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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인지 왜곡, 인지행동치료의 원리 (1)
김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10.05 00:37

[정신의학신문 : 김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닭이 먼저인가, 알이 먼저인가?
우울증의 먼저인가, 비관적인 사고(생각)가 먼저인가?

정답은 없다. 그러나 실제 많은 경우에서, 우울증이 '습관적 부정적 사고'의 결과인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원인이 되는 사고방식을 인지 왜곡(cognitive distortion)이라 한다.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을 때, "내가 또 잘못했구나.", "완전히 다 망쳤어!", "제대로 하는 일이 하나도 없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꾸짖기 시작한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에는 그에 어울리는 부정적인 감정이 뒤따라 오고, 부정적인 감정은 우울증을 야기한다.

이 개념은 1960년대 정신의학자 Aaron T. Beck에 의해 개발된 심리치료의 일종인 인지치료의 작동 원리이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충분히 자주 반복한다면,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기 시작하고, 우리의 감정은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변한다.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러한 "자동적인 부정적 사고"를 멈추고 그 생각들을 좀 더 긍정적이고 사실에 가까운 생각들로 바꾸어야 한다. 잘못된 인지 방식들을 싹부터 잘라냄으로써, 우울증이 시작되기 전부터 멈춰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인지 치료는 우리를 우울증에 빠뜨리는 10여 가지의 인지 왜곡, 잘못된 사고 패턴을 밝혀내고 교정하는 것이다.

 

● '올 오어 낫싱' 사고 (All-or-nothing thinking) – 매사를 중간은 없이 흑백논리로 보는 시각이다. 완벽하게 성공하지 못하면 모두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42세 남성 환자 OO 씨는 국가직 공무원인데, 6개월 전 심각한 업무 효율의 감소와 무기력증 등으로 휴직까지 고려하면서 내원하였다. 약물치료 및 상담치료를 진행하면서 몇 개월 후 완쾌되는 양상을 보였고 다시 일에 다시 몰두하기 시작했다. 필수 업무가 아닌 야근이나 교대 근무 보직도 마다하지 않고 열정적이었는데, 회사 연공서열 상 그의 승진이 유력한 상태인 것을 의식하고 있었고, 완전히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결과는, 비슷한 경력의 다른 동료에게 승진의 기회가 돌아가게 되었다. 직후 병원을 방문한 그는 완전히 낙심해있었다. 낙심한 것뿐만 아니라 실제 일어난 일에 대해 심각하게 부정적인 해석을 하고 있었다. 면담 중 그는 "이제는 절대로 승진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느낌, 자신의 "경력은 완전히 실패했다"라는 생각에 힘들다고 호소하였다.

이런 종류의 사고방식은 항상, 절대로, 영원히, 완전히 같은 용어로 상황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절대적인 상황은 살면서 거의 없고, 일반적으로는 완전한 성공도 완전한 실패도 아닌 회색 영역에 머물러 있게 된다. 실제 적용되는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용하는 어휘에서 완전히, 절대로, 영원히 같은 어휘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일어난 상황에 대해 좀 더 정확한 설명을 찾아봐야 한다. 여기 예에서 OO 씨가 승진을 못 하는 것에서는 사실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나는 승진을 정말 원했지만, 승진이 이번에는 다른 동료에게 돌아갔다. 다음번에는 아마 되지 않을까 싶다."

 

사진_픽사베이

 

● 과도한 일반화 (Overgeneralization) – 단 하나의 부정적인 경험을 일반화해서 앞으로도 그런 일이 영원히 반복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난 옳은 결정은 절대 못 내려").

50세 여성 환자 OO 씨는 심한 갱년기 증상과 우울한 기분, 감정 기복 등으로 우울증을 의심하고 병원에 내원하였다. 면담 중에 학업으로 외지에 가 있는 자녀들 이야기를 하면서 "자식들이란 다들 저희들 크고 나면 부모의 고마움, 외로움은 아예 모른 척한다."라고 슬퍼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낸다는 환자의 이야기에, 친구 모임에 참석해 볼 것을 권유하자, "그런 데 가봐야 자기 자식 자랑, 자기 신랑 출세한 이야기, 시부모 흉보기, 그게 다다. 남는 건 없다."라고 말하며 부정적으로 대꾸했고, 그러면 등산 동호회 같은 사회 활동은 어떠냐는 의사의 권유에 "그런 건 다 묻지 마 관광이라고 주변에서 흉본다."라며 얼굴을 찌푸렸다. 과도하게 모든 가능성을 일반화하는 인지 왜곡이 관찰되는 상황이다.

지나친 일반화의 덫에 빠져 있으면, 하나의 고립된 사례를 들어 모든 다른 사례들은 똑같다고 가정하는 방식으로 생각이 진행된다. 자식들이란 정말 모두 부모를 모른 척하고, 중년 여성들의 모임은 정말 모두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일까? 분명히 그렇지 않은 자식들, 그렇지 않은 친구 모임이나 동호회가 더 많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제각각 분리되고 독특한 개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상기해야 한다. 정확히 똑같은 사람도, 정확히 똑같은 모임도, 관계도 없다.

