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 신예니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그림_haerin

 

◆ 진료실 풍경

겨울 추위에 사각사각 손 비벼 온기를 지펴본다. 후다닥 출근해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 철저히 ‘배꼽시계’에 의존하는 그들의 일과에는 오늘이 어제든 내일이든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해마(hippocampus, 뇌의 변연계에 위치해 학습, 기억, 공간개념, 감정적 행동을 조절하며, 생김새가 해마를 닮은 기관)의 과도한 위축으로 그들은 지극히 ‘지금-여기’에서의 ‘순간’을 살아간다.

10개월째 매일 보는 ‘할매1’의 반응은 마주칠 때마다 일관되다. “아이고야~꼬~! 요새는 어예 잘 안 보이시대예~? 요새는 어디 있능교~?” 이미 밥 한 그릇 뚝딱한 ‘할매2’는 고개를 들이밀며, “아이고, 여-는 우째 밥을 안주노. 배고파 죽겠다!” 그러고는 오늘 처음 본 듯 반색하며 “보소, 보소! 내, 에어로빅 반인데, 오늘 여-, 밥 주나?” 하여, 주치의를 데자뷔(Déjà vu, 기시감, 처음 보거나 겪는 일이 마치 전에도 있었던 듯 느낌)로 얼떨떨하게 만든다. ‘오늘 이 질문은 처음이지?’ 싶은 천연덕스런 웃음이 앞니 빠진 초등생의 순진무구함과 오버랩되어 한없이 귀여웁다.

이들과의 일상으로 포근해질 무렵, 절뚝 걸음이 한창 호전 중인 ‘할매3’이 환-하게 다가와 손을 잡는다. ‘앗! 내 손 엄청 찬데...’ “아이고야! 내 손도 찹다 캤디, 우예 이래 내보다도 더 차노. 마, 이리 와보소!” ‘할매3’은 한 손을 잡아끌며 병실로 앞장선다. 천천히 마주 서더니, 양손 꼬옥 잡고, 수줍은 미소로, “내가, 손 녹카주께요!(‘녹여줄게요’의 경상도 방언)” 한다. 이내 익숙한 곡조가 나지막이 들려온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 본 수운~간~
거~칠어진 손~마디가 너무나도 안타까워쏘오~.”

‘할매’의 십팔번이었을까? 생전에 할아버지가 불러주던 노래일까? 할아버지, ‘웬수’라 했는데... 이걸 다 기억하시고... 아, 좋다... ‘할매’, 고맙습니다! 뜻밖의 환대에 뭉클하는 순간, 이제껏 얼어있던 등짝에까지 불붙듯 활활 (그러나 뜨겁지 않게) 타오르는 온기를 느꼈다.
 

사진_픽셀


◆ 노화와 치매

치매의 약 70%를 차지하는 알츠하이머치매(이하, ‘치매’로 표기)는 몇몇 특정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응집되어 신경세포(이하, ‘뉴런’으로 표기)를 손상시키는 질환이다. 치매 초기에는 금방 했던 일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흔하지만, 치매가 진행되면서 점차 현재로부터 먼 과거 기억이 저하되고, 추상적 사고나 문제해결, 판단, 결정과 같은 고도의 전두엽 피질 기능이 손상된다. 여기에 행동 심리적인 문제까지 가중되면 독립적인 일상생활 수행이 더욱 어려워진다.

치매 환자의 기억이 모두 빠져나가 자신까지도 망각하는 공허함은 ‘빈껍데기(empty shell)’라는 말로 표현된다. 이는 정신을 육체의 우위에 둔 이원론적 인간 이해 방식에서 비롯된 말일 테지만, 몸도 엄연히 ‘발언권’이 있음을 고려하지 않고, 그들이 일구어낸 삶 자체를 무효화시킬 소지가 있어 다소 서운한 표현이다. ‘빈껍데기’의 육체나 치매 진단이 끝은 아니다. 아직 그들에게도 삶이 남아있다. 그러자면 그들을 침대에만 눕혀둘 수만은 없다.

치매도 ‘삶의 과정’이라 여기는 네덜란드에는 23가구에 152명의 중증 치매환자와 250명의 스탭이 ‘주민’으로 함께 ‘거주’하는 ‘호그백(Hogeweyk) 마을’이 있다.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공원, 카페, 클럽, 마트, 미용실, 영화관 등을 오가는 그들에게 치매는 ‘살아있는 죽음’, ‘죽음을 기다리는 삶’이 아닌 매일의 새로움과 충실함이 있는 현재의 경험이다. 실제, 중증 치매라도 충분한 관심과 돌봄, 꾸준한 행복감을 경험하면서 증상이 호전되는 기적을 종종 경험한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누구나 노년을 맞지만, 청년에게 노년은 아직 먼 남의 일이다. 권위적인 사고를 지닌 어른이나 선생님을 ‘꼰대’로 비하하는 은어에서 세대 간 불편감이 엿보인다. 대접받으려고만 하는 노인도 문제지만 노인을 학대하는 이에게는 눈살이 찌푸려진다. 『스키너의 마지막 강의』는 “만일 노인이 된 느낌이 어떤가를 알고 싶다면, 먼지 낀 안경을 쓰고 귀를 솜으로 틀어막은 뒤 커다랗고 무거운 신을 신고 장갑을 낀 채 정상적으로 하루를 보내보라”고 제안한다. 상대방 입장이 되어보는 이 공감 행동에는 사실 세대 간 관계를 개선시키고, 그 행동을 하는 사람의 뇌를 젊게 변화시키는 비밀이 숨어 있다. 즐겁고 지혜롭게 나이 드는 ‘와이즈 에이징(wise-aging)’, 그리고 치매 예방을 위해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페넘브라(Penumbra)에 대한 고찰

