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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하지 않은 우울증의 증상, '인지장애 증상’
김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11.11 01:34

[정신의학신문 : 김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울증(주요우울장애)의 증상은 크게 정서적(Emotional), 신체적(Physical), 인지적(Cognitive) 증상 세 가지 군으로 나뉜다. 환자 다수는 우울한 기분과 불안 등의 심리적(정서적) 증상과 불면, 식욕저하 등의 신체적 증상을 먼저 호소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이 생각하는 능력과 방식(인지)이 이전과 다르게 바뀌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울한 기분이나 불면증 만큼이나 흔한 우울증의 증상 중의 하나가 '우리가 생각, 판단하고 행동하는 방식에서의 변화와 장애', 즉 '인지 기능의 장애'인데, 우울증의 진단과 치료 과정 중 환자와 치료자 양측 모두에서 간과하는 경우가 흔하다. 이러한 인지장애의 증상은 DSM-5 우울증 진단 기준에서도 언급되지만(진단 기준 5; 정신운동성 초조나 지체, 진단 기준 8; 사고력 저하 또는 집중력 저하 또는 우유부단함), 그 중요성이나 빈도를 감안하면 더 자세하게 살펴봐야 한다.

우울증의 인지 기능 증상은 크게 다음의 영역에서 나타날 수 있다.

1. 기억력 장애
2. 집중력 장애
3. 정신운동 기술, 속도 장애 (Psychomotor Skills)
4. 생각의 속도 장애 (사고 처리 속도의 지연)
5. 의사 결정, 판단 장애 (Decision-Making)

사진_픽사베이

 

우울증의 인지 증상 1 - 기억력 손실

우울증과 기억력 손실과의 인과관계는 현재로서는 뚜렷하다.

이전 수십 년에 걸쳐 관찰된 우울증 환자들의 기억력 저하와 장애에 대해 대부분은 나이, 정신증적 상태, 혹은 환자가 기억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물론 우울증이 동기 부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환자의 책임을 묻는 듯한 이론들은, 현재의 뇌에 대한 이해와 우울증에 특징적인 인지 결손의 특수성에 대한 최신 연구를 통하여 폐기되었다.

이제는 우울증이라는 질병이 실제로 기억력 장애를 일으킨다고 이해된다. 우울증의 경과에 따라 기억에 관여하는 뇌의 일부가 실제 물리적 손상을 입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울증 환자들의 뇌 일부가 위축되고 이로 인해 여러 인지 장애, 저장된 기억의 재생 장애 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있다.

다음 인지 기능 증상의 하나로 소개할 집중력의 손상, 지속적인 주의력 장애도 기억력 장애의 원인이 될 수 있으며, 우울증 치료를 위해 사용되는 일부 약물이 부작용으로서 기억력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

우울증과 기억력 손상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환자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상황들을 겪을 수 있다.

· 대화 중 말하고자 하는 특정 단어를 떠올리지 못한다.(aphasia)
· 어제 가족이나 친구와 나눈 대화 내용의 일부를 잊어버린다.
· 최근 접했던 책, TV 프로그램, 영화 등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기가 힘들다.
· 일정 기간 여러 가지를 동시에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경우 큰 어려움을 겪는다. (working memory의 장애)
· 자신의 지난 일 중 특정 세부사항을 떠올리기가 어렵다.

오래 반복된 일상적인 행동이나 특정 기술 등에 대한 기억이 손상되는 경우는 보다 드물고, 가장 흔하게는 언어적인 정보를 다루고 기억하는 능력이 손상을 입는다. 우울증이 더 심할수록 기억력 장애도 더 크게 일어나며 노인에서 특히 기억력이 손상된 경향이 더 흔하다. 기억력 감퇴는 노화나 치매의 증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신중한 진단이 필요하다. 물론, 청년기, 중장년기에도 발생할 수 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겪는 기억력 저하라는 인지적 문제는 그 환자가 우울증의 증상이 나아진 후에도 여전히 잔존한다는 사실도 연구결과 밝혀져 있어, 적극적인 치료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우울증의 인지 증상 2 - 집중력 장애

종종,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나 글을 읽을 때처럼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이거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전과는 다른 집중력의 장애를 느낀다. 복잡한 업무 상황 등 여러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상황에 있을 때 이러한 집중력의 문제가 더 명백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우울증 환자는 여러 일 중 아무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중요한 여러 일에 관심을 끊어 버리고 단 한 가지에만 집중해버리기도 한다. 일상적인 업무수행능력, 멀티태스킹 능력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불행하고도 모순되는 점은, 우울증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주변의 환경에 집중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는 반면에, 자신의 우울증으로 인한 내적인 부정적 생각에 집중하는 데에는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에 집중하고 그것을 처리하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소비되기 때문에 다른데 집중할 여력이 없어져 집중력의 장애를 겪는다는 이론도 있다.

성인 ADHD 증세와 혼돈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집중력 장애의 경과에 대해 주의 깊은 진단이 필요하다.

