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원래 소확행이란 말은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에세이 『랑겔한스섬의 오후(ランゲルハンス島の午後)』(1986)에서 쓰인 말입니다. 갓 구운 빵 위에서 버터가 녹는 것을 바라볼 때, 중고서점에서 절판된 책을 발견했을 때, 고양이가 잠든 틈을 타서 마음껏 구석구석 만질 때 등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을 말합니다. 결혼이나 주택 소유와 같이 성취가 불확실한 행복을 좇기보다는, 작지만 성취하기 쉬운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 또는 그러한 행복을 말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회는 소확행이란 현실적인 흐름을 타고 있어도 명품욕구는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에 갔는지를 페이스북 글보다 인스타 이미지로 전달하는 것은 보다 직관적입니다. 근사한 명품백이나 세련된 외제차를 새로 구매한 기념을 올리는 피드백이 종종 보이곤 합니다만 꼭 명품이 아니더라도 블루보틀이나 고급식당의 인증샷은 흔하게 올라옵니다. 즉, 꼭 명품이 아니더라도 ‘매스티지’를 소비하는 것으로 명품에 준하는 감성적 만족을 얻는다는 것이죠. 
 

사진_픽사베이


명품욕구는 여러 심리기제에서 기인하겠지만 자존심 고양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진 것은 나의 자아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가치 높은 명품을 가질수록 덩달아 나도 품격이 높아진다는 심리는 소비욕구에 핵심을 관통합니다. 

이런 명품 과시가 10대 20대에게 빠르게 퍼지고 있다고 합니다. 소위 ‘플렉스 했다’라는 말이 유행인데, 꼭 고소득층이 아니더라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라도 명품을 구매해 SNS에 인증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는 ‘플렉스(flex)는’ 미국 힙합에서 부나 귀중품을 과시한다는 의미에서 왔지만 국내 래퍼들이 노래 가사에 사용하자 젊은 층을 중심으로 플렉스 문화가 빠르게 퍼지고 있습니다. 소위 ‘오늘 플렉스 했다’, ‘플렉스 인증’과 같은 용어가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의 안녕을 위해 사는 20대들의 플렉스 문화 이면에는 현실에서 느끼는 무력감이 있습니다. 세상은 20대 젊은이들이 주인공이라고 말하지만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40대 이상의 자본을 갖춘 중년층들입니다. 그들이 자본을 쥐고 있고 부동산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가난한 젊은 세대가 누리는 자유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꿈과 이상으로 20대에 성취를 노력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그들이 견뎌내야 하는 현실에는 갚아야 할 대학 학자금과 매년마다 뛰고 있는 월세, 카드 값이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체험하면서 젊은이들은 ‘세상은 너희 것이다’라는 구호에 더 이상 속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50대 부동산 100억 부자와 어렵게 돈을 모아 샤넬백을 산 20대 회사원 중 누가 더 행복하다고 비교해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100억을 가지고 있어도 자식 한 명 없이 외롭게 사는 중년일 수도 있고, ‘플렉스 인증’ 때마다 친구들이 수백 명씩 ‘좋아요’를 눌러줘서 행복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에 누구에게도 애정 어린 시선을 받지 못하고 산다면, 매사의 선택마다 외로움을 견디며 일상을 꾸려가야 한다면 얼마나 비참할까요? 얼굴을 맞대고 밥을 편하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면 얼마나 일상이 고독해질지 생각해봅니다. 

‘플렉스’ 문화의 전제는 타인의 시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수치심과도 밀접하게 연관이 있습니다. 남이 나를 알아봐 주지 못하면 느끼게 되는 외로움, 그들과 연결되지 못할까 올라오는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명품에 애착을 느끼고 그것으로 나를 알아봐 주기 바랍니다. 양보와 공정이 회복되는 사회를 꿈꾸기보다 나도 동등하게 관심받고 싶은 ‘공평’한 심리가 작동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명품 유행은 플렉스 세대 이전에도 계속해서 존재해 왔습니다. 그러나 플렉스 세대의 연령은 10대 20대로 점차 낮아지고 있고 20대의 명품 소비가 2년 사이 7배 이상 늘며 30, 40대 못지않게 명품 소비의 큰 손으로 부상하는 것은 분명 다른 변화를 의미합니다.

그 시기에 즐길 수 있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명품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젊은 세대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은 ‘노력의 성공신화’가 아니라 개인의 안녕을 스스로 챙겨야 하는 세상에서 누려야 할 ‘공평과 존중’일지 모릅니다.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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