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공황(공황발작), A 씨의 이야기 

A 씨는 고향으로 내려가는 고속버스에 오랜만에 몸을 실었다. 어젯밤 늦은 밤까지 과음한 탓에, 피로감이 들어 의자를 뒤로 젖혀 앉았다. 오늘따라 두꺼운 외투가 불편하다 속으로 생각하던 A 씨는, 순간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목이 졸리는 것 같고, 가슴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아 숨쉬기 힘들다는 느낌도 잠시, 가슴이 빠른 속도로 뛰기 시작했다. 외투를 벗고 심호흡을 해보려 해도 몸이 말을 듣질 않고, 얕은 숨만 겨우 쉴 수 있었다. 온몸에 긴장이 퍼지고 손발 끝이 저려왔다. 숨은 점차 가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A 씨는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이러다 정말 죽을지도 몰라.’

순간 격렬한 공포감이 찾아왔다. 가슴은 두방망이질 치고, 호흡은 더욱 가빠지기 시작했다. 의지와는 다르게 퍼져나가는 신체 반응은, A 씨에게는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A 씨는 있는 힘을 쥐어짜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내려서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난생처음 겪는 일에 내과에 방문해 심전도, 혈액 검사를 받았지만 별 문제없다는 말 외에 다른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다.

A 씨가 겪은 반응이 바로 공황(공황발작, panic attack)이다. 공황은 신체에서 나타나는 격렬한 불안 반응과 이에 대한 공포감으로 정의할 수 있다. 공황은 자신도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찾아오는 것이 대부분이기에, 그 공포감은 더욱 강렬하다. 또, A 씨의 경우처럼 공황이 지나가고 나면, 혈액 검사 및 심전도 등에서 아무 징후도 포착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진_픽셀


공황발작, 흔하고 정상적인 반응이다?

공황이라는 단어가 그리 친숙하게 여겨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단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공황은 우리 삶에서 그리 드물지 않다. 대한불안의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정상인의 3-4%가량은 살아가면서 공황을 한 번 이상 겪는다고 한다. 20명 중 1명 정도는, 삶에서 한 번은 격렬한 불안/공포 반응을 경험하는 것이다. 원인은 다 다르긴 하지만, 대개 심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 있거나, 신체적 피로, 과도한 음주 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위의 A 씨의 경우도 전날 있었던 과도한 음주와 피로감이 원인이 될 것이다.

또, 아이러니하게도 공황은 정상적 반응이기도 하다. 사실 공황 자체는 우리 몸이 만들어내는 위험에 대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그 정도가 강렬하여, 흔히 겪는 수준의 불안이 아닐 뿐이다. 한 번의 공황을 경험했다 해서 큰 문제가 나타나는 것도 결코 아니다. 공황을 겪은 대부분 사람은 ‘내가 피곤해서 그러려니’ ‘어제 술을 많이 마셔 그러려니’ 하며 우연히 나타난 현상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으며, 그런 경우 단발성 공황의 심리적 혹은 신체적 후유증은 남지 않는다. 다만 취약성을 가진 일부가 반복되는 공황과 파생되는 문제들을 경험하며, 결국 공황장애로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도망가느냐, 싸우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투쟁-도피 반응 (Fight or Flight response)

공황은 우리에게 ‘위험을 알리는’ 정상적인 불안 반응이다. 우리 몸이 위험에 노출되는 순간, 기계적으로 회피 행동이 나타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이 나타나는 데 일련의 알고리즘을 가지며, 여기에는 인지, 감정, 행동 모두가 관여한다. 공황을 ‘원인 모를 신체 반응’이라 여기는 이유는 알고리즘의 과정이 찰나의 순간에 일어나기 때문에,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힘든 탓이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채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위험을 인식-판단하고, 신체 장기에 즉각적 신호가 전달되며, 회피 행동으로 이어진다.

