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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ctor's Mail] 화를 내고 난 뒤 자책감이 자꾸 들고 기운이 빠져요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 승인 2019.04.23 04:16

[정신의학신문 : 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사연) 

사소한 일에 점점 스트레스를 받고 성격이 불같아지는 것 같아서 힘이 듭니다.

예전에는 제발 말 좀 하라고 얘기를 많이 들었었고,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말도 못 거는 소극적인 성격이었어요.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부당한 일을 몇 차례 겪고 나서 어느 순간부턴가 남들이 초면부터 무례하게 군다거나 견디기 심한 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즉시 해결하는 습관이 생겨버렸어요.

예전의 저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죠... 지렁이도 밟히면 꿈틀 한다더니...

 

사실 말이 없을 때 혼자 속 끓였던 시절보다는... 마음이 편하긴 해요.

기가 세 보이는 탓인지 더 이상 함부로 대하는 사람도 없어졌고요. (그렇다고 평소 아예 비합리적인 상황에서 화를 내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화를 내고 난 뒤 자책감이 자꾸 들고 심하게 기운이 빠지네요...

사람들은 왜 착하게만 대해주면 호의인 줄 착각하고 함부로 대할까요. 마음이 아픕니다.

 

사진_픽셀

 

답변)

안녕하세요. 글 쓰신 분 께서는 화를 내고 난 이후의 자책감, 허무감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정말로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어 타인에게 화를 내고 상처 입히는 사람들은 글쓴이 같이 화낸 이후의 자책감을 크게 느끼지 않습니다.

자신의 분노를 후회하고 이런 곳에 글을 쓴다는 것 자체만으로 글 쓰신 분은 기본적으로 선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감정에는 각자의 기능이 있습니다.

예컨대 불안은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게 하고 우울은 에너지를 아끼고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이끕니다.

분노 역시 고유의 역할이 있는데, 외부의 침입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소중한 것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상대방에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다른 감정과 마찬가지로 화, 분노는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감정인 것이지요. 

 

문제는 이 화라는 것이 지나치게 억제되거나, 너무 과해서 그 중간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혼자 속 끓였던 시절이라는 표현에서 추측해보면, 사회생활을 경험하기 전 글쓴이 분의 성향은 화를 과도하게 참음으로써 스스로를 힘들게 하였던 것 같습니다.

반면 지금은 지나치게 쉽게 화를 내는 것 같아 힘들어하는 상황이겠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위의 내용대로 화라는 감정이 온전히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부당한 요구에 적절히 화를 내고 반응하는 것은 스스로에게나 상대방에게, 그리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자연스럽고, 유용한 감정이므로, 억지로 부정하고 죄의식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화 자체가 옳고 그른가의 관점이 아닌, 지금의 나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라는 실용적인 접근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화는 강렬한 감정이기 때문에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고립시킬 수가 있습니다.

현재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볼 때 이런 식의 해가 더 크다면 화의 원인을 찾고 적절히 통제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과도하고 만성적인, 분노의 원인은 사실 무력감인 경우가 많습니다.

화를 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그냥 무시해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기저에 잇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분노 자체보다도 그 이전에 있는 무력감에 대해 탐색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보통은 이전의 경험에서 오는 것으로 어릴 때의 무력했던 경험이나, 글 쓰신 분의 경우에는 사회생활 초기에 무시당했다고 느꼈던 경험이 원인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탐색의 과정에서 지금의 나는 예전의 무력했던 내가 아니고, 주변이 사람들도 예전의 나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한결 나아지실 것입니다. 

 

분노는 즉흥적이고 폭발적인 감정입니다.

따라서 불필요하게 화가 난다고 느끼는 경우에는 잠깐 환기시키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잠깐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장소를 벗어나서 크게 심호흡을 하는 것, 혹은 10에서 1까지 숫자를 거꾸로 세면서 시간을 끄는 것만으로도 화가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친한 친구나 가족과 수다를 떨면서 전혀 다른 화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환기법입니다. 

 

적절히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화를 폭발시키는 것이 당연한 현상입니다.

최근 들어 이전에 비해 화, 짜증이 늘었다면 지금 나를 화나게 하는 상황뿐 아니라 그 일과 관계없는 내 삶을 전반적인 면을 돌아보고 지나치게 힘든 상태는 아닌지, 지친 상황은 아닌지 돌아보셨으면 합니다.

그러한 상황이라면 화를 참고 조절하려는 시도보다, 적절히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휴식을 취하려는 접근이 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화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나와 내 주변에게 긍정적인,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지요.

부족하지만 저의 짧을 글이 글쓴이께서 마음의 평안을 찾으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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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주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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