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예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림_haerin

 

◆ 진료실 풍경

“난 낙엽이야. 이 병원 저 병원 떠돌아다니니까.”

여러 병원을 전전했던 환우는 스스로 ‘낙엽’에 비유한다. 그 순간 머릿속에는 은행이나 단풍 같은 알록달록 고운 낙엽보다는 추운 겨울 앙상한 가지에서 떨어져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흩날리는 바스락 잎사귀가 떠오른다. 낙엽이 가진 쓸쓸함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낙엽‘이다’(am)라는 존재로서의 은유, 정적인 상태와 달리 또 한 환우는 동물이 ‘되었다(became)’는 동적인 변화를 언급한다.

“저는 곰이 됐는데요. 한, 3년 됐으요, 곰이 된 지.”

망상의 형성과 증상의 이유, 그 증상이 담아내는 그의 인생사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오늘은 이러저러해서 은유가 되었던 ‘시인’ 같은 환우들을 통해, 문학에서 뇌에 이르는 길을 함께 걸어보고자 한다.

 

◆ 신경문학(Neuro-Literature)

바야흐로 “지식의 통합”인 통섭의 시대를 맞아 다학제간 연구가 한창이다. “신경접두사(neuro-prefix)”의 열풍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신경과학에 주목한다. 다학제 연구는 어찌 보면 한 분야 내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에 풍부하고 입체적인 해석과 이해를 시도하는 노력으로서, 학문의 융합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간극(gaps)을 줄여나가는 이점이 있다. 1681년 무렵 신경학(neurology)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된 이래로 신경해부학, 신경생물학, 신경과학, 신경정치학 등의 많은 학문이 배태되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심리학 및 신경과학 분야에서 뇌 영상을 활용한 연구가 활기를 띠면서 1983년 뇌영상(neuroimaging)이라는 용어가 등장했고, 이후 신경언어학, 신경철학, 신경법학, 신경공학, 신경윤리학, 신경마케팅, 신경인류학 등 “신경-시대의 붐(boom)”을 맞았다.

일각에서는 뇌영상의 과장된 주장 및 맹신에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CT나 MRI 등의 뇌 스캔(scan, 뇌주사[腦走査] 사진)이 사실상 ‘뇌 스캠(scam, 사기꾼)’이 아닌가 하는 것에서부터 neuromania(뉴로매니아, 신경광, 신경마비 등으로 번역), neurohubris(거만한 신경학), neurohype(신경학 사기꾼), neurobollocks(가짜 신경학) 등의 비난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신경문학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문학비평가 노만 홀랜드의 지적대로 인간의 ‘마음이라는 산’에 오르는 서로 다른 길, 즉 신경과학적 산행로와 인문과학적 산행로라는 양쪽 산행로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과 뇌, 일견 상이하고 무관해 보이는 두 학제가 연결되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흥미롭게도 여러 학제 간 융합이 진행되면서, 일찍이 미국 유수 대학 영문학과에서는 신경과학적 비평과 분석, 인지심리학적 비평이 이루어져 작품의 이해를 도와 왔고, 역으로 하버드, 예일, 컬럼비아 대학교 등의 의과대학에서는 문학과 예술 과목을 개설하여 의과대학생들의 문학 작품 읽기, 글쓰기, 문학과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과 소양 계발에 조력하고 있다.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하기에 혹은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뇌에는 어떤 변화가 있기에 이러한 접목이 활기를 띠게 된 것일까.