 

우울증의 인지 증상 3 - 정신운동 기술, 속도 장애 (Psychomotor Skill)

정신운동 기술(속도)이란 신체 동작(movemnet)과 생각(thinking)이 동시에 어우러지는 수행(기술)을 말한다. 균형잡기나 조정 같은 동작들도 포함된다.

뇌(brain)와 신체(body)가 함께 기능해야 가능한 동작들을 지칭하는데, 우울증이 심할수록, 연령이 증가할수록 이 기능 수행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울증에서 MRI 연구를 통해 관찰되는 뇌의 미세 변화가 관련되어 있다.

컵에 주스를 적당히 따르는 동작, 야구에서 공을 잡은 동작, 세탁물을 개는 동작, 화장하기, 글씨 쓰기 등이 이러한 영향을 받는 정신운동 기술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우울증은 여러 가지 일상에서 동작의 미세조정의 실패, 균형잡기의 실패, 동작의 느려짐, 반복적 동작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정신운동 기술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DSM-5의 주요우울장애 진단 기준에 특정하게 기술되어 있는 정신운동성 증상으로는 정신운동성 초조(psychomotor agitation)와 정신운동성 지연(psychomotor retardation)이 있다. 위에서 설명한 특정한 동작이라기보다는 전체적인 정신, 신체적 변화이기 때문에 좀 더 흔하게 나타날 수 있다.

정신운동성 초조(psychomotor agitation)는 내적인 긴장이나 안절부절못함과 관련해서 신체적인 움직임이 동반되는 상황을 말한다. 즉, 내면에서 뭔가 계속 움직여야 한다는 불안한 느낌이 들고 그로 인해 다리를 떨거나, 손을 흔들거나, 발을 디디면서 안절부절못하는 듯한 동작들을 목적 없이 반복한다.

정신운동성 지연(psychomotor retardation)은 그 반대로, 정신운동 전체가 느려지는 현상을 말한다. 말하는 속도가 느려지고, 움직임의 속도(걷는 속도 등)가 느려지고, 생각의 속도가 느려지는 등의 현상의 우울증의 정신운동성 지연 증상이다.

 

우울증의 인지 증상 4 - 생각의 속도 장애 (사고 처리 속도의 지연)

우울증을 겪는 많은 환자들이 두뇌 회전 속도가 느려졌음을 호소한다. 대화중 본인이 말할 때 아주 느리고,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거나 주변의 정보를 이해하고 습득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어려움을 겪는다. "생각이 느려졌다(slowed thinking)."혹은 "머리에 안개가 끼었다(Brain Fog)."라고도 표현한다.

우울증의 증상으로 느려지는 사고의 과정은 "실행사고능력(Executive Thinking Skills)"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무언가를 계획하고 정리하여 문제를 해결하도록 생각하는 생각의 기술이다. 계속해서 제공되는 주변의 상황을 판단하여 그에 맞게 행동하도록 요구되는 고차원적인 사고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부모님의 집에 자동차를 운전해서 방문한다는 계획은 언제 출발할지 정해야 하고, 자동차에 연료가 충분한지 확인해야 하며, 경로를 정해야 하고, 교통정체 시간과 장소도 피해야 하는 등, 실행사고력이 필요한 작업(executive thinking task)이라고 할 수 있다.

우울증에서는 이러한 실행사고능력의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 어딘가에 차를 몰고 가는 것도, 저녁을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가전제품 수리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점점 더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린다. 주요우울장애 환자의 20~30%에서 이러한 실행사고능력의 속도에서 현저한 저하를 보이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우울증의 인지 증상 5 - 의사 결정, 판단 장애 (Indecisiveness), 우유부단

주요우울장애 환자들은 의사 결정에 어려움을 겪으며, 우유부단함은 DSM-5 진단기준에도 구체적으로 일부 포함되어 있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매일 수백 가지 이상의 작은 결정들을 내린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난 직후에만 해도 언제 침대에서 일어날지, 오늘 뭘 입을지, 아침으로 뭘 먹을지, 오늘 샤워를 할지, 우산을 가지고 갈지, 어느 경로로 출근해야 할지 등등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번도 생각하지 않고 결정을 내리지만 우울증 환자들은  사소한 사항들조차도 결정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종종 자신이 그런 결정을 내릴만한 자격이나 능력이 없다고 느끼고 짓눌리며,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얼어붙어서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태로 갇힐 수도 있다.

우울증 환자들의 우유부단함의 원인 중 하나는 의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욕과 동기의 결여는 우울증의 주요 손상 중의 하나이며,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 결과로써 오는 보상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능력이 결여된다. 어느 쪽이건 즐겁지 않으니 결정을 내리고 결과를 맞이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울증으로 인한 뇌의 손상이 우유부단함의 원인으로 여겨진다. 한 연구는 뇌의 내측, 복측 전뇌 피질 부위(medial and ventral prefrontal cortex)의 회백질 손실을 동기부여 감소와 의사 결정력 저하와 연계시켰다.

또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 높은 수준의 불안감이 의사 결정을 어렵게 하는 원인의 하나인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김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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