의학 용어로 ‘주변부’ 혹은 ‘허혈성 반음영’을 뜻하는 페넘브라는 뇌졸중 치료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이다. 뇌는 인체가 소모하는 전체 산소량의 약 20%를 사용하며, 각 부위마다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는데, 혈관이 막히거나[경색] 터져[출혈] 특정 부위에 산소공급이 차단되면 조직의 손상으로 영구장애나 사망에 이를 수가 있다. 그런데 완전 손상된 경색 부위는 비가역적이라도, 경색 주변 페넘브라의 뉴런은 증상 발생 후 3~4.5시간 이내의 황금시간대, 소위 골든타임 내에 혈류를 재관류(reperfusion), 재개통시키면 회복이 가능하다. 따라서 페넘브라는 생명 보존을 위해 반드시 되살려야 하는 황금영역인 셈이다.

원래 페넘브라는 1604년에 ‘거의’를 뜻하는 라틴어 ‘pæne’와 ‘그림자’라는 ‘umbra’의 합성어로 케플러가 처음 사용했다. 일식·월식 때 관찰되는 그림자는 ‘본영(本影)’인 엄브라(umbra)와 ‘반영(半影)’인 페넘브라로 구분된다. 엄브라는 깜깜한 그림자 부분, 페넘브라는 태양빛이 일부 보이는 부분으로, 1660년대 근대라틴어로 ‘완전한 그림자 바깥쪽의 반영월식’을 의미했다. 태양-지구-달이 순서대로 놓일 때, 달이 페넘브라를 지나는 동안은 지구 그림자가 달의 일부만 가려 어둡고 희미한 부분월식이 나타난다. 달이 엄브라에 위치하면 태양-지구-달의 위치가 일직선이 되고, 지구 그림자에 달이 완전히 가려지는 개기월식이 된다. 이때 빛은 지구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단파장인 청색 빛은 산란되고, 장파장인 적색 빛만 달까지 도달해 붉은 달빛, 즉 ‘블러드 문(blood mood)’의 장관을 펼친다.
 

사진_위키피디아


엄브라와 페넘브라를 지나는 달의 변화(2019년 1월 21일 개기월식, 2019년 7월 16일 부분월식, 2020년 1월 10일 반영월식)는 우리나라에서도 관측 가능하다고 한다. 이렇듯 천문학에서도 페넘브라는 아직 엄브라에 진입하기 전 지구 그림자인 암흑에 달이 완전히 가려지기 전의 상태, 달빛이 아직은 어두우나마 회색빛으로 보이는 단계로, 의학의 페넘브라와 유사하게 변화의 가능성을 품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치매환자를 진료하면서 이 페넘브라에 주목하게 된다. 노화로 뉴런이 사멸, 비정상적 단백질이 응집·침착하여 치매가 발병하고, 유전, 세균·바이러스 감염, 화학 물질에의 노출 등도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완전히 손상되지는 않아 신체·정신건강의 회복이 가능한 정신과적 페넘브라가 여전히 존재한다. 전 세대에 공히, 뇌에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 있어 우리의 경험, 생활 습관에 따라 뉴런이 활성, 재생, 성장하고, 연결된다. 즉, 인지, 기억, 주의, 집중, 실행능력, 의사결정능력이 향상되고, 심리적 유연성과 같은 행동상의 수행능력이 향상되는 것이다. 사무엘 울만의 표현대로 청춘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닌 마음가짐’이며,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을 포기하면 영혼이 주름진다’면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자명하다.

우리는 피부 주름을 다스리고 ‘지우는’ 놀라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얼굴 주름을 ‘잡는’[없애는] 노력과 더불어, 고등동물일수록 뇌의 주름이 많고 지능이 높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뇌의 주름은 ‘잡는’[만드는] 열심을 내어보자. 뇌는 점차 위축되면서 기억, 감정, 언어, 행동 상의 변화를 겪는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뉴런 간 새로운 연결을 이루고자 평생에 걸쳐 지속되는 뉴런의 재생 과정을 활용해보면 어떨까. 노년에도 청년의 열정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발 벗고 나설 만하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 노화방지용 두뇌 운동, ‘뉴로빅’이 하고 싶어 진다.
 

