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어린이집의 아이 중 절반 이상이 어린이집에서 지속적인 학대를 당하고 있었는데, 제가 처음으로 CCTV 확인 후 학대 교사와 어린이집을 경찰에 고소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아이의 엄마들이 제 아이가 문제라 선생이 애를 때렸다며, 제 아이 탓을 하며 단톡방을 따로 만들어 욕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조사 결과 제 아이뿐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학대 대상이었음이 밝혀진 후에서야, 엄마들이 자기들이 그동안 선생을 두둔한 것이 미친 짓이었다는 둥 그제야 분위기가 전환되었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하지만 엄마들의 입소문 때문에 이미 저와 제 아이 이미지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다른 동네로 이사 가야 할 상황까지 되었습니다. 자기 애들이 어린이집 교사에게 맞고 다니는 걸 걸러준 제게 고맙다고 하진 못할 망정, 제가 욕먹을 대상이 되어 그 일로 상처가 된 것이 점점 분노로 바뀌어갑니다.

어떤 누군가는 시간이 지나면 잊히는 게 일이니 그냥 아이를 생각해서 조용히 잊고 지나가라고 하는데, 저는 점점 더 화나고 사건이 명확해집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데 지금 감정은 같은 반 엄마들과 동네 엄마들을 향한 점점 커지는 분노뿐입니다. 믿었던 담임과 원장에 대해서도 분노가 솟구치고 엄마들에 대한 마음도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문의드립니다. 이것이 과연 약을 먹어 해결되는 문제인지도 궁금합니다.
 

사진_픽셀


답변)

사연을 보면 억울한 일을 당하고 나서 분노가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선명해지는 경험을 하고 많은 어려움을 겪고 계신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해볼 문제는 내가 왜 분노를 느끼는지, 분노의 본질에 대해 고민이 필요합니다.

분노에서 관심이 되는 부분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분노는 단순히 생리적인 이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우리는 누군가에게, 어떠한 행동에 대해 화를 내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잘못을 저질렀고, 나는 그 과정에서 감정이 상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분노하게 됩니다. 그리고 처벌에 대한 욕망이 있기 때문에 분노를 경험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잘못된 일을 한 사람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분노가 나의 두려움, 슬픔, 무기력함을 가리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벌어진 일에서 단순히 화가 나는 건지, 그 이면에 다른 감정이 깔려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상처 받고 화가 났을 때, 다른 누군가가 그 고통에 대해 비난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비난하고 싶은 충동도 분노와 관련이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우월감을 느끼고, 우리 마음 한 구석에서 기쁨을 느끼게 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분노들은 진짜 문제를 해결하는데 방해가 되고, 건설적인 해결책을 마련하는데도 장애가 됩니다.

 

지금 당장 도움이 될만한 조언을 드리자면, 분노는 어떤 식으로든 내가 평가절하되고 있다는 느낌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많이 약해져 있다는 신호로 인식하라는 것입니다. 화가 날 때는 더 가치 있는 무언가에 집중을 하는 게 낫습니다.

그리고 화가 많이 날 때 어떠한 판단을 너무 믿지 않는 것이 낫습니다. 분노에 휩싸여 있을 때는 문제의 부정적인 측면을 너무 강조하게 되어 현실적인 평가를 방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안의 복잡성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셔야 합니다. 분노는 어떠한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을 너무 단순하게 만들어버려 문제를 어렵게 합니다. 그리고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화가 나면, 분노의 대상을 가장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화를 정당화하기보다는, 그 과정이 장기적으로 나한테 도움이 되는 일인지 고민을 해보십시오. 마지막으로 누구든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자비로운 마음을 가지고 상황을 바라보도록 노력하는 게 낫습니다.

 

억울한 일을 겪고 느끼고 있는 분노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분노에는 이처럼 다양한 속성들이 있고, 사람마다 분노의 이유가 다양하기 때문에 제한적인 수준에서 밖에 조언을 드리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정말 분노가 해결되지 않아 일상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우울감으로 번진 상황이라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서 전문가와 분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을 받는 게 나을 수 있습니다. 모쪼록 평안하게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형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림평온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국립공주병원 전공의 수료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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