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증 1.

[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선생님 저는 좀 완벽주의자인 것 같아요’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남녀노소, 각종 질환군을 불문하고 말이다. 완벽주의는 꼼꼼하고 정확한 성격을 반영한다. 실제로 그러한 사람들은 완벽주의적 경향의 덕택인지 사회적 성취 또한 높은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상담실 안에서 ‘저는 완벽주의자에요’라고 내뱉는 말에는 항상 스스로에 대한 자조와 걱정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어쩌면 그들은, ‘나는 완벽주의야’라는 사실로 애써 본인이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대한 불안감을 항상 달래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완벽주의자라는 말은 사실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모든 일에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그 누구도 ‘완벽’해질 수는 없기에 완벽주의에 대한 집착은 곧잘 ‘불안감’, ‘분노’라는 접착제와 함께 눈덩이처럼 몸집을 불려가며 강박증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강박증은 벌레처럼 머릿속을 파고들어 완벽! 규칙!을 외치게 하고, 숙주를 더욱더 완벽한 집착으로 몰아간다. 완벽으로의 집착을 통해 와해와 혼란의 길로 들어선다.

 

보통, 쉽게 연상되는 시크(chic)한 강박증의 생활은 차갑도록 완벽하다. 시퍼렇게 날이 선 면도날처럼 예리하다. 금속성의 톱니바퀴가 한 치의 유격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듯 명확하고 규칙적이다. 극도로 엄밀한 규칙으로 치밀하게 조직된 일상에는 ‘인간성’ ‘감성’과 같은 여유 따위란 스며들 작은 공간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정교한 일상들은 아름다운 절도의 미학을 보여 준다기보다는, 무언가를 강력하게 가두고 있는 봉인의 주문을 보고 있는 듯하다. 차갑게 얼어붙은 강박증의 성벽은 절대 튀어나와서는 안 될, 절대로 세상에 내보여서는 안 될 무엇인가를 철저하게 억누르고 분리시키고 있다. 그 성벽 너머의 무엇인가가 더 강렬하고 더 뜨겁게 요동칠수록, 강박은 점점 더 기계적인 완벽주의의 집착을 통해 의식의 선 너머로 그것을 떼어 놓는다.

 

프로이드(S. Freud)가 일찍이 짚어 내었던 바의 동일선 상에서 대부분의 정신분석가들은 강박증 환자들의 무의식이 ‘항문기적 주제’에 고착되어 있음을 인정한다.

항문기적 주제는 ‘배변’으로 대표되는 관련된 통제와 강요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는 배변과 같은 자연스럽고 원초적인 본능을 표현하기를 원하지만, 양육자의 ‘배변훈련’은 그 욕구를 통제한다. 아이는 이러한 통제와 규칙이라는 틀에 저항하며 권력투쟁에 나서게 되지만, 결국 그 투쟁은 패배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동기에 이러한 이슈들의 투쟁과 갈등, 좌절이 반복되며, 항문기적 주제는 아이로 하여금 관리 당하고, 판단되고, 요구 받는 입장에서의 조절능력을 통합하게 만든다.

 

그러나 너무 일찍, 혹은 너무 엄격하고 과도하게 훈련 받는 아동은, 욕구가 통제 받는 경험에 대한 강력한 분노와 적개심을 조절하고 안전하게 통합하는 데에 실패하게 된다. 때로는 그 분노를 투사하여 배변-욕구에 대한 공격환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자신의 자연스러운 욕구를 수치스럽고 절대 드러내서는 안 될 나쁜 것으로 여기게 되면서, 그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노력만이 자신의 자존감과 정체감을 유지시켜 줄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아주 엄격하고 흑백논리에 휩싸인 초자아를 형성시킨다. 가혹한 초자아는 주체로 하여금 감정과 분노, 욕구를 철저하게 통제하고 고립시키고 분리시킬 수 있는 강박의 성벽을 쌓도록 채찍질한다. 자기통제와 만족의 지연이 이상화 된다.

 

실제로, 성격이 강박적으로 조직된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들을 몰아세우고 다그치는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들 스스로도 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만든 규칙과 완벽의 틀 안에 일상을 레고처럼 꼭 끼워 맞추지 않고서는 못견뎌한다. 조금이라도 어긋나거나 이가 나간 영역을 발견할 때면 안절부절 못한다. 마치, 화가 잔뜩 난 부모님 앞에서 자신의 잘 못이 탄로 날까 전전긍긍하는 어린 아이처럼 불안해한다. 숨겨두었던 커다란 치부라도 들킨 양, 끊임없는 속앓이를 한다.

 

강박성 완벽주의자들은 차가운 얼음 성벽으로 가두어버린 강렬한 분노와 불안감을 품고 생활하게 된다. 감춰진 분노는 명확하게 틀이 짜여진 규칙과 패턴 속에서 고립되고 취소된다. 철저하게 무의식 속에서 통제된 감정은, 그렇게 강박 행동의 봉인 주문에 가리워진 채로 완벽주의자들의 냉철함 뒤에 감춰진 ‘백색 분노’에 끊임없이 불을 댕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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