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한때 학교폭력을 당했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사람입니다. 그때의 충격으로 인해 저는 지금 마음의 감기를 앓고 있습니다. 그 애들은 저를 비웃고 깎아내리고 조롱하고 괜히 왕따 시키고 무시하고 게다가 저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퍼뜨리는 등 극악무도한 짓을 했습니다. 저는 이에 대한 대책이 뭘까 고민을 하던 중입니다. 복수하고 싶지만 지금 제 여력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두형입니다.

따돌림은 그 대상에게 깊은 상처와 공허함을 남깁니다. 더군다나 폭력이 동반되었다면 그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마음의 감기라 담담히 표현하셨지만, 글쓴이님께서 감내하셨어야 할 아픔에 대해 진심으로 위로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란 질문에, 마치 어떤 프로토콜이나 알고리즘 같은 정해진 답이 존재하진 않을 것입니다. 단지 글쓴이님이 글쓴이님께 가장 알맞은 삶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 기준을 제안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향후의 행동이나 방향을 택할 때 전적으로 글쓴이님의 마음, 행복에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을 택하는 것입니다.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느냐 하실 수도 있지만, 의외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 이외의 기준을 따라 다음 행동을 결정합니다.

예컨대 혹자는 학교폭력에 대해 '반드시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반대로 '오히려 내 마음이 평안해지기 위해서는 용서를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제게 어떤 것이 옳은지를 물으신다면 '정해진 답은 없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가치관이 다르고, 그러한 행동이 각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각각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복수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것이 옳은지 그른지, 정의로운지 그렇지 않은지 등을 따져보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습니다만, 이러한 행동이 '지금의 내 마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글쓴이님이 잘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여력이 많고 현실적인 수단도 명확해 가해자들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지금 내 마음, 내 행복'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그러한 조치를 진행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그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고, 여러 가지 다른 걱정들이나 불안이 동반되어서 이러한 조치 자체가 내 마음에 너무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면 이는 적절한 대처 방식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복수하겠다', '용서하겠다'의 두 가지 선택지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내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먼저니, 어떻게 할지는 천천히 치유받고 마음이 편안해진 후 다시 생각해봐야겠다.'라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고, 글쓴이님이 스스로 생각하시기에, 지금 글쓴이님께 가장 알맞은 또 다른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 내 삶에 다음 나의 행동이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입니다. 지금의 글쓴이님, 글쓴이님의 마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중심에 두고 다음 행동, 삶의 다음 단계를 차근차근 선택해 나가시면 좋겠습니다.

 

사족을 덧붙이자면, 삶에서 아픔을 경험하였을 때 이러한 아픔은 종종 우리 마음 전체를 물들이곤 합니다. 이는 문제라기보다는, 상처 받은 사람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에 대해 생각을 덧붙입니다.

'아, 이런 생각이 떠오르면 너무 힘들다. 어떻게 하면 이런 생각을 안 하지? 이런 생각을 안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언제쯤 이 고통으로 해방될 수 있을까? 과거의 일인데도 나는 평생 여기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이를 억지로 억누르려 하거나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할수록 그러한 생각이 더 차오르기도 합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나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지금, 여기의 이 순간이 과거의 아픔으로 다시 물들어 갑니다.

그래서 아픔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실 땐, 이를 억누르거나 억지로 잊으려고 하진 않되, 생각이 생각에 꼬리를 물지 않도록 그저 알아차려 주시기를 제안드립니다. 예전의 아픔, 상처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면 '아, 또다시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하고 알아차리고, '그때 그만큼 힘들었지, 고생 많았어.'라고,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깊은 위로를 건네고 다독여 주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나 자신만큼 나의 아픔을 깊게 이해할 수는 없기에, 나 스스로가 진심으로 건네는 위로는, 어떤 타인의 따뜻한 말들보다도 큰 힘이 있습니다.

 

글쓴이님의 아픔을 생각하면 건네기에 참 조심스러운 말로 글을 맺을까 합니다. 어떠한 행동이든 방향이든, '그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의 기준이 아닌 '나를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의 기준으로, 천천히 글쓴이님의 행복과 원하시는 삶을 향해 나아가시면 어떨까 합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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