모든 상황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스스로에게 적대적이라고 가정함으로써, 자신이 가장 갈망하는 인간관계나 사랑, 우정을 얻지 못하도록 벽을 쌓는 것이다.

 

● 심리적 필터 (The mental filter) – 긍정적인 일은 무시해버리고 부정적인 것에만 포커스를 맞춘다.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수많은 일보다는 잘 안 되는 한 가지 문제에만 신경을 쓴다.

27세 여성 OO 씨는 운전 경력이 5년 넘었지만, 여전히 운전이 무섭고 부담스럽다. 오늘도 출근하는 길에 잠시 다른 일을 생각하며 운전하다가 차선을 예측하지 못하고 끼어들어야 하는 상황이 있었다. 어떤 친절한 중년 아저씨가 차를 거의 정지하듯이 하고 비상 깜빡이를 켜서 그녀가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손짓해 배려해 주었다. 그 후 회사에 거의 도착하여 주차장에 진입하는 순간, 나오던 차량이 빵빵거리며 상향등을 번쩍거리고 위협하며 먼저 지나가 버렸다. 그녀는 오늘도 회사 책상에 앉아서 '이 나라에는 무례하고 분노 조절 안 되는 멍청하고 충동적인 남자들밖에 없다.'라며 투덜거렸다. 차선 변경을 배려해 줬던 친절한 아저씨도, 주차장에서 항상 주차를 편리하게 할 수 있도록 일부러 나와서 이리저리 봐주시는 세심한 관리 아저씨도 쉽게 잊고, 위협을 당했던 일에만 포커스를 맞춘다.

심리적인 필터로 긍정적인 사건들은 모두 흘려버리고, 부정적인 사건들만 골라서 살펴보고 있다. 내 주변에서 항상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할 것인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그녀를 돕기 위해 차를 멈춰 세워 준 착한 아저씨에게 좀 더 생각을 기울였더라면, 그날 하루의 기분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 긍정적인 면 평가절하하기 (Disqualifying the Positive) – 왜 이 일이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것이 아닌지를 설명할 이유를 계속해서 찾는다. (“아까 소개팅한 여성분이 헤어지면서 오늘 즐거웠다고 이야기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그분이 친절한 분이라 인사말로 이야기해준 것 같아.")

30세 여성 OO 씨는 사진작가로 일하고 있다. 불면증이 점점 심해져서 병원을 방문한 그녀는 자신의 일을 설명하면서 '아무리 시간을 들이고 노력해도, 순간의 창의적인 타고난 재능을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에 힘들다'라며 호소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다, 작년까지는 서너 차례 연속으로 사진전에 입선도 했었다는 이야기에, 의사가 그건 노력과 재능의 결과가 아니겠냐고 이야기하자, '아뇨, 초보이고 신인이라고 처음에는 쉽게 상도 주고 뽑아주는 거예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성과 몇 번에 의기양양하다가는 큰코다치죠, 그건 그냥 배려예요.'

일부는 낮은 자존감의 결과로도 이런 인지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 자신이 그럴만한 자격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다음에 누군가가 당신을 칭찬할 때, 당신이 그런 칭찬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작은 목소리에 저항하라.

"고맙다."라고 말하고 웃어보는 것으로 일이 조금 더 쉬워질 수 있다.

 

● 결론으로 바로 건너뛰기 (Jumping to conclusions) – 실제 근거 없이 바로 부정적인 결론을 내려버린다. 독심술사처럼 행동하거나("저 사람 분명히 날 딱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점쟁이처럼 군다("난 이따위 끝도 없는 일에 평생 메여 있을 거야.").

24세 남성 OO 씨는 군 제대 후 복학, 학업이나 학교생활이 갑자기 너무 버거워지고 아침에 일어나면 또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한숨부터 나오더니, 심장이 두근거리며 숨이 답답한 증상이 자꾸 심해져 내과를 방문했다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권유받고 내원한 환자이다. 우울증 치료 후 2개월가량 지나면서, 증세는 호전을 보였고, 활기를 다소 되찾으며 소개팅도 잡혀있다고 면담 중에 자랑하고 귀가했었다. 2주일 후 다시 진료실에 온 OO 씨는 침울했다. 소개팅 결과가 안 좋았으며, 애프터 신청도 거절당했다고 이야기하며, '대학 학벌도 그렇고, 전공도 그렇고, 뭐 미래가 안 보이니 그럴 수밖에요,'라고 한숨 쉬었다. '학벌이나 전공의 문제인지 어떻게 아느냐, 단지 흡연자를 싫어하는데 자꾸 담배 냄새가 나니까 그런 건 아닐까?'라는 의사의 질문에 '그런 생각은 안 해봤다.'라고 말한다.

스스로를 자기 불안의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고는 실망에 대한 준비를 너무 일찍 시작하는 것이다.

결론으로 바로 건너뛰기 전에, 여러 가지 의심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어야 한다.

 

이어서 남은 5가지 잘못된 사고 패턴에 대해 게재됩니다.

 

김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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