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본 칼럼의 일부는 2020년 4월 16일 경상일보 ‘[정두영의 마음건강(4)]코로나로 캠퍼스에 발을 딛지 못한 새내기들에게’라는 제목으로 실렸습니다.>

 

캠퍼스에 벚꽃이 일찍 피었습니다. 평소라면 학생들이 중간고사 직전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며 친구들과 열심히 사진을 찍고 추억을 남기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희 학과는 이 시기가 되면 교수와 학생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잔디밭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는 행사를 해왔는데 올해는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재학생들은 이전에 했던 무언가를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는 상실감을 느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입시 때 외에는 자신의 교정도 거닐어보지 못한 새내기들은 어떤 느낌이 들까요? 오리엔테이션은 물론이고 수업까지도 모두 온라인으로 듣고 있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사진_픽셀


저희 센터에서는 3월 말에 신입생 대학생활적응검사를 온라인으로 진행했습니다. 작년에는 2월 말 오리엔테이션 기간에 했던 일입니다. 신입생들이 흔히 갖고 있는 대인관계, 정서관리, 학업수행 등의 고민을 알아보고 미리 도움을 주려는 목적입니다.

동일한 질문인데 작년과 올해를 비교하면 재밌는 패턴이 보입니다. 20학번에서는 대학 신입생들의 일반적인 고민 중 가장 큰 부분인 대인관계에 대한 걱정은 소폭 감소하고, 대신 내가 선택한 대학과 전공에 대한 불만족이 8배나 늘었습니다. 

코로나19의 영향을 떠올리게 됩니다. 대개 신입생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가벼운 긴장감을 갖게 됩니다. 이것을 어렵게 느꼈을 학생에게 온라인 환경이 오히려 더 편했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오프라인에서 편했을 학생이 온라인 환경에 갑갑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전체 집단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숫자는 소폭 감소했지만, 캠퍼스에서 만나게 될 때 어떻게 작용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대학과 전공에 대한 불만족은 예상이 됩니다. 대학생이 되어 캠퍼스에서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동아리도 들어보고, 연애도 해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강의실 의자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입시 인강을 듣던 컴퓨터로 집에서 수업을 들으려니 실망이 크겠지요.

 

저희 학교에서는 신입생들의 소속감을 채워주기 위해 학교의 마스코트와 마크가 달린 물품들로 웰컴키트를 만들어 보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각자 최선을 다하고 건강하게 캠퍼스에서 만나자는 총장님의 메시지를 담아서요.

만약 동아리 뒤풀이 같이 사람을 만나고 사귈 기회가 부족하다면 온라인 모임은 어떨까요? IT회사의 사장님이 각 직원에게 배달음식을 시켜주고 모니터를 보며 회식을 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집의 애완견이나 아이들을 화면을 통해 소개하며 더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하네요. 만약 오프라인 집들이였다면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심지어 온라인으로 각자 악기를 들고 합주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90년대에 PC통신에서 텍스트만으로 서로의 의견과 감정을 교환하며 친분을 쌓아가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지금은 더욱 다양한 가능성이 있을 것 같습니다. 

 

사이버 세상에서도 대인관계 갈등이 생길 것이고, 소모된 감정으로 힘들어하는 학생이 저희 센터를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학생들을 위해 저희 센터에서는 온라인 상담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로 많은 것들이 변한 것이죠.

변화는 나쁜 쪽으로만 생기지는 않습니다. 기존 센터 내담자들 중에도 온라인 강의에서는 타인의 시선에 예민한 것이 줄어 편하다는 학생도 있었고, 화면에만 집중하면 되니 공부가 더 잘된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어져 기존 환경에서도 더 잘 적응하게 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한 단계씩 나아가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14일 사이언스지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2022년까지 지속해야 할 것 같다는 예상이 실렸습니다. 대학이 BC(Before Corona, 코로나 이전)로 돌아가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수십, 수백 명이 한 강의실에 밀착해 앉아 강의를 듣고 교시마다 이동하는 환경은 감염병에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학교도 이런 이유로 대학원 연구실은 출근을 일부 허용하지만 모든 강의는 온라인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으로 시스템이 변해가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어쩌면 이제까지 부족했던 개별 학생의 교육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교수대 학생 비율이 낮은 과기원의 경우도 교수로부터 개별 교육을 받는 기회는 매우 제한적입니다. 적극적인 학생만 기회를 얻게 되기도 합니다. 청탁이 작용하면 불균등의 사회 문제가 발생합니다. 온라인화, 디지털화를 통해 개별 학생에게 맞춤형 교육과 멘토링이 가능해진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궁금해집니다. 

학습자끼리 함께 배우는 것도 필요합니다. 자신과 비슷한 수준에서 방금 깨우친 사람으로 배울 때는 교육자로부터 배울 때와 다른 장점이 있습니다. 디지털화를 통해 서로 돕는 형태도 다양해지고 편해질 것입니다. 돕는 과정에서 자신도 발전합니다. 마치 방금 배운 수학공식을 가르치면서 이해가 깊어지는 것과 유사합니다. 20학번 새내기들이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지식학습을 비롯한 인생의 여러 영역에서 서로 돕고 성장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19학번 선배들에게 지난 1년의 경험을 돌아보도록 설문을 해봤습니다. 다들 잘하는데 나만 부족한 것 같다는 남과의 비교,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는 자기정체감의 혼란,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룸메이트/하우스메이트와 갈등이 가장 흔한 고충이었습니다. 모두 대학 입학까지 조금 미뤄두었던 인생의 과제들입니다. 밖으로 멋진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입니다.

남들은 어려움 없이 해내는 것 같은데 혼자만 힘들다고 느끼면 외로워집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는 남들의 반짝이는 순간만 보입니다. 나는 좁은 방에서 청소와 소음 문제로 룸메이트와 갈등을 겪으며 속상해하는데 말입니다.

나의 약함이 드러내는 것 같아 ‘도움 요청하기’를 더 어렵게 느낄지도 모릅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신입생 OT나 동아리에서 친해진 선배들에게 자연스럽게, 따로 요청하지 않고 받을 수 있었던 ‘도움받을 기회’가 더 부족했을지도 모릅니다.

예년 같으면 OT에서 후배들을 인솔했을 2학년 선배들에게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메시지를 모아봤습니다. 가장 공통되는 부분은 ‘이제까지와 다른 경험에 다양하게 도전하면서, 눈앞의 결과에 너무 실망하지 말고, 필요할 때 도움을 잘 구하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도움을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형태로 받을 수 있어야겠네요.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를 살아가야 하니까요.

학문적인 지식뿐 아니라 삶의 지혜도 누군가를 도우면서 자신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선배와 동기에게 적절한 도움을 받고 다른 누군가에게 나눌 수 있다면 함께 그들과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학에서 배울 것이 교수님 강의가 전부인 것은 아니니까요.

 

* 정두영 UNIST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교수(헬스케어센터장)

필자는 과기원을 졸업한 정신과의사로서 학생들의 정신적 어려움을 공감하고, 진료와 더불어 인간을 직접 돕는 새로운 기술들을 정신의학에 적용하고자 인간공학과에서 연구합니다.

정두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저서 <마음은 단단하게 인생은 유연하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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