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늘도 정말 ‘일 못 하겠다.’ 싶은 상태지만, 어떻게든 출근해서 무능하게 보내는 하루하루. 이런 상황을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이라 부르며, 정신의학적 측면에서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국가적 측면에서 점점 더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이란 출근은 했지만 육체적·정신적 컨디션이 정상적이지 못하여 업무의 성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는 일반적으로 기업에서 직원의 직무 만족도 및 건강한 회사 조직의 중요한 척도 중 하나인, 직접적인 노동시간의 상실을 뜻하는 결근율(Absenteeism)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꽤 오랫동안 기업 등은 직원들의 지각이나 결근(Absenteeism) 등으로 고통받아 왔지만, 현대 사회에서 근로자 본인과 기업에 대두되고 있는 문제는 출퇴근 시간은 꼬박꼬박 지키지만, 항상 일하고 있지 못하는, 영혼 없는 출근,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이다.

 

사진_픽셀

 

의사로서 기업의 손해에 크게 관심을 기울일 일은 없지만, 정신의학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프리젠티즘(presenteeism)을 겪고 있는 그 개개인의 정신건강에 관련된 측면일 것이다.

현재까지도 인용되는 가장 신뢰할만한 연구는 2004년 10월 미국 하버드대의 ‘Harvard Business Review’에 실린 ‘Presenteeism: At Work--But Out of It’ 연구로, 여기에서 프리젠티즘으로 인한 손실은 미국에서 연간 150억 달러(약 17조 5000억 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포브스'는 1년간의 조사를 통해 프리젠티즘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미국에서 매년 1,800억 달러(약 210조 원)에 이른다고 보도한 바 있는데, 이전에 조사했던 결근율(Absenteeism)의 비용인 매년 840억 달러(약 97조 원)를 훌쩍 능가하는 비용이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하 한국노총)이 2015년에 서비스산업 8개 직종 조합원 1,018명을 대상으로 산업안전 보건 실태조사를 시행했다. 응답자 중 360명(38.5%)이 지난 1년간 아픈데도 출근한 경험(프리젠티즘)이 있다고 답했는데, 그 비율이 가장 높은 직종인 ‘톨게이트 직원’ 군은, 57.1%가 지난 1년 사이 ‘프레젠티즘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2016년 11월에 실시한 비슷한 조사에서는 조사 대상 1,748명 중, 출근해 일하는 동안 건강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이는 17.8%에 불과했다.

 

우울증과 직장

20대 여성 OO 씨는 어느 날 직장 업무 중에 심각한 공황발작을 겪었다. 응급실에서 심장에 아무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는 잠시 안심했으나, 이후 한 달 사이 세 번의 공황발작을 겪었다.

언제부턴가 업무 중에 집중력이 떨어져서 하던 일을 제대로 마무리 못 하는 경우가 생기고, 잠시의 업무 전화에도 앞에 생각했던 내용이나 하려고 계획했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잦아졌다.

직장과 일상생활에서 잦은 건망증을 일으키고, 친구나 직장 동료와의 사적, 공적 대화 중에 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고 대화에 집중 못 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인지기능 장애를 겪기 시작했다. 불면증, 의욕의 저하, 이유 없는 불안과 가슴 두근거림 등도 심해지면서 친구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권유받아 병원에 방문했다.

2년 가까이 힘들게 준비했던 공기업 채용 공채에 합격하여 입사한 이후 누구보다도 자신의 현재 직업을 사랑하고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입사 후 1년 남짓한 시기에 업무 영역에서 문제가 생기고 효율의 저하를 느끼면서, OO씨는 심한 압박감을 느낀다고 호소하며 진료실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몇 개월째 말할 수 없이 힘든 날들을 보내온 것이다.

차라리 어디 다리라도 부러졌으면, 교통사고라도 났으면 마음 편하게 휴가나 휴직을 신청할 텐데, 지금의 업무는 컨디션이 저하된 지금의 자신의 상태에는 너무나 버거워서 해내기가 어려운데, 마음 편하게 휴식 기간을 신청하고 자신을 돌볼 명분도 여유도 찾지 못해 궁지에 몰린 심정을 호소하였다. 진료 내용을 토대로 우울증으로 진단 내렸다.

치료의 경과에 관해 설명하고,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불이익까지 막을 수는 없겠지만, 경과에 따라 필요하다면 일정 기간 병가나 휴직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며, 그런 경과를 밟은 이전의 환자가 많았다는 사실을 설명하였다. 면담을 마치고 항우울제를 처방받아 귀가하면서, 다음 주 내원하기로 하고 인사를 하는 눈빛은 처음 진료실에 들어서던 40여 분 전에 비하면 조금은 후련해 보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쉽게 관찰되고 주변의 걱정과 관심을 받기 힘든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의 질환일 경우, 휴식은 더욱더 어렵다. 힘든 당사자로서도 휴식을 요구할 이유도 명분도 스스로 찾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저작권자 © 정신의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