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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빌려간 돈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0.08.10 00:18

[정신의학신문 : 강남 푸른 정신과, 신재현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희 자매는 어릴 적부터 성향이 많이 달랐습니다. 

몇 해전 제가 처음 취업했을 때, 저희 집 상황이 어려운 편이었습니다. 언니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상황이었고요. 하루는 후불 교통카드가 없어서 생활이 불편하다기에 제 신용카드에 후불교 통카드 기능이 있는 것을 빌려줬습니다. 본인이 직접 결제한다기에 그러려니 하고 신경을 껐습니다. 1년 정도 뒤에 회사를 퇴사하고 시험을 준비하려고 퇴사 직전 신용카드를 모두 없애기 위해 카드사에 전화를 했죠. 그런데 돌아온 답이 제가 리볼빙 서비스를 계속 이용 중이어서 카드를 해지하려면 갚아야 할 카드빚이 400이 넘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한 번도 안내받은 적도 없고 카드를 쓴 적도 없다고 말하는데 뭔가 아차 싶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회사생활이 너무너무 힘든데도 버티고 버티며 학자금을 갚고 겨우 학원비와 생활비 정도 저축해서 빠듯하더라도 시험을 보고 싶은 회사가 있어서 준고시를 준비하려고 하던 상황이었거든요. 그 날 집에 와서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습니다. 언니는 그건 빚이 아니다, 왜 그걸 빚이라고 생각하냐면서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제가 오버한다는 듯이 말했고 저는 카드를 뺏고 모아둔 돈으로 그 빚을 갚았습니다. 사회 초년생들은 아실 겁니다 한 달 월급보다 큰 비용이 갑자기 빠져나가면 그다음 달뿐 아니라 향후 3~4개월의 생활이 모두 빠듯하다는 걸요.. 그리고 시험은 포기했고 인생의 방향이 틀어졌죠. 

 

저는 언니가 그 돈을 갚을 줄 알았어요. 정말 제 상식엔 그래야 하는 거였거든요. 몇 년이 지나도록 갚는다는 소리를 안 하길래 나도 생활이 힘드니 한 달에 십만원씩이라도 갚으라고 먼저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 달은 사정이 이렇고 저번 달은 사정이 이랬다 한 달에 얼마씩 정기적으로 준다는 말은 못 하겠다 하더라고요. 미안하단 말은 한마디도 안 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한 번도 입금해 준 적이 없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포기했어요.. 포기 말고는 제 정신건강에 이로운 게 없어서 택한 포기였습니다. 근데 제가 화가 나는 포인트는 언니는 사고 싶은 거 다 사면서 산다는 겁니다. 혼자 월 80이 넘는 강남 오피스텔에 자취하면서 원목가구 캡슐커피머신 비싼 향수, 비싼 생활용품, 조식 배달 등등. 물론 명품은 아니지만 이 돈 있었음 나 십만원만 갚아주지.. 싶은 마음이 드는 것들이요.. 

그리고 이후에는 1~2년에 한 번씩 국적기를 타고 미국 여행을 가더라고요.. 하 여기까지 쓰는 것도 힘드네요. 더 있지만 사실 나열은 여기서 그만 할게요.

 

더 큰 문제는 친척들과의 관계입니다. 이런 모든 이야기를 친척들에게 해봐야 내 얼굴에 침 뱉는 일이니 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이런데 사람이 웃는 얼굴로 대할 수는 없으니 친척들 앞에서 언니와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쳐다보기도 힘드니까요. 그런데 거기다 대고 '쟤 봐 쟤는 나 싫어해 내 옆에 빈자린데 여기 안 앉잖아' 이러면서 친척 언니 동생들, 이모들에게 농담을 하는 겁니다. 그럼 아무것도 모르는 친척들은 쟤는 지 언니한테 싸가지가 없다면서 왜 이렇게 너 잘난 줄만 아느냐고 하십니다. 

저 그냥 웃으며 넘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너무 상처가 됐나 봐요. 며칠째 악몽을 꿉니다.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악몽을요. 꿈에서조차 배척당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가 잘못한 거 아니라고 너무너무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요 친척들 앞에서 그러면 엄마 아빠가 상처 받으실 거 같아요. 지금이라도 다시 공부하게 내 돈 내놓으라고 하고 싶어요. 너무 원망스러워요. 또 엄마 아빠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으셔서 저런 부분을 뒷감당하실 수 있는 처지가 아닙니다. 

저는 제 것을 잘 챙기고, 절약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돈이 있어도 비싼 것 사지 않고 모으는 타입이어서 여행, 사치 좋아해도 안 하고 버틴 거예요. 그냥 성향의 차이인 걸까요? 제가 다 이해해야 하는 건가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 푸른 정신건강의학과 대표원장 신재현입니다. 