사진_픽사베이


◆ 뉴로빅(Neurobics) 운동

‘뉴로빅’은 신경세포를 뜻하는 뉴런(neuron)과 유산소운동을 뜻하는 에어로빅(aerobics)의 합성어로, 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과 정신작업을 의미한다. 건강한 신체 운동, 고른 영양 섭취, 적절한 스트레스 대처와 해소, 충분한 수면과 같은 건강한 생활 습관이 정신건강을 향상시키는 근간이 됨은 물론이다. 덧붙여 신경가소성의 활용, 즉 페넘브라를 공략하는 구체적 방법이 뉴로빅이다. 다양한 감각을 사용해 새로운 경험을 쌓아간다면 육체의 나이가 무색하게 새로운 뉴런의 생성, 뉴런들 간 시냅스의 기능적 연결이 증가되어 다양한 지적, 행동적 기능이 향상된다. 평소 하지 않던 행동과 동작, 그리고 생각을 함으로써 뇌의 노화를 늦추고, 치매의 시작과 진행 속도를 늦출 수가 있다.

우리가 ‘루틴(routine)’이라 일컫는 익숙한 일상 활동은 습관적, 자동적, 무의식적으로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버튼을 누른다든지, 왼손으로 양치질을 하는 것 같은 새로운 활동은 뇌를 자극하고, 뇌의 신경 점화를 촉발시킨다. 이로써 정보 전달 속도가 빨라지고, 점화되는 뉴런 간 새로운 연결망이 형성되어 젊은 뇌를 유지하는 것이다. 미국 듀크 대학의 로렌스 카츠 박사의 과학적 뇌훈련프로그램 안내서인 『Keep Your Brain Alive』(「뇌를 위한 에어로빅」으로 번역됨)에 따르면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을 사용하는 새로운 행동과 연습, 운동이 뉴런의 연결인 시냅스를 강화시키고, 기억을 포함한 정신건강(mental fitness, 멘탈 피트니스)을 향상시켜주는 성장 인자의 생산을 강화시킨다고 한다. 손쉽게 해 볼 만한 뉴로빅을 몇 가지 소개한다.

1. 오감을 사용한 감각 자극(여러 색상 관찰, 음악 감상, 냄새 맡기, 새로운 음식 맛보기, 맨발로 걷기)
2. 새 언어 학습
3. 비-우세한 손 사용(오른손잡이는 왼손으로 글 쓰고 양치하기)
4. 새로운 악기에 도전
5. 타이핑 대신 직접 펜으로 글쓰기
6. 명상과 기도
7. 감사 노트 적기
8. 웃음
9. 운동
10. 나와 다른 정치 관점 취해보기

노화, 각종 스트레스와 불안한 상황들, 부정적인 기억과 경험, 삭막하고 처절하며 힘겨운 일상 속 정신불건강의 상태, 이 모든 것이 우리 뇌를 낙담시키고 있지만, 이제 페넘브라에 주목하자. 뇌의 신경가소성을 활용한 뉴로빅, 달리 생각하고 행동하고 경험하는 새롭고 건강한 습관으로 ‘재관류’시켜보는 것이다. 오늘은 치매 환우에게서 먼저 그 온기를 얻었으니, 이제 그 온기를 나눌 때다. 그리하여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져도 우리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로움을 경험하기를. ‘브라보 유어 라이프!(Bravo, your life!)’ 영원한 청춘을 응원한다. 

 

* 참고자료

1. 뇌졸중임상연구센터(2013). 『뇌졸중 진료지침(개정판)』 서울:보건복지부지정 뇌졸중 임상연구센터.

2. 스키너,BF & 본,마거릿 공저/이시형 평역(2013). 『스키너의 마지막 강의』 서울: 더퀘스트.

3. 아난타스와미, 아닐 지음/변지영 옮김(2017).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 자아의 8가지 그림자』 서울: 더퀘스트.

4. Bredesen,DE(2014). "Reversal of cognitive decline: a novel therapeutic program." Aging (Albany NY) Sep;6(9):707-17. 

5. hoteweyk. Retrieved Jan. 10, 2019, from http:hogeweyk.dementiavillage.com/en/

6. Katz, L & Rubin, M(2014). Keep Your Brain Alive: 83 Neurobic Exercises to Help Prevent Memory Loss and Increase Mental Fitness. NY: Workman Publishing Co.,Inc.

7. Mourany,L & PillaiJ.(2014). "Education effects on rate of cognitive decline compared in autopsy confirmed Alzheimer’s, Lewy Body and vascular dementia". Neurology82(10 Supplement):P5.239. 

8. Wilson,RS, et al.(2002). "Participation in cognitively stimulating activities and risk of incident Alzheimer disease". JAMA287(6): 742-8.

9. WolinskyFD, et al.(2006). "The ACTIVE cognitive training trial and health-related quality of life: Protection that lasts for 5 years". The Journals of Gerontology Series A: Biological Sciences and Medical Sciences61(12):1324-9. 

10. NASA: Lunar Eclipse Essentials. (2011, June 8). Retrieved from https://www.youtube.com/watch?v=wuhNZejHeBg&feature=youtu.be

 

* 대한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협회는 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들로 구성된 비영리단체로, 일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현장의 불합리한 제도를 개선하고 정신건강의학과 봉직의들의 권익과 처우를 증진시키며 이를 통해 환자의 치료받을 권리 보호와 정신 건강 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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