 

◆ 뇌, 우주를 품다
 

Left: Adapted with permission from Dr. Croton / Right: Image credit_ GUI.Brush Blog


두 사진은 상당히 닮아있다. 좌측(보라색)은 ‘우주망(cosmic web)’을 보여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의 결과로, 우주의 물질이 3차원 그물망처럼 분포한 모습이다. 학자들은 은하에 별이 2,500억 개 정도, 관측 가능한 우주에는 은하가 1,000억 개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모습과 흡사한 우측(녹색) 사진은 우리 각자가 공평하게 하나씩 가지고 있는 뇌의 신경망이다. 뇌에는 1000억 개 정도의 신경세포 즉 뉴런이 존재하고, 하나의 뉴런은 1개에서 1000개 정도의 뉴런과 연결되니 그것은 우주의 별의 연결보다도 많고, KTX보다도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인간은 노화하지만, 뇌에는 신경가소성이 있어 새로운 경험과 행동에 따라 뇌가 변화해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뇌의 신경망이 되살아나고 새로운 가지의 신경 연결이 형성된다. 재생은 신경 점화(neural firing)를 의미한다. 새로운 체험이 뇌의 신경집합체를 활성화시키고, 유전자 활성화로 단백질이 생성된다. 기존 연결은 재생·강화되며, 새로운 뉴런은 성장하도록 자극받는다. 신경 점화로 전기·화학적 정보 전달이 가속화된다. 표리부동과는 다른 의미에서 “겉 다르고 속 다르게”, 비록 겉모습은 노화되어도 뇌와 속사람은 새로워지는 것이다.

「진료실 컬러 박스 4. 젊은 뇌를 위한 뉴로빅 운동: 황금영역 페넘브라 공략」에서 이미 제안한 바 있지만, 다시금 ‘뉴로빅(neurobics)’을 제안한다. 뉴로빅은 신경세포를 의미하는 뉴런(neuron)과 유산소운동인 에어로빅(aerobics)의 합성어로 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과 정신작업을 의미한다. 코넬 대학교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샐리 사텔은 뇌를 “양쪽 귀 사이 위치한 3파운드(1.4kg 정도)의 우주”라고 하였다. 그 우주가 지금, 이 순간에도 연결을 시도하고 그 능력을 확장하고 있다. 우주의 모든 빛의 색상을 더하면 화이트 베이지가 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시행한 “우주의 색” 이름 공모전에서 존스 홉킨스 대학의 칼 글레이즈브룩과 이반 볼드리는 이 색상을 “코즈믹 라떼(cosmic latte, 우주 라떼)”라고 명명한다. 뇌가 우주 라떼를 담아내고, 우주와 뇌가 서로 닮아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독서, 겉 다르고 속 다르고 색다르게 살아가는 방법

신경문학의 관점에서 ‘무엇을’ 읽을까, 그리고 ‘어떻게’ 읽을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져 왔다. 뇌의 연결성을 증가시키고, 마음 이론(theory of mind)과 공감, 집중력을 강화하는 효과는 주로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나타난다. 소설과 비소설, 대중소설을 읽을 때 뇌의 활성도에 차이가 있고, 하나의 소설을 읽더라도 독서 방법에 따라 뇌의 활성 부위가 달라진다. 독서 능력에 따른 차이도 있어, 초급 독자의 경우에는 언어 이해에 필수적인 베르니케 영역(뇌의 좌반구에 위치하며 언어정보의 해석과 이해를 담당)과 브로카 영역(뇌의 좌반구 하측 전두엽에 위치하며 언어의 생성과 표현, 구사를 담당), 어휘 분석에 관여하는 두정측두엽이 주로 작용하지만, 숙련된 독서 단계에 이르면 감정, 기억, 운동 영역의 연합이 두드러진다. 줄거리 파악에 머물지 않고 점차 내용에 몰입하여 그 흐름에 의식을 맡기고, 등장인물의 감정을 알아차려 공감할 뿐만 아니라, 활자화된 시·청·후·미·촉각 그리고 운동 관련 표현들이 거울 뉴런의 작용으로 독자가 직접 경험하듯 시뮬레이션의 장이 열린다.

