다. 범인은 밀린 월세를 독촉받자 화를 참지 못해 불을 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불이 나자 집 관리인은 밖으로 빠져나오려 했지만, 범인이 문 앞에서 흉기를 든 채 막고 서 있는 바람에 불길을 피하지 못해 목숨을 잃어야만 했다. 변호인은 범인이 알코올 의존 증후군과 조현병 치료 이력이 있는 심신미약자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살해 의도가 있었다며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조현병이 대체 어떤 병이길래 흉악범들이 스스로 조현병 환자임을 내세우는 걸까? 자신이 조현병을 앓았던 환자라는 걸 부각하면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로 취급되어 낮은 형량을 선고받거나 정상이 참작될 여지가 있어 범죄자들이 이를 악용하기 때문이다.
 

사진_픽셀


조현병은 과거 정신분열병이라 불리던 질환으로 사고, 감정, 지각, 행동 등 여러 측면에 걸쳐 광범위한 이상 증상을 일으키는 정신질환이다. ‘조현병(調絃病)’이라는 용어는 2011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정신분열병이란 병명이 사회적으로 이질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에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조현(調絃)’이란 현악기의 줄을 표준음에 맞게 고른다는 뜻이다. 조현병 환자의 모습이 현악기가 정상적으로 조율되지 못했을 때처럼 혼란스러운 상태를 보이는 것과 같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조현병의 증상은 크게 양성과 음성으로 나눌 수 있다. 양성증상은 망상, 환각, 파괴된 언어나 행동 등 겉으로 드러난 정신병적 증상을 말한다. 망상은 누군가 자신을 감시하거나 해코지하려 한다는 피해망상, 세상일이 자신과 연관되어 있다고 믿는 관계망상 등이 있으며, 환각 중에는 환청이 가장 흔하다. 앞뒤가 맞지 않고 엉뚱한 언어표현을 하거나 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는 것 역시 양성증상에 해당한다. 반면 음성증상은 행동이나 감정표현이 줄어들거나 사회적으로 위축되고 의욕이 저하되는 모습을 보인다. 양성증상보다 덜 심각해 보이지만 환자들의 삶의 질, 기능 수준과 연관성이 큰 중요한 증상이다.

 

조현병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오해는 조현병은 희귀한 질환으로 특별한 사람만 앓는 병이라는 것이다. 조현병의 유병률은 1퍼센트로, 이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앓는 흔한 병이지만 상당수가 치료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다. 국내 정신질환자의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률이 선진국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까닭이다. 캐나다는 46.5퍼센트, 미국은 43.1퍼센트, 벨기에는 39.5퍼센트, 뉴질랜드는 38.9퍼센트인데 반해 대한민국은 22.2퍼센트에 불과하다. 

두 번째 오해는 조현병 환자는 위험하므로 무조건 피하는 게 좋다는 것이다. 매스컴을 통해 뉴스를 접하면서 은연중에 ‘흉악범=조현병’이라는 등식이 자리 잡게 되자 가벼운 증세를 보이는 사람조차도 자신이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운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말았다. 사실 대부분의 조현병 환자들, 특히 만성화된 환자들은 오히려 두드러진 음성증상 탓에 공격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 수 있다. 안정적으로 잘 치료받으면서 조절되고 있는 환자들은 위험의 여지가 거의 없다. 조현병은 뇌 기능이 제대로 조율되지 않아서 발생한 질환일 뿐이다. 현악기의 줄이 너무 느슨해지거나 팽팽해졌을 때 제소리를 낼 수 없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줄만 잘 조율하면 얼마든지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다.

세 번째 오해는 조현병은 치료가 어려운 고질병이라는 것이다. 조현병은 10대 후반부터 30대까지 주로 발병한다. 병이 진행하면 뇌 기능이 떨어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손상이 심해진다. 따라서 일찍 치료할수록 뇌 기능을 더 잘 회복할 수 있다. 약물치료가 가장 중요하며, 심리치료나 행동치료를 병행하기도 한다. 상당수 환자는 증상을 부인하거나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에 보호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증상이 호전된 후 갑자기 약을 끊으면 재발률이 다섯 배로 높아지므로 의사와 상의 없이 약을 중단해서는 안 된다. 

 

조현병은 뇌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너무 많이 분비되는 것과 관련 있다. 도파민이 과다하면 망상과 환청 등을 유발한다. 많은 치료제가 이 도파민 수치를 낮추는 약물들이다. 한 가지 약물로 증상의 차도가 없는 경우에는 약을 바꾸거나 추가하기도 한다. 약물치료를 받은 사람 중 70퍼센트는 증상이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줄어드는 ‘관해’ 상태에 이를 수 있기에 약물치료는 매우 중요하다.

인간의 육체와 정신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와 오묘로 둘러싸인 존재다. 명품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함부로 다루거나 아무 데나 두지 않듯 우리의 육체와 정신도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최고의 악기처럼 소중히 여겨야 한다. 우리 삶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사랑과 행복이라는 이름의 호르몬으로 채워진다면 조현병은 충분히 극복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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