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픽사베이

‘왜냐하면 우리 인류는 살인자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지구상에 살인이 끊이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이처럼 불온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용기가 필요할까. 저 한마디 문장을 말하기 위해 데이비드 버스는 무려 7년간 살인에 대한 진화심리학적인 연구를 수행했고, 그 결과로 이 책 ‘이웃집 살인마’가 나오게 되었다.

 

사실 인간이 살인을 통해 진화했고, 우리가 그 후손들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탐탁지 않게, 혹은 불쾌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한 문장이 나오기 위해 7년의 세월이 걸렸다면, 그게 무엇이든 일단은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한번 펼친 책을 끝까지 놓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진화심리학이 아니더라도 이미 우리는 살인이나 폭력성을 설명하기 위한 많은 이론들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사회 학습 이론‘은 관찰과 모방을 통해 사회적 행동을 체득하는 것으로 살인을 설명하며 ’병리학 이론’은 아동 학대, 유전자 이상 등에 의한 심리적 이상, 뇌손상이 살인을 일으킨다고 설명한다. 혹은 ‘사회학 이론‘을 통해 자본주의, 가난, 불평등과 같은 사회적 관점에서 살인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 이론들은 살인에 대해 제한된 설명만을 한다는 한계점이 있다. 사회 학습 이론은 대중 매체의 영향이 적은 사회에서 살인이 발생하는 것을 설명하지 못하며, 대다수의 살인자가 병리학적 이상이 없음이 통계적으로 나타난다. 공산주의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보다 살인이 적게 일어나는 것 또한 진실이 아니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이야말로 근본적인 살인의 원인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진화의 중요한 원리는 자연선택과 성선택이다. 자연선택이 재해, 질병, 포식자에게서 살아남는 것이라면 성선택은 이성의 선택을 받아 자손을 남기기 위해 같은 종 내에서 경쟁을 하는 것이다. 동족을 죽이는 살인행위는 바로 이 성선택과 관련되어있다. 즉 살인은 짝짓기 경쟁에서 이득을 얻기 위한 합리적 선택이었으며, 이 선택의 결과로 우리는 살인을 하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장 흔한 살인인 치정관계에 의한 살인을 살펴보자. 이러한 살인 유형의 핵심은 여성은 자식이 자신의 후손임을 확신할 수 있지만, 남성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있다. 이는 곧 남성이 공들여 양육한 아이가 얼마든지 다른 남성의 아이일수도 있다는 사실을 내포한다. 충격적이게도 아버지가 자신과 유전적으로 관련 없는 아이를 키우는 경우가 전체의 9~13%에 달한다는 연구결과는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처럼 남성이 공들여 양육한 아이가 만약 불륜에 의해 태어난 다른 남성의 자손이라면 구애를 위한 시간과 노력, 자녀 양육을 위해 소모한 자산 들은 모두 쓸모없어진다. 커다란 진화적 손실인 것이다. 결국 여성의 부정에 관대하고 너그러운 남성들은 자신도 모르게 남의 자손을 키우느라 정작 본인의 자손을 남길 수 없었다. 반면 아내의 부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살인도 마다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있던 질투심 넘치는 남성들은 온전히 자손을 남길 수 있었다. 이것이 현대의 남성들이 부정한 연인, 헤어진 연인들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이다. 우리 현대의 남성들은 바로 그 질투심 넘치는 남성들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저자는 각종 살인과 관련된 사실들을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하려 시도한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살인을 많이 저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들은 왜 성폭행이나 가정폭력에 그토록 민감하게 반응할까, 자녀 살해를 유발하는 원인, 별것 아닌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는 이유 등등. 언뜻 보면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도 결국 진화적 적응의 결과임을 조근조근 이야기한다.

 

이 책을 읽으면 아무래도 조금은 실망하고 우울해질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진화의 결과로 살인을 저지르는 악한 본성을 타고났다는, 현대적 버전의 성악설로 들리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버스에 따르면 사이코패스를 모두 격리해도, 학대받는 아이들을 전부 구제하여 심리치유를 한다고 해도 살인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도 특정 조건하에서는 얼마든지 살인을 저지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인이 진화적 적응의 결과라고해서 살인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성급하다. 도리어 그러한 이유로 살인을 막기 위해 더욱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 선한 것은 인위적인 노력의 결과이다’라는 순자의 말처럼, 인위적인 노력으로 살인을 줄일 수 있다면 그 노력 또한 인간의 훌륭한 본성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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