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 마음 가는 대로

[정신의학신문 : 광화문 숲 정신과, 염지연 전문의] 

 

아홉 살 소녀에 대한 계부의 학대 사건이 매스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소녀는 계부로부터 심한 학대를 당하다 극적으로 탈출해 잠옷 차림에 맨발로 도로변을 걷던 중 동네 주민에게 발견됐다고 한다.

경찰 조사에서 밝혀진 소녀에 대한 학대 사실은 충격적이다. 달군 프라이팬으로 손을 지지고, 욕조에 강제로 머리를 담그고, 밥은 하루 한 끼만 먹이고, 일을 시킬 때가 아니면 목이 쇠사슬로 묶인 채 다락방에 갇혀 지냈다고 하니 몸서리가 쳐질 정도다. 어디까지 사실인지 알 수 없으나 계부가 구속된 것으로 봐서 상당 부분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구조 당시 소녀는 눈 부위의 멍, 손과 발의 화상 등으로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고 전한다.

 

현재 소녀는 병원 치료를 마친 뒤 아동 쉼터에서 생활하면서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소녀를 위로하고 참모진에게 적절히 조치하라 지시할 정도로 이 일은 온 국민의 관심과 더불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왜 이런 일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것일까? 자신의 의붓자식 심지어 친자식에게까지 모진 학대를 가하는 부모의 정신 상태는 어떤 것일까? 학대에 시달린 어린아이가 받은 심신의 상처는 어느 정도일까? 과연 그 같은 상처와 트라우마는 완치되거나 잊힐 수 있는 걸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먼저 학대 부모에 대해 생각해 보자.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는 대개 아이에 대한 비현실적이고 부적절한 기대감이 있거나, 아이의 감정에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부모와 자녀 사이에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한 경우에도 학대로 이어질 수 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부모 스스로 어린 시절 학대의 피해자였거나, 사회경제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한 경우에도 가정 내 아동학대 발생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부모는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부모의 일부 혹은 소유물로 여겨,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거나 부모로서 아이에게 어떤 행동이든 할 수 있다고 잘못된 판단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부모 스스로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아이를 훈육하기 위해 체벌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가정 내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 아이를 자신의 힘든 감정을 표출하는 대상으로 삼아 학대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사진_픽사베이


그렇다면 부모로부터 학대받은 아이는 어떨까?

학대를 당한 아이들은 불안해하며, 외부 상황에 대해 과도하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일 수 있다. 자신에게 도움을 주려는 낯선 어른이나 심지어 의료진의 접근에 대해서도 의심을 하거나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정서적으로 심한 감정 기복을 보이기도 하고, 불안정하고 비전형적인 애착 패턴을 보여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다. 때로는 지나치게 공격적이거나 사회적으로 위축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어려움은 정신과적 증상들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물리적, 정서적 학대라는 극심한 트라우마로 인해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뒤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느끼며, 이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하게 되는 질환)을 보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울, 불안, 편집증적 사고, 공격적 행동 등을 나타낼 수 있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건 자신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이의 불안과 공포심이 누그러질 수 있도록 편안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게 해 주고, 새로운 보호자 혹은 치료자와 신뢰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부모가 자신의 잘못과 문제점을 인지하고 올바른 양육환경과 마음가짐을 갖출 수만 있다면, 학대받은 아이가 다시 부모와 함께 지내도록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매우 조심하고 신중해야 한다. 아이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상처를 받았고, 정서적으로 매우 취약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아이에게 또 한 번 고통을 겪게 할 수도 있는 일이다.

부모의 갱생과 환경의 개선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경우에는 아이를 해당 가정에서 완전히 격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다시금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아이의 의사와 안위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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