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정신의학신문

 

보통 ‘은유‘라고 하면 사람들은 ’내 마음은 호수요‘와 같은 문장들을 떠올리고 현실과는 좀 떨어진 시적, 예술적 세계를 생각한다. 하지만, 인지언어학자인 조지 레이코프에 따르면 은유는 일상적 삶에 널리 퍼져있으며 우리의 사고와 개념체계를 은밀히 지배한다. 예컨대 ‘사랑은 열병‘이라는 은유적 표현을 사용하게 되면, 사랑이 가지는 열정, 즉흥성, 육체성 등의 속성을 부각시키면서, 배려, 인내, 정신성과 같은 사랑의 또 다른 측면은 은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 수전 손택은 이러한 ‘부각‘과 ’은폐’의 은유적 기능이 의학과 질병에도 적용된다는 점을 주목했다. 심지어 그것은 비윤리적 행위라고 단언하면서 말이다.

 

‘은유로서의 질병‘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사용하는 질병의 은유적 표현과 생각들이 어떻게 해당 질병을 왜곡하고 환자들을 괴롭히는지 보여준다. 책은 유방암으로 투병했던 저자의 경험에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암의 발병은 욕망을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는 개인의 성격 탓이라는 편견이 존재했고 이는 환자들에게 혐오감과 수치심을 일으켰다. 다른 한편으로 암은 곧 죽음, 사형선고라는 은유적 이미지 때문에 환자들이 치료를 쉽게 포기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결국 질병 뿐 아니라 질병에 씌워진 은유와 신화들이 환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분노하며 수전 손택은 질병은 저주도 아니며, 신의 심판도 아닌 그저 질병일 뿐이라고,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고 일갈한다.

저자는 질병의 내재적 특성, 혹은 사회 문화적 맥락에 따라 질병에 특정한 이미지가 부여됨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결핵은 주로 폐, 즉 몸 위쪽의 정화된 기관에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정신적 정화, 영혼의 질병이라는 이미지가 생길 수 있었다. 반면 암은 방광, 항문, 유방 등 부끄러운 신체 부위에 침범하기 때문에 더럽고 숨겨야하는 육체의 질병이라는 이미지가 붙었다. 이러한 두 질병의 차이는 종종 낭만화 되는 결핵과 달리 암에는 어떠한 미화나 긍정적 이미지도 부여되지 않는 이유를 일부 설명한다.

 

종교가 지배했던 고대 및 중세적 세계관에서 질병은 초자연적 징벌, 혹은 귀신들림으로서 받아들여졌다. 질병은 일종의 심판이었고, 자연스레 환자는 죄인이 되었다. 근대에 들어와 종교의 힘이 약해지고 인본주의 사상이 주를 이루게 되자, 질병 역시 신의 징벌이 아닌 환자 개인의 성격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질병은 이성이 정념을 자제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흥분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거나, 개인의 강렬한 욕망을 표출해주는 도구로 인식된 것이다. 이는 현대에까지 이어져 ‘발암적 성격유형‘과 같이 신체적 질병을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려는 경향을 낳았다.

 

위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은유적 표현이 쓰이기도 한다. 위의 예시들이 ‘질병은 A이다, 혹은 A같다’의 형식이라면, ‘A는 질병이다‘라는 표현형식 역시 사용된다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A에 해당하는 것은 대부분 부정적이고 퇴치해야 할 무엇인가가 되며, 이는 질병에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특히나 암은 질병이 가진 특유의 이미지로 인해 폭력을 선동하고 강력한 조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은유로 자주 사용되었다. 트로츠키에게는 스탈린이 맑스주의의 암이었고, 아랍인에게는 이스라엘이 이슬람의 암이었으며, 베트남인에게는 미국이 인류 역사의 암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암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며 암이 가지는 부정적 이미지를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70년대 미국에서 쓰인 책이기에 현재 우리 사회의 현실과는 다소간 동떨어진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금 시대에 결핵을 낭만적으로 여기거나,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과도하게 참았기 때문에 암이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수전 손택이 지적한 핵심적인 내용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아직도 많은, 혹은 대부분의 질병을 질병 자체로 보지 않고 은유를 통해 이해하여 왜곡된 이미지로 받아들인다. 특히 책에서 지적하는 에이즈,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은 40년 전과 전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예를 들어 조현병 환자와 단 둘이 방안에 있게 되었다고 상상해보자. 상대방이 고혈압, 당뇨 환자일 때와 정신병 환자일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분명 같지 않다. 어쩌면 일부 사람들은 정신병 환자에게 부여된 폭력성, 강력범죄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불안감을 느끼거나 심지어 그 자리를 피하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정신질환자가 정상인에 비해 범죄율이 확연히 높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도리어 모든 연구에서 일관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정상인이 정신병 환자에게 저지르는 범죄가, 정신병 환자가 정상인에게 저지르는 범죄보다 월등히 많다는 것이다. 사실과 다른 은유적 이미지가 보호받아야 할 약자인 정신병 환자들을 도리어 감시받아야 할 잠재적 가해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물론 모든 의학적 지식과 질병에 관한 개념을 은유 없이 받아들이거나 환자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현대의 인지언어학적 연구들에 따르면 인간의 사고과정의 대부분은 은유적이며, 은유 없이 어떠한 개념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의 첫 문장이 ‘질병은 삶을 따라다니는 그늘’이라는 은유적 표현이라는 점은 도리어 은유의 필연성을 방증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고나면 ‘그것이 우리가 자제하고 피하려 애써야 할 은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수전 손택의 주장만큼은 충분히 공감하고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환자가 겪는 부당한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떠한 종류의 부지런함일지도 모르겠다. 은유라는 도구가 질병을 이해하는 수단이 아닌 오해를 초래하는 원인이 되는 순간을 포착하려는 분주한 노력 같은 것들 말이다.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서울역 마음 정신건강의학과 원장
건국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졸업
한양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
(전)성동구 정신건강복지센터 상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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