시카고 러쉬 대학 병원 로버트 윌슨에 따르면 독서나 글쓰기 같은 적극적인 지적·정신적 활동은 과거 경험이었든 현재 진행 중이든 모두 인지기능을 향상시킨다. 그는 노인 294명을 대상으로 인지 활성의 수준을 평가했고, 이들이 사망할 때까지 평균적으로 5.8년간 매년 장기기억, 작업기억, 시공간 능력을 포함한 인지기능을 평가했다. 그 결과 평생 독서, 글쓰기를 많이 했던 사람들은 노년기에 인지 저하가 천천히 나타났고, 기저 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독서 경험이나 인지 활동에의 노출 시기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만, 늦게라도 인지적 노력과 활동을 시작하면 노화를 늦추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매리언 울프는 독서를 “작가의 지혜가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지혜가 시작”되는 행위로 정의한다. 상상력의 원천이 되고, 세계를 무궁무진하게 확장해 연결하는 이 행위는 과연 뇌의 여러 부위에서 동시에 신경 점화가 이루어지고 여러 방향으로 회로가 이어지는 앙상블을 이룬다. 어느 하나가 주도적인 활성으로 지휘한다기보다는 흩어져 있는 다양한 영역들이 각자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상호연결되어 작용함으로 빈틈을 메우고, 상상력으로 채우고, 정서적·인지적 변화를 가져온다. 이로써 독자는 재(再)경험뿐 아니라 선(先)경험까지도 가능하다. 그러다 보면 타인의 마음 상태를 이해하게 되는 마음 이론에 이른다. 독서 과정에 작용하는 뇌부위는 마음 이론이나 공감에 작용하는 뇌부위와 다르지 않다. 특히 소설은 정서적·인지적 마음 이론을 향상시켜 타인 이해, 공감, 사회 정보의 이해와 사회 추론 능력을 배가시키며, 주의 지속 시간(attention span) 즉 집중력도 높여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개인차, 남녀 차이가 있지만, 책 읽기 작업이 곧 마음 읽기 작업임에는 틀림이 없다.
 

사진_픽사베이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그의 시 「순수의 전조」 초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To see a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a heaven in a wild flower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And eternity in an hour

(한 알의 모래알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에 무한을 실어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

그는 상상력의 힘을, 작은 모래알에서도 세계를 볼 수 있는 무한과 영원의 관점을 이야기하였다. 우리에게는 오늘 책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앤 라못의 표현대로, “이 작고 납작하고 단단한 네모진 종이가 여러분에게 노래하고, 여러분을 편안히 진정시켜 주며 때로는 흥분시키기도 하는 세계를, 또 그 너머 또 다른 세계를 펼쳐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당신 앞에 놓인 한 권의 책이 쉼을 주고, 희망과 기쁨을 전달하고, 좋은 의미의 “겉 다르고 속 다르고 색다르게” 살아갈 무대를 펼쳐준다. 힘겨웠던 하루의 삶에, 이 소식이 잔잔한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 참고자료

Armstrong, Paul B. How Literature Plays with the Brain : The Neuroscience of Reading and Art.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2013.

Croton DJ. “The many lives of AGN: cooling flows, black holes and the luminosities and colours of galaxies.” Mon. Not. R. Astron. Soc. 000, 000-000, 2005.

Holland N. Literature and the Brain. FL: The PsyArtFoundation, 2009.

LamottA. Bird by Bird: Some Instructions on Writing and Life. NY: Anchor Books, 1994.

MuzurA, RinčićI. “Neurocriticism: a contribution to the study of the etiology, phenomenology, and ethics of the use and abuse of the prefix neuro-.” JAHR 4:7, 2013.

Satel S and Lilienfeld SO. Brainwashed: The Seductive Appeal of Mindless Neuroscience. NY: Basic Books, 2013.

Wilson RS, Boyle PA, et al. “Life-span cognitive activity, neuropathologic burden, and cognitive aging”. Neurology 81, 2013: 314-321.

NASA: Astronomy Picture of the Day. (2009, Nov. 1). Retrieved from https://apod.nasa.gov/apod/ap091101.html

 

*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들로 구성된 비영리단체로, 일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현장의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들의 권익과 처우를 증진시키며 이를 통해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 보호와 정신 건강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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