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온안 정신건강의학과의원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진 픽사베이

‘철사 어미, 천 어미’라는 유명한 실험이 있다. 주로 원숭이들을 이용한 행동학 실험들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Harry Harlow가 했던 이 실험은 붉은 원숭이의 모자관계에서의 신체 접촉의 중요성을 살펴본 고전적인 실험이다. Harlow는 먹이(젖)를 줄 수 있되 딱딱하고 차가운 철사로 만들어진 어미 모형과, 부드럽고 따뜻한 천으로 만들어졌지만 먹이를 줄 수 없는 어미 모형을 각각 새끼 붉은 원숭이에게 제시하였다. 그 결과 새끼 원숭이들은 먹이를 먹고 싶을 때에는 철사 어미에게 붙어 젖을 먹었지만, 잠시 배를 채우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천 어미에게 안겨 있었다. 천 원숭이는 그저 어미 원숭이의 생김새와 부들부들한 촉감 이외에는 제공할 수 있는 게 없었지만 말이다.

이에 대해 Harlow는 소위 접촉을 통한 안락감 (contact comfort)의 개념을 들어 설명했다. 새끼 원숭이는 안정감을 위해 먹이 말고도 복부와 복부 사이의 따뜻한 접촉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안락감을 제공받지 못하고 성장한 원숭이는 정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이후에도 다른 원숭이들이나 자신의 새끼와 애착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함을 보여주었다. 동료를 만나면 두려워하고, 교미에도 어려움을 겪고, 쉽게 놀라고 겁이 많은 모습으로 성장하였다.

 

접촉에 대한 갈망은 원초적이다. 영국의 심리학자 아가일(Argyle)은 신체접촉의 이유에 대해 성적 접촉, 양육과 의존의 접촉, 유대적 접촉, 공격과 침범의 접촉으로 분류했다. 그 중 접촉의 유대적, 의존적 목적은 성적 접촉, 공격적 접촉에 못지 않게 동물적이며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상대의 공격성이 없음을 확인하고 대상 존재의 항상성을 확인시켜주는, 체온을 나누게 되는 행위로서의 접촉은 우리의 무의식 깊은 곳에 원초적으로 각인된 욕구인 것이다.

 

한 나절만에 바다를 건너고, 실시간으로 지구 건너편의 소식을 직접 보고 들을 수 있게 된 현대인들은 과학과 기술의 발전과 함께 그 어느 시대보다 가까운 사회를 살고 있다. 기술이 이어준 인간관계는 심지어 다소 불편하리만치 서로와 서로의 간격을 좁혀주고 있다. 언제든 전화를 걸어 친구의 안부를 물을 수 있고, 당장이라도 시골에 계신 부모의 모습을 화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오늘 내가 먹은 점심식사는 SNS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된다. 언제 어느 곳에 있더도 모두와 동시에 연결되어 있다. 긴밀한 연결은 그 어느 때보다 서로와 서로를 가까이 더 가까이 밀착 시킨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서로가 서로의 분초를 확인할 만큼 가까워질수록 우리들은 접촉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오히려 ‘접촉에의 갈망’이 점차 흩어지고 있다. 수만년간 본능에 새겨진 접촉을 향한 갈망이, 끊임없이 명멸하는 손바닥 위 작은 화면 뒤에서 사라져 가고 있다.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새끼 붉은 원숭이에게 필요했던 것은 단순히 풍족한 먹이 뿐이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접촉’이 필요하다. 서로의 체온이 필요하다. 서로가 내 옆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보다 따뜻한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수백명과 동시에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공허해지는 마음은, 당장이라도 누구와 목소리와 표정을 공유할 수 있음에도 외딴 섬에 갇힌 듯 외로워지는 마음은 우리가 잠시 잊은 접촉에 대한 욕구의 빈자리가 아닐까. 모두가 조금씩 쓸쓸하다. SNS의 좋아요 버튼보다,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때이다.

 

 

김총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온안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한양대학교 의과대학 학사, 석사, 전공의
한양대학교병원 외래교수
저서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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