동물은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가? 아프리카 초원을 평화로이 거닐던 가젤이, 지평선 근처 희미하게 사자와 같은 위험한 동물로 ‘추정되는’ 물체를 보았을 때 어떤 행동을 보일까? 약간의 위험 신호에도, 가젤은 있는 힘을 다해 먼 곳으로 도망가려 할 것이다. 위험은 인식한 가젤의 몸에서는 어떤 반응이 나타날까? 가슴이 격렬하게 뛰고, 심장이 펌프질을 하여 산소를 실은 혈액을 가젤의 몸 전신으로 보낸다. 특히, 빠른 회피 행동을 위해 다리와 뇌 같은 중요한 장기에 에너지와 산소 공급이 집중된다. 산소 요구량이 늘면서 호흡은 가빠진다.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를 빠르게 연소시켜 언제가 됐든,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몸 상태로 변하는 것이다.

비슷한 일이 인간의 몸에도 일어난다. 길을 가던 중, 괴한이 나를 덮쳤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나를 공격하는 상대와 싸우거나, 최대한 먼 곳으로 도망가는 두 가지밖에 없다. 본능이 이성보다 앞서는 상황에서, 상대를 침착하게 대화로 설득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다. 갑작스러운 위험 신호를 감지한 우리 몸에서는, 사자를 본 가젤처럼 가슴이 덜컥 내려앉음과 동시에 심장이 격렬하게 뛰고, 산소 공급을 위해 호흡이 가빠지고, 전신이 긴장하며 중요 근육(대개 대퇴근, 흉근과 같은 대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에너지가 빠르게 연소하여 식은땀이 나고, 몸이 경직된다. 그렇게 우리의 몸은 언제라도 도망가거나, 최악의 경우 괴한과 뒤엉켜 싸울 수 있는 상태로 변한다. 이따금 이런 반응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움직임 이상의 것을 가능케 하기도 한다. 위험을 인식한 시점으로부터 신체의 전반적 활성화, 회피 혹은 투쟁의 행동이 준비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굉장히 짧다.

이런 위험에 대한 일련의 신체 반응을 ‘투쟁-도피 반응(fight or flight reponse)’이라 한다. 투쟁-도피 반응은 위험에 대한 불안 체계(anxiety system)의 반응이며, 이 모든 반응은 동물과 인류가 진화하며 미지의 위험에서 생존하기 위해 획득한 능력일 것이다. 투쟁-도피 반응은 스트레스 반응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심리적인, 혹은 신체적인 스트레스에 직면할 경우 체내에서 방출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으로 인해 생겨나는 반응이기도 하다.
 

사진_픽사베이


투쟁-도피 반응에서 나타나는 몸의 변화 : 자율신경계

투쟁-도피 반응은 우리 몸의 뇌, 신체의 장기와 근육을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하는 자율신경계가 빚어낸 결과이다. 싸우거나, 도망가기 위한 몸의 상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자율신경계 중 교감신경계가 ‘열일’한다. 교감신경절은 척수에서 뻗어 나와, 뇌와 우리 몸 모든 장기에 가지를 뻗어 있다. 교감신경이 활성화되면, 인체 모든 영역이 동시다발적으로 활성화되는 것이다.

우리 몸 각 부분에서,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 심장 - 교감신경계가 항진되면 가장 흔하게 느끼는 주관적 반응이 ‘심장이 빠르게 뛰는 느낌’이다. 마치 격렬한 운동을 한 직후처럼, 심박수가 정상 수준을 넘어 빨라진다. 격렬한 펌프질을 통해, 중요한 장기로 에너지와 산소를 공급하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혈압이 급격히 상승하기도 한다.

* 가슴 - 체내 산소 요구도가 높아지면서, 얕고 빠른 호흡이 나타난다. 헐떡이다 못해,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 소화기계 - 교감신경이 항진될 경우, 전반적 소화 기능이 떨어진다. 이는 에너지 대부분을 뇌나 대근육으로 보내며, 상대적으로 불필요한 위장관의 활동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소화 불량이 생기거나, 갑작스러운 복통 등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 목 - 뇌는 중요한 기관이다. 갑작스러운 산소의 과도한 공급은 뇌세포를 파괴하게 될 수 있어, 이에 대한 반사적인 방어로, 심장에서 뇌로 가는 혈관이 순간 좁아진다. 주관적으로 목이 졸리고 질식할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 의식 - 심장에서 뇌로 가는 혈관이 좁아질 경우, 순간적으로 뇌에 혈류가 부족해지며 아득하거나 어질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때로는 투쟁-도피 반응 중 시야가 흐려지는 느낌도 받는다.

