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경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지난 글에 이어 우리를 우울증에 빠뜨리는 인지 왜곡, 잘못된 사고 패턴을 살펴보자.

 

● 극대화 및 최소화 (Magnification and Minimization) - 어떤 일이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도록, 안 좋은 측면을 극대화하거나 좋은 측면을 최소화하여 인식한다.

32세 여성 OO 씨는 소위 '무대 공포증'으로 종종 병원에서 인데놀을 처방받아 발표나 사회적인 모임 등을 미리 대비하곤 하는 분이다. 어느 날 회사에서 고위 간부가 직접 참여하는 프로젝트 프레젠테이션을 맡게 되었다. 열심히 준비한 그녀는 병원에 들렀을 때 의사에게 발표를 잘 마칠 것이라는 자신감도 표했다. 다음 병원 방문 시 그녀는 표정이 별로 안 좋았다. 예정대로 진행된 며칠 전의 프레젠테이션에서 그녀는 초반에 잠시 너무 긴장하여 몇 초간 다음 순서를 잊고 멍하니 서 있는 상황이 있었다고 했다. 의사가 팩트를 계속해서 질문하자, 그런 상황은 두 번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후 순조롭게 잘 마쳤으며, 상사와 동료, 고위 간부도 칭찬하거나 책하지 않고 호의적인 분위기로 마무리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초반에 있었던 자신의 실수에 당황했고 결국 프레젠테이션을 망친 것같이 느껴진다며 불평했다. 그녀는 초반은 몇 초간의 실수라는 결점은 극대화하고, 프레젠테이션을 순조롭게 완료했다는 업적은 최소화하고 있다.

망원경을 잘못된 방향에서 보면 모든 것이 실제보다 작아 보인다. 반대쪽 끝을 보면 모든 것이 커 보인다. 극대화/최소화 함정에 빠진 사람들은 망원경의 잘못된 끝을 통해 자신의 모든 성공과 실패를 다른 방향으로 바라본다.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라는 옛말을 기억하라. 한 번의 실수에 너무 얼어버리면, 전체적인 그림을 보는 것을 잊는다. 

뒤로 물러서서 이따금 숲을 바라봐야 한다. 

 

사진_픽사베이

 

● 감정적인 추리 (Emotional reasoning) – 자신의 느낌이 현실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난 정말 패배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실제로도 그래.”)

위에서 만났던, 소개팅에 실패했던 24세 남성 OO 씨는 종종 '전 정말 답이 없는 사람 같아요.'라고 말하곤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의사의 질문에 '실제로 달라지거나, 나아지는 게 없으니까요.'라고 답한다. 병원에도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고, 실제로 치료를 진행하면서 호전을 보이고, 일상 학업이나 학교생활에 이전보다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자신이 느끼는 안될 것 같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현실이 실제로 나아지는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OO 씨는 실제 그 상황이 어떤지보다는, 그 상황을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에 기반하여 상황 판단을 해왔다. 그의 앞에 놓여있는 학업이나 학교, 다가올 취업, 연애, 결혼 등 엄청난 과업들을 생각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로 희망이 없을 정도인가? 실제로는 젊은이들은 다 해야 하는, 해볼 만한 일들이다. 해야 할 일들에 압도되는 바람에, 별 소용없는 결론에 도달했을 뿐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그냥 부정적인 감정으로 다루면서 달래고,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우면 된다. 굳이 부정적인 결론으로 체계화할 필요는 없다.

해나가야 할 상황에 압도됨을 느낄 때, 부정적인 생각을 멈추기 위해 가장 먼저 시도해 보는 방법이 있다. 그 일들을 더 작은 것들로 쪼개어서 각각 우선순위를 메겨본다. 이제 목록의 첫 번째 것부터 그냥 시작한다. 믿거나 말거나, 기분이 좀 좋아지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향해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작아도 그것은 시작이며, 현재의 무력감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 '반드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should’ and ‘should-not’) – 스스로를 이래야 한다, 저러면 안 된다는 식의 엄격한 규범에 가둔다. 그 규칙에 따르지 못할 때마다 스스로를 맹비난한다.

뭔가 일이 특정한 방법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을 직시하면, 그렇지 않다. 바꿀 수 있는 상황에 집중해서 시도해 볼 수 있고, 바꿀 수 없다면 그냥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계속해야 한다. 자신의 정신 건강이 "뭔가는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법칙"보다 훨씬 중요하다.

 

● 꼬리표 붙이기 (Labeling) – 근본적으로 실수와 결점 등을 가진 사람으로 자신을 분류한다. ("난 패배자다, 난 바보다, 난 실패자다.")

"난 바보야"라고 나에게 꼬리표를 붙이는 건, 자신을 게으르고 절망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그 꼬리표의 효과는 크다. 이제 자신에게 붙여진 꼬리표에 부응하여 자신을 사실상 가두게 된다.

 

● 개인화 (Personalization) - "내 탓이야"

위에서 과도한 일반화 인지 왜곡을 보이던 50세 여성 환자 OO 씨는 또 다른 형태의 인지 왜곡도 자주 반복해서 보였다. 지금도 아들이 기대하던 대학과 다른 곳에 진학하게 된 것을 자신의 잘못이라고 여긴다. 그녀는 자신이 나쁜 엄마라고 느끼며, 아들이 막판에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이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상황을 확인해보면, 실제로는 그냥 모든 엄마들이 그러했듯이 헌신적으로 자식 공부 뒷바라지해온 것 이외에, 크게 잘못된 점은 보이지 않는다.

아들의 학업 성적에 대한 모든 책임을 스스로 지고 있다. 아들이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있는 하나의 개인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OO 씨에게, 앞으로 또 아들에 대한 대화가 나올 때, 아들이 대학에서 장학금을 타게 된 사실에 대해 "아드님이 칭찬받을 만한 일을 한 것 같은데, 이건 어머님의 공로 아닌가요?"라고 물어볼 것이다. 아마 OO 씨는 "아뇨, 지가 공부 열심히 해서 그렇죠."라고 대답할 것이다. 의사는 그때, "그럼 성적이 안 나왔던 것도 아들의 책임 아닌가요?"라고 질문해 볼 것이다.

 

서두에서 말했듯이,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인가 우울증이 먼저인가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질문과 같다.

우울증이 부정적인 생각을 만들기도, 부정적인 생각이 우울증을 만들기도 하며, 두 가지는 서로 악영향을 미치며 서로를 악화시키며 나아간다.

약물치료이건 정신 치료이건,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일단 끊는 것이 중요하다. 우울증의 핵심 증상과 원인이 되는 부정적인 인지 왜곡을 파악하고 이를 교정하는 작업은, 최신의 약물치료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이 될 수 있고, 실제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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