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염태성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20대 여자입니다. 저에겐 친구가 한 명 있는데, 동호회 커뮤니티에서 만난 친구입니다. 그 친구도 저랑 동갑인 여자입니다. 그리고 저희 둘 다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했고요.

그 친구는 (자세히 알진 못하지만) 조울증, 불면증, 불안장애 등 신경증을 앓고 있어요. 그리고 매우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내야 하는 일을 하고 있고요. 저는 그 일이 제 친구에게 좋지 못한 환경이라고 생각이 돼서, ‘그 환경이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좀 더 규칙적인 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는 근무지를 택하는 것이 어떻겠냐’라고 말해봤지만 자기는 이 일이 좋고 ‘어쩔 수 없다’라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SNS에 자해 사진, 자살 암시 글, 자해 후 응급실에 간 사진과 함께 인생을 비관하는 글들을 올리는 친구를 보며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자해한 것은 자신이고, 그것을 치료받길 원해서 응급실에 간 것도 자신인데, 어째서 또 그 선택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닥친 일인 것처럼 자신의 인생과 운명에 대해 비관하는 글을 쓰는 것일까? 이 모든 게 정말로 ‘어쩔 수 없는 일’, ‘내가 원하지 않아도 나에게 찾아왔을 일’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엔 약물을 남용하고, 습관적으로 자해를 하고, 자살 시도를 하는 그 친구가 옛날의 저 같아서 옆에서 많이 응원했습니다만, 점점 그런 날들이 반복되니 저도 지쳐갑니다. 주변 사람들의 말처럼 그냥 저 아이의 인생이겠거니 하고 손을 놓고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지, 이제는 저도 확신을 잃어가고 있네요.

저는 사실 이 친구처럼 습관적으로 안 좋은 선택을 하는 친구들을 옆에서 많이 도왔습니다.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손을 내민 것이지만 그 친구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자신을 가혹하게 대하는 모습을 봐야 할 때 저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제 친구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 이것이 오지랖이라면 저는 그냥 지켜봐야 할까요? 제 친구는 매일매일을 충동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할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 속에 사는데도요?

제가 어떤 방법으로 이 아이를 그나마 위험으로부터 떨어뜨릴 수 있을지, 아니면 이제는 정말로 손을 놔야 하는지, 제가 선택한 방법이 친구를 더욱 어둠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싶어 글 올립니다. 글이 다소 혼란스러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광화문숲 정신건강의학과의원 염태성입니다.

우선 전문가가 아니심에도 상태가 중한 친구분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쓰고 계신 모습을 보니 곧은 성품을 지니신 분이라 생각이 들며, 동시에 글에서 괴로움이 느껴져 안타까운 마음도 함께 듭니다.

 

써 주신 글만으로 친구분의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만, 이전 진단명들이나 SNS에서의 행동을 보면 친구분은 '경계선 성격장애'가 가장 의심이 됩니다. 경계선 성격장애는 정신과에서 다루는 문제들 중에서도 특히 치료가 어려운 질환이며, 반복적인 자해 및 자살행동으로 주변을 힘들게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환자들은 대인관계에서 항상 불안정감을 느끼며 타인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극단적인 행동들을 자주 하곤 합니다. 따라서 이 분들이 하는 자해 및 자살시도는 순수하게 죽고자 하는 목적 이외에도, 자기 나름대로의 의사소통 방식이 추가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드렸다고 해서 친구분의 상태가 중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원인이 어찌 되었든 반복적인 자살사고나 시도는 실제 자살로 이어질 위험성이 매우 높습니다. 제가 드리고자 하는 이야기는 현재 친구분의 상태는 글쓴이분의 노력만으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중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이런 종류의 환자는 약물치료와 더불어 전문가의 꾸준한 정신치료나 변증법적 행동치료 등의 방법이 필요하고, 이 분처럼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것은 치료가 충분히 잘 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현재 글쓴이분께서는 지금 상황과 위치에서 친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고 계신 것으로 보이며, 추가적인 노력은 전문가에게 맡겨 두셔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처럼 지지적인 태도를 유지해주시되, 친구분께 꾸준히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독려해드리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친구분의 상태변화로 인해 글쓴이분의 정신상태가 너무 큰 악영향을 받지 않도록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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