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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없어요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12.31 04:58

[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입니다.

저는 짧은 기간 우울증 약을 처방받았고, 현재는 별 효과도 보지 못하고 복용을 중단한 후 우울증이 악화되지도 않아 그만둔 상태입니다. 저는 감정이나 생각을 남에게 얘기하는 걸 극도로 두려워하는데, 그것 때문인지 상담 과정이 지나치게 힘든 것도 영향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요즘 들어 심리적으로 굉장히 불안하고, 오락가락하는 느낌이 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감정 조절이 잘되지 않고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이 극도로 심했다가도 금세 식어버리는 것을 지나 기피하게 됩니다. 점점 무엇에 집중하는 것도 힘들고 주의력이 많이 흐트러졌습니다. 솔직하게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고, 약을 다시 먹는 게 옳다면 그렇게 하고 싶은데 도저히 말을 꺼낼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정신과를 가봐야겠다는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무섭다기보다는, 계속해서 제 속마음을 얘기하고 제 생각에 대해 말을 나눠야 한다는 사실이 저를 미친 듯이 압박합니다. 상담하면서 받는 스트레스가 두려워 저를 점점 심리적으로 방치하는 기분이 드는데 이 두 개를 어떻게 해야 잘 조절할 수 있을지 방향을 잡을 수 없습니다.

정신과에 대한 편견 때문이 아닙니다. 말하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들에게도 작은 비밀 하나조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전반적으로 사람들에게 제 속을 털어놓는다는 자체가 제게 짐을 덜어내는 게 아닌 다시 쌓아 올리는 기분입니다.

당장 정신과를 갈 수 없는 지금 상황에 저는 심리적인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 게 도움이 될까요? 또 상담을 극도로 힘들어하더라도 정신과에 가는 게 필요하다면 그래도 가야 할까요?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푸른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신재현입니다. 아직 그리 많지 않으신 나이인데도, 질문자님의 글 곳곳에 삶에 대한 깊은 고민의 흔적이 보여 참 안타깝습니다. 먼저 힘내라는 말씀부터 드리고 싶어요.

현 상태를 글만으로는 명확하게 알 순 없지만, 과거 우울증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았고, 현재 마음이 많이 불안정한 상태라면 무엇보다 먼저 우울증이 다시 나타나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상담이 힘드시더라도 짧은 시간이나마 평가를 받고, 필요하다면 도움받기를 권유드려요. 

우울증은 늪과 같아서, 얕은 깊이로 빠진 상태라면 내 노력으로 빠져나올 수 있지만, 허리까지 혹은 가슴까지 빠져든 상태에서는 혼자 힘으로 벗어나기 힘들어요. 누군가의 손을 잡아야만 밖으로 조금씩 나올 수 있을 겁니다. 평가를 받는다는 건, 내가 늪에 빠져든 깊이를 가늠해보는 작업입니다.

 

만약, 상담이 많이 부담된다면 치료 이전에 미리 이야기하시길 바랍니다. 상담이 부담되고, 거부감이 있어 지금은 당장 필요한 만큼만 도움을 받고 싶다고요. 이런 말을 이상하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겠지만, 대부분 정신과 선생님들은 여러 상황을 참고하여 충분히 이해해 주실 겁니다.

실제로 정신과에는 자신의 속내를 이야기하기 어려워하는 분이 많이 방문하십니다. 모든 이들에게 처음부터 상세한 상담이 가능하지 않고, 당장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꼭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자신의 간략한 상태를 종이에 적어서 전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어떤 방법이든 괜찮아요. 상담을 함께 하는 것이 더 치료에 도움은 되겠지만, 깊은 내용의 상담을 배제한 약물치료만으로도 현재의 감정적인 불안정함에 도움을 줄 수 있어요. 그러니 부디 두려움은 조금 내려놓으시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걸 어려워하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타인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 자체에 대해 마음을 부담을 느낀다는 말은, 단순히 현재 상태가 ‘우울증’이라는 것과는 다른 문제일 수 있어요.

내가 왜 이렇게 사람들에게 마음을 털어놓기 힘든지, 현재 느끼는 어려움의 바탕에 깔려 있는 요소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감정을 과도하게 억압하고 있거나, 필요 이상으로 타인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는 탓이겠지요.

두 가지 모두 최근에 나타난 문제는 아닐 겁니다. 성장 과정에서 꽤 오랫동안 이어져 온 버릇일 가능성이 더 커요. 예전에 내 감정을 수용해주지 못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살아왔을 수도 있고, ‘나’를 드러내는 상황에서 받았던 마음의 상처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 과정에서 서서히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게 힘들어졌을 겁니다. 습관, 성격처럼 바뀌기 시작하는 거죠.

 

타인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면에는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 이 두려운 경우가 많고, 이런 경우 타인이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기보다는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거라 예상하게 됩니다. 이런 습관이 이토록 힘든 상황에서조차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도움받는 걸 막고 있는 것이지요.

나의 어려움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그 윤곽을 짚어볼 수 있다면 나의 모습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더 나아가 힘들어하는 ‘나’에 대해 공감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를 고민하는 과정이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고요. 오래된 ‘버릇’을 바꾸기 쉽지 않지만, 불가능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걸 어려워해 자꾸 피하기만 한다면, 감정 표현은 한층 더 어려운 것이 되어버립니다. 결코, 어렵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힘든 상태에서 조금 벗어나실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나를 이해할 수 있는 가까운 친구에게 ‘나는 OO라고 느껴’ ‘나는 OO해’ ‘나는 OO라고 생각해’라는 식의 단순한 자기표현을 연습 삼아 조금씩 해나가시길 바랍니다.

말로 하는 게 힘들다면,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로라도 조금씩 연습해 보세요. 아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내 마음 표현이 상대방에게 그리 버거운 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거예요. 그리고 나에게 너무 필요한 위로를 받을 수도 있겠지요. 작은 경험들이 자신감을 주고, 좀 더 깊은 이야기를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익숙하지 않아 낯설고, 망설여지겠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꼭 필요한 연습이라 생각해요.

 

현재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좀 더 건강한 행동으로 조금씩 바꾸어나가는 노력도 꼭 필요할 거라 생각합니다.

부디 필요한 도움을 받으실 수 있길 바랍니다.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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