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불안한 사람을 대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사람을 안정시키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데 사실 이것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불안해하지 마',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 정도만 하는 게 보통이며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냐? 걱정이 지나친 거 같은데'라며 오히려 그 사람을 더 힘들게 하기도 하지요.

'불안해하지 마'라는 말은 정말 그 사람의 불안을 하나도 공감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튀어나오는 말로 어지간하면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괜찮아질 거야'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이미 공황장애, 강박증, 외상 후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1년이 지나도 5년이나 10년이 지나도 괜찮지 않아서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흔히들 남자 친구, 남편들이 이런 큰 실수를 많이 저지르는데, 본인은 실수인 줄도 모른다는 게 더 문제이죠.

 

'그냥 이겨내, 견뎌내, 너만 힘들어? 남들도 다 참으면서 살아.' 그런 말을 할 거면 아무 말없이 지켜봐 주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입을 다물고 아무 말 없이 그 사람을 지켜봐 주기만 하는 것. 이것만 해도 80점 이상의 좋은 치료가 됩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면 그 사람의 얘기를 계속해서 들어주는 것.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3시간이고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엄청난 인내심을 요구하지요. 성격 급한 한국사람은 10분도 남의 얘기를 그냥 들어주지 못합니다. 지적하고, 평가하고, 자기주장을 하곤 하니까요.

얘기를 들어주면서 만약 그 사람의 손을 잡아주거나 가볍게 어깨를 감싸준다면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지금 너는 안전해’라는 신체적 메시지를 주기 때문이지요. 불안장애에 시달리는 우리의 뇌는 노르에피네프린과 교감신경의 흥분으로 인해 인지적인 사고를 도저히 할 수 없게 됩니다. 말로 아무리 괜찮다고 수십 번 말해도 이를 알아듣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가벼운 허그나 신체적인 접촉은 그 사람을 안정시키는데 많은 도움이 되지요. 물론 그 사람과 굉장히 익숙하고 가까운 사람이어야 하며 스킨십을 행함에 있어서도 천천히 사려 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진_픽셀

 

이 과정을 통해 어느 정도 환자의 흥분이나 신체증상이 가라앉았다고 생각되면 이성적이고 인지적인 접근을 시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를 흔히 인지 치료라고 하는데 왜곡된 사고 과정을 교정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불안장애에서의 느끼는 불안의 대부분은 사실 실제보다 그것을 과장되게 받아들이고 극단적이고 최악의 경우를 가정함으로써 겪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과장과 왜곡, 일반화 등의 생각이 지나치다는 것을 이해시켜주고 오류를 고쳐주는 방법이 인지치료인데, 예를 들면 거미를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거미가 실제로 사람을 공격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독을 가진 거미는 도시엔 거의 살지 않는다는 정보를 이해시켜 주는 것입니다. 교통사고 이후 두려움으로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 사람에겐 교통사고가 불운이나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결과가 아니라, 본인이나 상대방의 운전미숙, 휴대폰 벨소리나 음악에 집중을 빼앗겨 일어났을 확률이 더 크다는 것을 전달해 주는 것이지요.  안전에 대해 꼼꼼히 주의하고 사고의 위험에 대해 늘 체크한다면 큰 교통사고가 다시 일어날 확률은 사실 무척 적은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겁니다.

또한 점진적인 노출이나 탈감작법 등이 있는데 간단히 얘기하면 고소 공포증 환자에게 처음엔 2층까지만 올라가게 하고 다음날은 3층, 그다음엔 5층까지 식으로 두려움과 불안에 적응하도록 예행연습을 시켜주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과외수업을 하듯이 진도에 맞추어 천천히 불안에 마주하도록 도와준다면 조금씩 그 사람은 꽤 높은 건물에 올라서도 예전만큼 심장이 떨리거나 무섭지는 않을 수 있게 될 겁니다.

 

누구나 병적 불안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곁에서 보면 전혀 걱정할 문제가 없는데도 일이 해결될 때까지 불안해하거나, 미세 먼지 때문에 아예 외출을 못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에이 설마 하겠지만 실제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대체 왜 이러지 싶을 정도로 아무 이유 없이 불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믿을 수 있는 누군가의 존재입니다. 아무리 강하고 완벽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이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불안감에서 혼자 빠져나오지는 못합니다. 아니 지위가 높고 유명하거나,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일수록 상실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에 더욱 힘들지요.

그냥 들어주고 옆에 있어주세요. 그 사람이 그토록 무서워하는 것들보다 내가 더 가까이 그 사람을 지켜주고 있음을 깨닫게 해 주세요. 자신의 부끄럽고 못난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하고, 당신을 쳐내고 회피하거나 모진 말로 공격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역시 두려움에서 생긴 애처로운 표현일 뿐, 상처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지긋지긋하게 그 사람의 인생을 지배해오고 괴롭히던 존재보다 훨씬 더 가깝고 안정적인 존재가 언제나 옆에 있다는 사실을 전할 수 있다면, 불안이란 유령은 어느샌가 희미해지고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박종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연세봄정신건강의학과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신촌세브란스병원 전공의
전) 서울대병원 본원 임상강사, 삼성전자 부속의원 정신과 전문의
현) 신촌 세브란스병원 정신과 외래교수, 연세대 의과대학 정신과학교실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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