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30대 초반 백수입니다.

중등도 우울 에피소드로 3년 정도 치료 중입니다. 몇 달 전에는 약물 과다복용으로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해서 폐쇄 병동에 며칠 입원 후에 퇴원하고 부모 집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가서 난간 잡고 아래를 보니 무서워서 못 뛰어내리고 집으로 돌아왔었고요. 샤워 호스로 목에 둘둘 감아 조이는 방법 시도해봤는데 죽을 수가 없더라고요. 번개탄, 손목 자해, 차나 지하철 들이받기, 농약이나 쥐약 먹기, 아파트 옥상 투신 등등은 생각만 해보았고 실천으로 옮겨본 적이 없습니다. 무섭더라고요.

하루하루를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라 죽는 게 무서워서 살고 있습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이런 생각만 합니다. '아, 내일 아침에 눈 뜨지 말고 그냥 영영 잠들어버렸으면 좋겠다.' '길가다 누가 뒤에서 내 머리에 총 쏴줬으면 좋겠다.' 더 이상 호전될 기미도 없고 더 이상 나아질 노력, 의지도 없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의 실력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환자인 제가 노력을 안 하니까 그렇다고 생각하고요.

(중략)

입에 풀칠은 해야 하니까 취업은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기 싫고 설령 하더라도 위에 열거한 일들이나 비슷한 일을 하게 될 텐데, 그럴 바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고 하루가 고통일 텐데 차라리 죽는 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판단이 듭니다. 그렇다고 이런 일에 종사하기는 분들을 비하하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분들은 그분 나름대로 열심하 사시는 것이니까 누구도 비하할 자격은 없는 것이니까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다는 글귀를 보았는데 저는 죽음만이 모든 걸 끝내는 마지막 선택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지난번 입원 당시 아비라는 사람이 죽을 거면 남한테 피해나 주지 말고 조용히나 죽지 왜 가족들한테 피해 주고 난리냐고 말하더군요. 이 말 때문이기도 하고 자살을 실패해서 반병신이나 식물인간 돼서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부모, 가족한테 경제적 부담 지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겁쟁이인 제가 고통스럽지 않게 한 번에 100퍼센트 죽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장문의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총기입니다.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는지를 여쭤보시는 질문자님의 사연에 마음이 아파옵니다. 사실 처음 이곳 질문 게시판을 찾으셨던 이유 속에는, 분명 마음의 위안을 찾기 위함이 있으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결국 죽음 밖에는 답이 없다는 생각에 이르신 모습을 보니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슬픈 결론에 이르기까지, 질문자님을 괴롭게 한 그 좌절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많은 분들 중에는 질문자님처럼 죽음을 찾는 분들이 있습니다.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해서는, 오히려 의사에게 자살 방법을 묻는 슬픈 모순을 종종 보게 됩니다. 스스로도 그 모순에 기가 막혀하면서도 말입니다. 그러나 그 역설적인 마음속에 얼마나 큰 아픔과 절망이 깃들어 있는지를 차차 알게 될 때마다 정말로 가슴이 아파집니다.

가슴 아픈 것은 그분들이, 그리고 질문자님이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가 분명히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삶이 아니라면, 지금의 이런 비참한 모습이 아니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 또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죽고 싶은 마음이라기보다는 살고 싶지 않은 마음,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현실의 괴로움이 더 절절히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지금 죽음을 물어보시는 질문자님의 마음 역시도 실은 뼈아픈 고통의 신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절망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그럴 희망도, 기력도, 의지도 바닥나 버린 현실이 질문자님을 막다른 길로 내몰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유독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돈이 있다면, 독서도 하고 운동도 하고 콘서트도 다니면서 지내고 싶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유치하다고 말씀하셨지만요. 그런 여유로움 속에서라면 삶의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기 때문일 거라 짐작합니다. 만약 그런 삶이라면 이렇게 무기력하게 죽음을 찾지 않을 거라고 말이죠.

