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지웅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예전엔 ‘마음이 안 좋다.’라는 말을 쉽게 썼는데, 요즘 들어 마음을 설명하려니 무척이나 어렵더라고요. 시험에 낙방하고, 여자 친구에게 차이고 이런 경험을 한 데 묶어서 ‘마음이 허하다’ ‘마음이 미어진다’ 이렇게만 쓰다가 최근에 정신의학에 대해서 알아갈수록 뇌과학과 생화학으로 많은 부분이 설명되는 것 같아 흥미를 느끼고 있습니다.

평상시에 기분이나 감정 상태야 마음이란 말을 써서 표현할 수 있어도 정신질환을 설명하는 데에는 뇌과학이나 생화학이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박지웅입니다.

최근 뇌과학에 관심을 두시게 됐다고 하셨는데 반갑네요. 저도 학생 때 뇌과학에 재미를 느껴 신경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최근 정신의학은 뇌과학을 비롯해 생물학적인 이론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정신질환에 가장 효과적인 치료가 뇌를 바꾸는 것이니까요. 미래에는 과학적으로 마음을 모두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화학적으로 물리적으로 풀어내듯이 언젠가는 마음의 작용을 수치로 환산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현재까지 의학으로는 정신에 대해서 완전하게 설명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몸짱이 되는 법, 공부 잘하는 법, 대인관계 좋게 하는 법 등등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해의 결핍이 지식의 부족이 아니라는 겁니다.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뇌과학이나 생리학에 해박하다고 해서 마음을 건강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질환을 이해하려면 분자생물학부터 심리적인 차원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다각적인 시각이 필요합니다.

정신질환에 대해 더 말하자면, 정신의학에서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정신질환이 꼭 유전되는 것은 아닙니다. 멘델의 유전 법칙에 따르듯 열성, 우성 유전자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더위에 약한 사람이 있고, 추위를 덜 타는 사람이 있듯이 스트레스에 대해 반응하는 기질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것은 우리 몸에 통증이 존재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마음의 고통이 곧 내가 살아가는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심지어 일부 정신의학 전문의들은 ‘정상적인 우울증’이라는 표현도 씁니다. 우울증이 고쳐야 할 병리가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정상적인 감각에서 출발한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느낄 때 그 신호를 잘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신호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내가 느끼는 감각이기 때문입니다. 뇌과학으로 여러 기제들을 설명할 수 있지만, 질환을 겪는 주체는 결국 사람입니다. 따라서 느끼는 고통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진단하는 것이 재활의 기초이기 때문에 환자의 이야기와 경험이 소외되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는 시점은 내가 하던 일상생활이 흔들릴 때입니다. 아까 언급한 것과 같이 마음이나 정신은 수치로 환산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과 정신질환의 경계가 모호합니다. 그러나 평소 수면에 문제가 없었는데 자꾸 새벽에 깨고, 직장에 나가지를 못한다거나, 자주 만나는 친구를 만나지 못할 때 이런 식의 문제들이 지속된다면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에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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