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염태성 광화문 숲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회사생활을 길게 한편은 아니지만, 새로운 업무를 맡을 때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고, 회사생활을 계속하지 못할 거 같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수에게 많이 혼나기도 해서 위축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무능력하다는 생각과 업무에 대한 두려움이 커서 회사를 그만두고, 아예 다른 직종으로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회사만 그만 두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점점 심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두꺼운 책을 보면서 이걸 언제 다하지 하는 생각도 들고, 인강 하나를 채 다 듣지 못하고 지쳐버립니다. 잠에 빠져버리고 싶고, 의지나 에너지가 고갈돼버린 것 같습니다. 옛날에 학교 다닐 때도 공부가 하기 싫고, 미루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와는 다른 느낌인 것 같아요.

그땐 단지 하기만 싫었을 뿐이지 이걸 못해낸다거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거든요... 나중으로 미룰 뿐 그때 가서 하면 되지 뭐! 이런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내 능력 밖의 일이고, 큰 벽처럼 느껴집니다. 이 벽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문제는 이게 공부 말고 다른 일에도 이어진다는 겁니다. 공부를 그만두고 취업준비를 해보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취업준비를 하는 과정마저도 버겁게 느껴지더라고요. 옛날에는 다 해왔던 과정이고, 그땐 전혀 이런 감정을 못 느꼈었거든요..

그냥.. 다 버겁게 느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그런데 또 쉴 수도 없고, 집에서는 멀쩡히 좋은 기업 다니다가 그만두고 나온 자식이 못마땅하고 놀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예전처럼 목표가 있으면 열심히 노력하던 저로 돌아가고 싶은데 현실은 안되니까 너무 막막하고 힘들어요.. 제 미래가 깜깜하고,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광화문숲 정신과의원 염태성입니다.

의학에서는 같은 증상이라도 환자의 상태에 따라 평가를 달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100미터를 걸었을 때 숨이 차는 증상이 기저질환 없는 20대에게 나타난다면 이상소견으로 봐야 하지만, 심장병이 있는 80대 노인에서는 병이 악화되지 않았더라도 정상적으로 생길 수 있는 증상이기 때문입니다.

정신과에서 생기는 문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정신과에서 흔히 호소하는 증상들인 집중력 부족, 의욕 저하, 자신감 저하 같은 증상들은 병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그 감별이 더욱 중요합니다. 따라서 현재 가장 추천드리는 방법은, 믿을 만한 정신과의원을 방문하셔서 현재 상태에 대해 평가를 받아 보시는 것입니다. 

현대 정신과에서는 이 사람이 가진 문제들이 병리적인지 아닌지, 즉 병으로 인해 생기는 것인지 정상 범위인지를 구별하는 여러 유용한 방법들이 많습니다. 100%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평가를 통해 지금 상태에 적절한 치료나 접근법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가지고 계신 증상들은 써 주신 글만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으나, 일반적으로 우울증이나 성인 ADHD, 불안장애에서 보이는 증상들로 보여서 이에 도움이 되는 투약치료를 하면 예상보다 훨씬 쉽게 호전을 기대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정신과 치료에는 약물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어쩌면 지금 상태에서 약물 이외의 치료인 인지행동치료나 지지적 상담이 더욱 도움이 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치료자와 합의된 세팅 내에서 지속적인 방문이 이루어져야 함은 당연합니다.

과거는 과거로 남겨두고 반성은 하되 지나치게 후회하거나 집착하지 마십시오.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며 필요한 도움을 받다 보면 지금의 힘든 순간들이 언젠가는 지나간 일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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