글에서 질문자님의 속상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성향 차이라는 말로 쉽게 재단할 수 있는 상처가 아닐 겁니다. 또, 언니에게 화를 내라, 그냥 의절해라, 그래도 언니인데 이해해주라는 식의 상투적인 조언은 이미 많이 들으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부분보다 질문자님의 자기주장과 감정 표현에 대한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모든 감정과 상황들이 흘러 지나간다는 건 분명 진실입니다. 아마 질문자님께서도 그러할 것이라 믿으셨기에 시간을 두고 기다리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실제로 어떤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색이 바래어 처음의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사라지거나 변하는 경우도 많이 봅니다. 그 또한 인간에게 신이 준 선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오랫동안 흘려보낸 기억들도 날 것 그대로의 기억,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지 않은 채 덮어놓기만 한 기억이라면 시간이 지나도 그 감정이 사라지지 못합니다. 그런 경우 고통은 또 다른 고통스러운 감정을 낳아 더 상처를 남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질문자님께서 상처를 입으셨던 기억은 아직 감정의 압력이 채 빠지지 않은 상태인 것 같아요. 몇 해의 시간이 지나면서 아직까지 고통스러운 이유는 그 때문일 테지요. 

 

언니분에게 당장 화를 내거나, 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행동을 취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다만, 저는 질문자님께서 그 기억과 상처에 대해 가진 감정들을 조금 더 건강하게, 바꾸어 말하면 질문자님의 마음이 더 상처 받지 않는 선에서 표현할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눌러놨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정답은 없겠지만, 갑작스러운 감정 폭발은 스스로에게도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가 많아요. 

온건하고 건강한 감정표현에 대해서는 로젠버그 박사가 주창한 <비폭력 대화>를 참고할만합니다. 우선 ‘네가 잘못했잖아’라는 말을 앞세우기보다, 당시의 상황과 사건들에 대해서, 그리고 그 당시에 스스로 느꼈던 감정과 들었던 생각에 대해 먼저 충분히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언니가 했던 행동에 대해 느꼈던 분노, 화, 서운함, 황당함에 대해서요. 

그러고 나서 자신의 욕구를 이야기합니다. 미안함을 표현해주기를 원한다거나, 자매간의 관계에 대해서 신중하게 생각해달라는 이야기가 되겠지요. 그리고 좀 더 현실적으로 이를 갚아나갈 수 있는 방법들에 대해 고민을 해달라는 이야기가 필요할 겁니다.

언니의 태도에 질려 더 이상 아무 말하기 싫거나, 말을 하자마자 감정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면 대화보다는 카x오톡 같은 메신저나 이메일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시작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온건히 담고, 내가 원하는 행동과 반응들을 요청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겁니다. 

 

언니의 반응은 분명 둘 중 하나일 테고, 분명 질문자님께서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언니의 행동과 태도를 본다면 말이지요. 하지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름의 합리화’와 ‘다른 방향의 의미부여’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충분한 자기주장과 감정표현을 할 수 있다면, 그 뒤에 기억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차분히 곱씹어보며 이야기해나가는 건 상대에게 의사와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마음 한 구석에 있던 먼지 쌓인 감정과 욕구가 빛을 보게 되는 과정입니다. 필요 이상으로 타인을 배려하며 지내온 내 마음을 온전히 직면하고, 상처 받은 마음과 기억을 달래어주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충분히 표현되지 않은 감정이 조금씩 드러나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이야기한 뒤에야 상처 받은 기억은 비로소 흘러갈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난다면 과거의 상처에 대해 다른 의미부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내 감정을 누르기만 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 아니구나’ ‘내 욕구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이구나’라는 삶의 중요한 통찰을 얻는 계기가 되는 셈이기도 하니까요. 

정답은 없지만, 다 이해해야 한다거나, ‘성격 차이’로만 생각하고 덮어놓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고, 눌러 놓았던 것을 조금씩 표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좀 더 건강해지는 자신을 만나게 될 수 있을 겁니다. 

부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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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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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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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옹 (비회원) 2020-08-11 10:39:52

    저런 사람 어떻게 대하냐구요? 피하세요. 똥파리들은 피해야 합니다. 상대하면 손에 똥만 묻습니다. 기족도 가족 같아야 가족이죠. 보지 말고 사세요. 그리고, 어머니껜 솔직히 말씀드리세요. 어머니께서 받아들이시든 안 받아들이시든. 자신과 자신의 것을 존중해주는 사람들과 더 시간을 보내세요. 세상에 똥파리는 어느 곳에나 있지만, 모든 곳에 있지는 않습니다. 똥파리 없는 곳에서 행복하거 사세요. 인생 생각보다 짧습니다.   삭제

    • meditation (비회원) 2020-08-10 12:31:50

      질문자님의 사연을 읽으면서, 가족일이라서 아무에게도 말못하는 답답함과 억울함에 공감합니다. 많이 힘드셨을것이고 지금도 힘들거라고 짐작합니다. 저도 가족간의 돈 문제로 얽히고 설킨일들이 아주 오랜시간 지속되고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해결방법은 딱히 없었어요. 비폭력대화의 방식도 상대가 진지하게 경청할 때 가능한 일이고요. 하지만, 신재현선생님말씀처럼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말하고나면 나의 기억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것 같아요. 상대가 나의 의견을 수용하든 말든, 자신을 위해서 표현하며 사시기를~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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