그렇다면 뒤집어서 질문을 드려볼까 합니다.
사람들은 왜 살고 싶어 하는 걸까요? 
왜 죽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왜 죽을 것 같다고 힘들어하면서도 악착같이 살려고 버티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각자의 이유와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책임감으로, 죽지 못해서, 태어났으니까 등등 말이죠. 하지만 분명 그중 가장 큰 이유는 행복하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 어떤 행복이건 간에 말이죠.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행복보다는 불행이, 기쁨보다는 슬픔과 아쉬움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삶이건 행복한 '순간'들은 분명 있다는 것입니다. 굳이 사업에 크게 성공한 성취감이나, 대단한 성공을 이뤄낸 행복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바쁜 와중에도 잠시 커피를 마시는 여유.
우연히 들른 식당의 밥이 맛있을 때의 여유.
오랜만에 들은 노래가 귀에 감겨올 때의 흥겨움.
아이스크림을 한입 물었을 때 잠시간의 짜릿함.
핸드폰에서 잠시 스쳐간 우스운 농담들.
날씨가 좋을 때의 따스함.

그것이 무엇이든 분명 우리의 삶은 우리로 하여금 행복하게 만드는 '순간'들을 던져줍니다. 아무리 하찮고 보잘것없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힘겹지만 삶을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무언가를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분명 그런 행복의 순간순간들은, 우리를 죽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자님께서 독서, 운동, 콘서트 등을 말씀하신 것 또한, 그런 것들이 주는 행복함, 그런 것들을 누릴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필요하지만 없다고 느끼고 있는 것들 말이지요.

그러나 진정 질문자님을 좌절케 하는 것은, 질문자님 마음속의 '이분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재벌 2세나 로또 100억 당첨처럼 '완전한 여유' '완벽한 행복'만이 진정한 행복이고 가치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분법 말입니다. 이분법은 지금의 사소한 행복과 기쁨은 어차피 아무 의미도 가치도, 희망도, 미래도 없는 것이라고 무시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래서 질문자님의 삶을 행복이 완전 배제된 삶으로, 선택받은 남들의 삶은 행복만으로 가득 찬 삶이라는 흑백논리로 이끌어가 버립니다.

행복을 잃고 무기력에 빠지는 것은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입니다. 재미있어 보이던 것들이 재미없어지고, 행복하던 것이 더 이상 관심 없어집니다. 재밌을 것임을 알아도, 시도해 볼 힘이 없어집니다. 그럴 가치도, 기력도 없어집니다. 우선 1차적으로는, 그런 생리적인 현상들에 분명 약물이 직접적인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질문자님이 이미 여러 차례 받아오셨다고 하셨지만요.

 

하지만, 그에 더해 오늘 제가 질문자님께 권해드리고 싶은 것은 '사소하고 작은 행복을 포인트처럼 적립해보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하루를 되돌아보며 일기를 쓰듯 포인트 카드를 적어가 보는 것입니다.

카드를 들고 다니며 수시로 적어도 좋습니다. 하루 중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아졌던 순간이 있다면 카드에 적는 것입니다. 없었다면 적어도 조금은 덜 우울했던 순간이 있었는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런 순간들에 점수를 매겨보는 것입니다. 가장 최악의 기분 상태를 0점, 가장 행복한 기분 상태를 10점이라고 두었을 때 그 순간의 기분은 몇 점인지를 매겨서 말이지요. 그렇게 하루하루 매일의 행복 포인트는 몇 점이었는지를 기록해보는 것이 질문자님께 어쩌면 작은 씨앗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변화를 위한, 변화를 향한 씨앗 말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점수가 0점에서 답보할지 모릅니다. 포인트 일기를 써나가는 것부터가 큰 고역이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 하루하루 쌓여가는 포인트를 바라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나에게도 쌓일 포인트가 있다는 것을, 비록 0.1점일지라도 포인트가 쌓이는 날이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완전한 0점짜리로 낙인찍어버린 내 삶에 희미한 씨앗을 틔워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벗어나기 어려운 이분법의 늪에서 스스로를 건져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포인트가 적립되는 것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조금씩 변화해가는 스스로를 느끼시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노력하기 힘든 병을 가진 이에게 또 다른 노력을 권하는 바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노력보다는 작은 변화라는 점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방향의 전환, 변화의 시작이라는 면에서 말이지요. 어렵다면 언제든 정신건강의학과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실 수 있다는 점 또한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모쪼록 질문자님의 생활에 희망이 깃들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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