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 사회문화
군 생활 21개월, 좌절의 연속이어도 끝은 아니기에...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0.08.09 00:06

[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한국 청년들이 군대에 가는 시기를 결정하는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학업계획에 맞춰 시기를 정하거나 일정 자신이 원하는 자격을 갖추고 특정한 직위에 지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뚜렷한 목표가 없어서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듯이 군 입대를 결정하거나 가족들이 결정을 내려서 군에 입대하기도 합니다.

20대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나이지만 한편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군 복무를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받아들일 수 있고 또는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계기로 삼으려는 노력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군대생활을 거치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목격하는 것은 ‘출구가 없다는 막막함’과 ‘선택이 없다는 현실’입니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는 대학 졸업작품으로 만들어진 120분짜리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맡은 윤종빈 감독은 관심병사인 ‘지훈’으로도 열연을 해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군대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뻔뻔스러운 군대의 민낯과 실제 군대생활에서 가져온 생생한 대사에 카타르시스에 가까운 공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 영화의 화두는 부조리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승영’은 군대의 부조리에 맞서 자신만의 신념과 성실로 대항하겠다는 믿음을 갖지만 점차 그 조직에 물들어갈수록 폭력에 더 둔감해집니다.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와 같은 다짐은 꼭 군대가 아니고도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지독한 시어머니에게 시집살이를 한 여자는 자신의 며느리에게는 그러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실천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는 과장처럼 살지 말아야지, 후임이 오면 보살펴주는 선임이 돼야지’라는 다짐은 세월이 흐르면서 빛이 바래갑니다.

이들의 공통점에는 개인의 신념보다 앞세워지는 ‘명분’이 존재합니다. 선임은 후임에게 ‘기강’이라는 명분이 있습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가부장의 ‘권위’라는 명분이, 과장에게는 대리에게 ‘성과’라는 명분이 있습니다. 만약에 명분만 존재하는 공동체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개인은 사라지게 됩니다. 

 

만약 개인이 단체행동에서 이탈하기 시작하면 따가운 눈초리와 따돌림은 감수해야 할 결과로 돌아옵니다. 갑자기 아픈 상황처럼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여도 예외는 아닙니다. 특히, 군대라면 ‘정신적 어려움’ 더 나아가 ‘정신질환’을 알리고 도움받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사병들에게는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라는 말만큼 생생한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와 닿게 느끼지 못합니다. 또 군인이라면 ‘누구나 다 힘들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 몸져눕는다는 것은 ‘꾀병’이나 ‘나약함’으로 비치기 쉽습니다.

또 부대 상황마다 다르지만 의료적인 도움을 받고자 군인들이 군의관을 만나거나 군병원에 방문하는 일은 지휘관의 승인이 있어야 하기에 쉽지는 않습니다. 작은 단위에 정신과 의무관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긴 하지만 보통 군병원의 정신과 진료를 본다면 간부를 대동해서 내원을 합니다. 간부가 진료 내용을 듣진 않지만 진료시간까지 밖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군으로 복귀하기 때문에 병사에게는 여간 불편한 과정이 아닙니다.
 

사진_픽셀


현실적으로 군대라는 조직은 한 사람이 빠지게 되면 주변에 질서에도 상당히 영향을 줄만큼 상당히 빠듯하게 구성원들이 연결돼 있습니다. 아픈 사람이 있다면 역할에 공석이 생기게 되고 조직이 고스란히 그 사람의 몫을 떠안게 됩니다. 아픈 사람의 불편한 감정도 그대로 전달되고, 업무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세 명이 일할 것을 두 명이 처리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러다 보니 현실적으로 정신적 어려움을 이유로 자리를 비우는 병사는 부대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분명 아직도 군대의 그늘 아래서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존재할 것입니다. 억압된 상황에 꼼짝도 하지 못하면서 오직 숨만 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는 ‘용서받지 못한 자’의 제목처럼 가해자는 없지만 피해자는 있는 역설을 보여줍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모두는 ‘군대’와 다른 이름의 공동체에서 살고 있습니다. 개인이 성자가 아닌 이상 공동체를 떠나서 살 수 없습니다. 또 어느 공동체든 명분이 있고 형성된 전통과 정체성을 다음 세대에 물려줍니다. 

 

만약 지금 속한 곳에서 자신이 아프다는 것을 감춰야 할 수밖에 없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수 있습니다. 부조리에 분을 삭이며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상에서만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상황에 있든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오직 태도입니다. 

지금에 처한 상황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태도도 바뀔 수 있습니다. 마치 ‘시절 인연’이란 말처럼 삶에서 때에 따라 만나는 사람과 장소는 변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도 사람의 의지입니다. 이를 즐겨볼 만한 경험으로 받아들여본다면 다른 가능성이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에는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다는 태도와 지금 맞닥뜨린 상황은 지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현실을 견뎌낼 용기가 사회의 부조리를 직면하고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고민하고 실행에 옮기는 원동력이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요즘 군대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빈번하게 일어나던 폭행은 거의 없어졌고, 사병들은 외출이 매일 허락되는 생활로 바뀌었습니다. 10, 20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군문화가 현실화가 된 것은 누군가 계속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공동체가 이 요구를 받아줄 것을 요구한 결실입니다. 

어떤 집단이든 사람의 성향이 고루 반영된다면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나치게 경직되고 한쪽으로만 쏠린 공동체의 수명은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에 명분의 힘이 실리려면 약자도 포용하는 관용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  *  *
 

정신의학신문 마인드허브에서 마음건강검사를 받아보세요.
(20만원 상당의 검사와 결과지 제공)
▶ 자세히보기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현재 비회원상태입니다. 비회원 상태의 댓글은 따로 표시가 됩니다.
로그인하신 후 댓글을 남기시겠습니까?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인터넷신문윤리강령이메일무단수집거부CONTACT
(주)정신건강연구소  |  정신의학신문  |  사업자등록번호: 105-87-08929  |  등록번호 : 서울, 아03874  |  등록일자 : 2015년 8월 25일  |  
발행·편집인 및 대표자: 박소연  |   서울 종로구 옥인동 자하문로 17길 보광빌딩 12-10  |  대표전화 : 02-725-1510
통신판매업신고 번호: 제 2020-서울종로-0423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선우
Copyright © 2020 정신의학신문-의사들이 직접 쓰는 정신 & 건강 뉴스.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 Back to Bott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