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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행복해지고 싶은데... 힘들어서 그만 살고 싶어요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20.05.13 00:01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애들이 어릴 때 이혼을 했고 지금은 성인이 되었고 직장생활도 잘하고 착하게 잘 자라주었습니다. 전남편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힘겹게 자녀들과 살았습니다. 내 몸과 맘은 늙어가고 모아둔 돈도 없고 전남편으로 인해 한평생 신불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음이 따뜻하고 성실한 남자를 만나 재혼을 했고 애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평생 일을 했는데 손을 다쳐서 지금은 쉬고 있지만, 남편의 월급만으로는 힘이 드네요. 남편은 전 부인과 이혼하면서 모든 재산을 다 주어서요. 혼자서 애들을 키우면서 나의 존재는 상실되었고 애들만을 위해 살았는데, 애들이 성인이 되면서 돈 없는 엄마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걸 느끼게 되었고, 돈 못 버는 아내도 좋은 아내가 될 수 없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애들과도 잘 지내고 저한테도 잘합니다. 하지만 술에 취하면 심한 욕과 손과 발로 저를 폭행합니다. 애들이 없는 곳에서 폭언과 폭행을 합니다. 제가 얼굴과 몸이 멍으로 뒤덮여 집에 갈 때면 매번 저는 '모르는 사람과 싸웠어' '넘어졌어'라는 말로 애들한테 거짓말을 합니다. 남편은 좋은 사람으로 인식이 되어가고 저는 한심하고 철없는 엄마로 인식이 되어버렸습니다.

남편은 술이 깨면 저를 폭행한 걸 기억이 안 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런다고.. 혹시나 남편의 폭행을 알게 되면 우리 애들은 절대 남편을 용서하지 않을 거고 함께 살려고 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에 저 하나만 바보가 되고 참으면 되는 거라.. 애들한테 좋은 아빠를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식구들이 잠들면 어두운 주방 식탁에 앉아 소주를 마시면서 숨죽여 울면서 혼잣말을 합니다. '멀리 떠나고 싶다'.. 제가 이 혼잣말이 두려운 거는 여행이 아니라 죽음, 자살... 누군가 그러더군요. 죽을 용기가 있으면 더 열심히 살아보라고. 근데 사는 것보다 죽는 게 편할 듯합니다. 애들 대학만 졸업하면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살아있는 게 잔인하게 힘이 들어서.. 행복해지고 싶은데.. '이 또한 지나가리'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는 모든 걸 멈추고 싶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어떠한 말씀에 앞서, 사연자분의 그간의 삶에 대해 진심 어린 위로의 말씀을 먼저 드리고 싶습니다. 마음 둘 곳 없이 힘겨운 삶을 이겨내는 원동력은 아마 아이들이 아니었을까, 저 역시 부모 된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가늠해 봅니다.

말씀 주신 것처럼 자녀분들께서는 이제 훌륭히 자라시어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나이가 되었고 또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사연자분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감히 앞으로 사연자분의 삶을 어떻게 하시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이 짧은 글을 통해 드리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다만 그동안 사연자분이 마음에 담아두고 오셨을 것만 같은 책임들, 좋은 엄마, 훌륭한 양육자, 자녀들에게 부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 같은 것들은 더 이상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셔도 된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이제는, 진심으로 글쓴이님이 원하는 삶, 원하는 행복을 위해, 본인을 마음 가장 한가운데에 두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해 보시기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제는 그러셔도 됩니다.

 

남편분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혹은 때로는 얼마나 잘해주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마 첫 결혼생활의 종결에도 불구하고 다시 결혼하겠다고 마음먹으셨던 건, 그만큼 그분과 함께하는 것이 홀로 있는 것보다 더욱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 마음속에 기대했던 그러한 행복, 혹은 미리 상상하지 못했던 다른 형태의 행복이 존재하는지의 여부입니다.

함께 하는 쪽이든, 그렇지 않은 선택을 하는 쪽이든 지금의 나, 더 이상은 그 어떤 굴레에도, 책임에도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나에게 어떤 방향이 행복인지, 내가 원하는 삶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럴 수밖에 없는 이유들로 이렇게 살아가기로 애써 마음먹으시기보다,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방향이 어디인지를 먼저 생각해 보시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떠올려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첨언을 드리자면, 그간 그토록 고생하시며 키워내신 자녀분들이, 이제는 사연자분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시는 데 도움을 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금의 나, 더 이상은 내가 아닌 이유들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는 나의 마음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먼저 귀 기울여 보시고, 그 마음을 내게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이들과 솔직히 상의를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가정폭력 상담

여성긴급전화 1366

한국가정법률상담소 1644 7077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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