* 피부 - 체내 장기가 급격하게 활성화되고, 에너지가 연소하면서 열이 발생한다. 마치 100m 달리기를 한 듯 많은 땀을 흘리게 된다.

부교감신경계는 교감신경계와 정반대 작용을 한다. 부교감신경계는 인체의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몸의 체온, 생리 작용이 적절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돕는다. 두 신경계는 시소와 같아서, 교감신경계의 작동이 끝나가면 서서히 부교감신경계에 그 공이 넘어가게 된다. 모든 자연의 섭리가 그러하듯 신체도 급격한 오르막을 오른 후, 반드시 내리막을 걸어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신체가 활성화되는 데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인체가 저장하고 있는 에너지는 한계가 있으며, 무한동력이 아니다. 급격하게 치솟던 신체 장기의 활성화는 추세가 꺾이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감신경계의 작용은 줄고, 부교감신경계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부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면서 격렬하게 뛰던 심장이 점차 원래의 심박수를 되찾고, 가쁜 호흡도 점차 잦아들며, 몸 전체의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다. 우리 몸은 비로소 평정을 찾는다. 신체가 안정화되며 격렬한 불안 반응이 줄어들면, 우리가 느끼는 불안과 초조함, 혹은 공포와 같은 감정도 조금씩 사그라진다. 인체는 이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온다.

교감신경의 작동으로 시작해, 부교감신경의 작동으로 끝나는 투쟁-도피 반응은 대략 30분이 채 넘지 않는 짧고 강렬한 반응이다.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원래의 자리를 되찾는다.

 

정상적 반응, 과도한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

공황이 정상적 반응이라면, 우리가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와, 또 정상적인 반응인 공황에서, 일상적으로 두려움과 공포를 경험하는 공황장애로 발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려움, 공포는 모두 불안에 속한다. 인간은 ‘낯선 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불안 체계를 발달시켜왔다. 낯섦에 대한 느낌은, 외부의 대상에 국한되는 건 결코 아니다.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몸과 마음의 반응 또한 두려움의 대상일 수 있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정상적 반응일지라도, 처음 겪는 경험에는 두려움과 공포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를 ‘공포에 대한 공포(fear of fear)’라 한다. 투쟁-도피 반응으로 인한 심리적/신체적 불안,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낯섦에 기인한 공포가 공황으로 발전한다. 이를테면 가슴이 격렬하게 뛰는 현상에 대해 ‘심장병이 아닌지’ 혹은 ‘이러다 죽는 건 아닐지’와 같은 공포, 혹은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에 ‘기절하는 건 아닌지’ ‘미쳐가는 건 아닌지’ 극심한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공황의 시작은 정상적인 불안 반응이지만, 결국 공포에 대한 공포가 공황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증폭시킨다.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던 스트레스와 개인적 취약성, 성격적인 취약함(취약성의 스키마) 등이 공황 자체의 고통과, 공황의 후유증을 더욱 크게, 그리고 길게 느끼게 만든다. 스트레스와 취약성의 연쇄 작용은, 일회성일 수 있는 불안 반응을 더 자주, 강렬하게 경험하게 만들기도 한다. 결국 이러한 요소들이 공황이 공황장애로 이행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글을 맺으며

공황이 대개 일회성이며, 대부분은 정상적인 불안 반응의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은 굉장히 중요하다. 공황을 겪은 이들이 가장 당황하는 이유는, ‘원인 모를 신체의 변화’라는 인식 때문이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에 둘러싸인 듯, 낯섦에 대한 두려움은 공포로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불안 반응(투쟁-도피 반응)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 일련의 과정을 거쳐 몸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다만 공황이 조금 더 격렬하고, 그 때문에 더 불안감을 자극하여 생소하게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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