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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때문에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 - 사랑 중독 1중독 인생을 위한 마음 처방전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0.08.03 08:30

[정신의학신문 : 신림 평온 정신과, 전형진 전문의] 

 

스티븐 프리어스 감독이 만들고, 존 쿠색이 주인공으로 열연한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는 2000년에 개봉된 미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는 30대 총각 롭 고든에게는 로라라는 아름다운 여자 친구가 있다. 자신의 일상에 큰 불만 없이 지내던 롭에게 어느 날 위기가 찾아온다. 로라가 이별을 선언하고 집을 나간 것이다. 끔찍한 일이었다.

그는 번번이 여자에게 차이기만 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이유를 알기 위해 옛 여자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그렇지만 그는 해답을 찾지 못한다. 오히려 절대로 로라를 그냥 놓아줄 수 없는 이유만 쌓여 간다. 그녀는 정말 특별했고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모든 것을 그리워하는 롭의 가슴은 터져 버릴 것만 같다.

그러던 중 로라 아버지의 부고를 듣는다. 장례식장에서 재회한 롭과 로라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얼마 후 롭은 로라에게 프러포즈한다. 원작인 닉 혼비의 소설 제목은 『하이 피델리티(High Fidelity)』다. ‘고음질’, ‘충실함’이라는 뜻이다. 감독은 관객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충실한가요?”
“그 사람과 당신의 사랑이 어우러져 울려 퍼지는 화음은 고음질인가요?”
 

사진_픽사베이


사랑이 무엇일까? 사랑은 감정인가 증상인가?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건 심장의 역할일까 아니면 뇌의 역할일까? 끝없이 사랑을 갈망하는 게 건강한 상태인가 비정상적인 중독인가?

과학자들과 의사들 역시 이 같은 질문을 던졌고 해답을 찾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미국 러트거스 대학의 생물인류학자로 진화적인 관점에서 남녀관계를 탐구해 온 헬렌 피셔 교수는 사랑은 중독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사랑에 빠진 사람의 뇌에 나타나는 반응이 마약을 사용했을 때 나타나는 반응과 비슷하다는 걸 발견했다. 뇌를 영상으로 촬영한 결과 쾌락의 중추라고 불리는 ‘복측피개영역(VTA, Ventral Tegmental Area)’이 활성화되었다. VTA는 코카인 등에 중독되었을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다. 

마약은 뇌에서 도파민 생성을 촉진함으로써 중독 현상에 이르게 하는데, 사랑에 빠졌을 때 역시 VTA에서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이와 동시에 사랑에 빠진 뇌는 심장 박동수와 혈압을 높이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노레피네프린이 증가해 필로폰과 같은 중독성 강한 자극제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경험하게 한다. 

대다수 사람은 일정 기간 격정적으로 사랑에 몰입하는 단계를 거쳐 우정과 같이 안정적인 사랑의 단계로 접어들지만, 일부 사람은 상대방에게 계속 집착하면서 자신을 점점 파멸로 이끄는 경우가 있다. 이는 마약이 인간의 삶을 파괴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중독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미국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루시 브라운 박사는 실연의 상처를 안고 있는 사람들의 뇌를 관찰했다. 이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남아 있는 사람들이 관찰 대상이었다.

그 결과 이들에게서는 ‘측좌핵(Nucleus Accumbens)’이 활성화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측좌핵은 보상을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사랑하면 보상을 느낌으로써 사랑을 더욱 갈구하게 만드는 것이다. 역시 마약 중독자가 코카인 등을 간절히 원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이다. 마약처럼 사랑에도 중독성이 있다는 기존 연구결과를 뒷받침하는 내용이다. 

 

사랑이 뇌의 작용에 의한 것이고, 중독성이 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될까?

헬렌 피셔 교수는 인간의 뇌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3단계로 나눠서 설명한다. 

첫 번째는 성욕(Lust)이다. 사랑의 감정을 갖기 전 성욕을 느끼는 단계다. 평균 90초~4분 사이에 결정되는 이 느낌은 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이 분비되면서 생성된다. 

두 번째는 매력(Attraction)이다. 사랑으로 진입한 단계다. 신경전달물질인 아드레날린과 도파민 등이 감정을 증폭시킨다. 아드레날린은 심장이 뛰면서 흥분하게 만들고, 도파민은 기분이 좋고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이때의 뇌를 분석해 보면 코카인 등 마약에 중독됐을 때 뇌가 일으키는 작용과 흡사하다. 식욕과 수면욕도 줄어드는데, 남녀가 사랑에 빠지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고,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은 것이 이 때문이다. 

세 번째는 애착(Attachment)이다.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 분비되면서 안정적이고 편안한 기분을 느끼는 단계다. 옥시토신은 산모가 출산 중에 분비하는 강력한 모성애 물질이며, 바소프레신은 스킨십을 하거나 오르가슴을 느꼈을 때 주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장기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적인 단계는 지났지만, 결속력이 강화되고 친밀감이 높아짐으로써 서로가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하게 여기게 된다. 

 

정신의학에서 사랑을 중독으로 분류해 질환의 대상으로 여기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정상적인 사랑의 범주를 넘어 위험한 단계로 진입해 있는 정상적이지 않은 사랑은 분명 있다.

“그 사람이 아니면 차라리 확 죽어버릴 거예요.”
“당신은 나의 전부예요. 당신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사랑에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나서 결국은 실패에 이른 뒤 쓸쓸히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이 많다.

애정의 대상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몰두하는 병적인 상태를 흔히 사랑 중독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자신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잃어버릴 정도로 과도하게 상대방에게 몰입하다가 기대와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인생이 종말을 맞은 것처럼 낙담하고 자책한다.

물론 병적인 사랑은 의존적인 성격 장애나 경계선 성격 장애와 구별되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능적인 장애는 사랑에만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병적인 사랑은 상대방에게 맹목적으로 헌신하고 집착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과도하고 부적절한 관심이 이어지고, 자제력을 잃게 됨으로써 다른 관심이나 활동에도 지장을 주게 되어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정상적인 사랑이 애착 단계로 접어들 때 뇌에 옥시토신이 분비되면서 안정적이고 편안한 기분을 느끼는 데 반해 병적인 사랑에서는 이런 변화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에서도 기질적인 차이를 갖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지나친 과잉반응을 한다든지, 비이성적으로 과도하게 몰입한다든지, 믿을 수 없을 만큼 비현실적인 기대를 한다든지 하면 혹시 내가 병적으로 사랑에 빠진 게 아닐까 생각해 봐야 한다. 건전한 인간관계는 중독을 부르지 않는다.

건강한 사랑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지만 병적인 사랑은 모두를 소진시키고 파괴한다. 성숙한 사랑은 삶에 생동감과 활력과 정서적 충만함을 주는 고음질의 화음이지만 미숙한 사랑은 서로의 삶에 무력감과 패배주의와 정서적 소멸을 주는 저음질의 화음일 뿐이다. 

 

사랑을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겨 사랑하는 사람에게 온 정성을 다하는 사람을 ‘사랑꾼’이라고 부른다. 사랑꾼이 많은 세상은 참으로 살만한 세상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 중독자들이 많은 세상은 살기 힘든 삭막한 세상일 것이다.

지금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충실한가? 내 사랑의 화음은 얼마나 고음질인가? 나는 사랑꾼인가 아니면 사랑 중독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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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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