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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공황장애를 유발한다? - 공황장애 알아보기(3)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03.11 06:10

[정신의학신문 : 강남푸른정신과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공황장애를 겪은 A 씨의 이야기 

출판 업계에서 일하는 A 씨는 요즘 죽을 맛이다. 가뜩이나 적은 인력으로 겨우 이끌어 가던 자신의 팀에, 최근 입사한 신입 두 명이 회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를 하게 된 것이다. 자연스레 업무는 기존의 팀원들에게 몰렸고, 안 그래도 과했던 업무량의 곱절을 처리하기 위해 매일 야근을 밥 먹듯이 하게 되었다. 게다가 완벽주의적인 그녀의 성격에 업무를 미룬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고, 밀린 일을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자신의 평판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염려는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왔다.

A 씨가 여느 때처럼 출근하던 어느 날이었다. 밀린 사람들 틈을 헤치며 겨우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 자리 잡았던 그녀는, 순간 가슴이 답답한 느낌이 들고, 숨이 가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불현듯 한 달 전 출근길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A 씨의 작은 아버지가 떠올랐다. 가슴의 불편감이 더 커지고, 마치 100m 달리기를 하는 듯 심장이 마구 두방망이질 치기 시작했다. 이러다 죽을지도 모를 것 같다는 공포감이 엄습하면서, 눈앞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잠깐만요!.. 잠깐만요!’

겨우 목소리를 쥐어 짜내어, 정차한 지하철의 열린 문틈으로 간신히 나온 A 씨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참이 지난 후에야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 같은 경험을 하게 될까, 그녀는 도저히 다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심장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큰 병이어서 갑자기 작은 아버지처럼 쓰러져버리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감이 A 씨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사진_픽셀


스트레스가 공황장애를 만든다?

공황장애 환자분들을 만나다 보면, 증상이 처음 시작될 당시 A 씨의 경우처럼 심리적 - 육체적으로 과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던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들이 겪는 스트레스란 대개 회사에서 갑자기 늘어난 업무를 감당해야 할 때,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심한 갈등이 올 때, 잦은 부부간의 다툼이 잦을 때와 같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기인한 심리적 스트레스이거나 질병, 갑작스러운 사고, 과한 활동으로 인해 신체적인 한계에 다다를 때와 같은 경우다. 물론 스트레스가 공황장애의 유일한 촉발 요인은 아니지만, 증상의 시작과 재발에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음은 많은 연구와 임상 경험을 통해 입증되었다.

A 씨의 이야기처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의 임계점을 넘을 때 강렬한 불안 반응이 신체를 엄습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를 공황 발작(공황, panic attack)이라 한다. 공황장애는 강렬한 심리적 - 신체적 반응을 동반하는 불안 발작이다.

스트레스가 공황장애로 이어지는 과정을 살피기 전에, 먼저 ‘불안’이라는 우리의 감정의 메커니즘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불안이라는 단어 자체가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혹은 불쾌한 느낌을 주기에, 불안 그 자체는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방해하는 적(敵)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불안은 매 순간 우리 옆에 있으며 우리는 알게 모르게 불안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놀라운 건 우리가 삶을 영위하고 유지하는 데 있어 불안이 기여하는 바도 적지 않다는 거다.

 

불안은 위험에 대한 경보장치!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 속도를 높이며 달려오는 자동차를 보았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본능적으로 달려오는 자동차를 ‘위험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며, 가슴이 철렁, 이내 가슴 한 켠이 두근두근하는 신체 반응을 느끼면서 동시에 몸을 피하게 된다. 이런 일련의 반응은 수초가 채 걸리지 않는다. 자동차를 느꼈을 당시에 마음속에 떠오른 감정이 바로 ‘불안’이다. 불안이 느껴짐과 동시에 ‘위험하다’는 인지가 생기고, 몸에서는 생리적 반응이 나타난다. 위험을 느낀 신체에서는 오랜 진화를 거치면서 습득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온갖 반응들이 시작된다. 저장된 영양분을 급하게 다시 꺼내고, 이를 태워 에너지를 만들며, 또 이러한 에너지를 뇌와 중요 근육으로 신속하게 운반한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식은땀이 나고, 숨이 가빠지는 등의 반응은 이 때문이다. 위험에 대해 ‘싸우거나, 혹은 도망가는(Fight or Flight)’ 행동을 취하기 위해서는 신체가 준비되어야 하는 탓이다. 따라서 불안 반응은 심리적이면서도 신체적인 반응이라 할 수도 있겠다.

만약 마음속 불안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자신에게 속도를 높여 달려오는 자동차를 보면서도 ‘어, 자동차가 다가오네?’ 라며 한가롭게(?) 바라보다 봉변을 당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불안은 인간에게 있어서 위험을 의식하게 만들고, 위험을 피하게 돕는 ‘경보장치’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자신이 불안하다면, 주변에 있는 그 무엇, 혹은 머릿속에 떠오른 어떤 장면을 위협 혹은 위험으로 여기고 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사진_픽사베이


우리의 무의식은 스트레스를 위협으로 인식한다

스트레스에도 나에게 어느 정도는 필요한 스트레스(eustress)와 나에게 고통만 주는 스트레스(distress),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과도한 스트레스도 고통을 주지만, 아무 자극이 없는 삶도 지루함을 넘어 고통스럽지 않을까. 물론, 우리가 일반적으로 칭하는 ‘스트레스’는 기본적으로 나에게 위협이 되는 요소다.

평소보다 더, 내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스트레스를 짊어져야 할 때, 우리는 스트레스를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스트레스에 기인한 공황발작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겨난다. 게다가 의식적으로는 ‘엄청 많아진 업무’나 ‘나를 괴롭히는 상사’라는 키워드에 대해서 힘들다, 버겁다는 수준으로 그치지만,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범위 밖의 무의식은 스트레스를 이를 중차대한 위협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생존이 걸린’ 위협을 감지한 신체는 정지 상태에서 액셀러레이터를 깊게 밟은 자동차처럼 RPM이 급격하게 올라가며, 몸 전체에 과부하가 걸리게 된다. 숨이 막히고, 목이 졸리는 듯한 느낌,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고통, 전신이 경직되고 어지러워 쓰러질 것만 같은 감각은 이렇게 생겨나게 된다. 위협에서 생존하기 위한 반응인 것이다.

또, 이유를 알 수 없는 급격한 신체 변화는 A 씨의 경우처럼 자신에게 뭔가 중한 병이 있을 거라는 식의 극단적인 인식을 하게 만든다.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신체 반응, 그에 이어지는 ‘삶이 위협받고 있다’ 염려는 그 증상이 일어났던 지하철, 버스 같은 대중교통이나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피하게 만들고, 급기야 활동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자아내며 삶이 범위를 제한시키게 된다. 스트레스에서 시작한 공황이, 공황장애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그런데, 왜, 나만? - 스트레스의 개인적 취약성을 이해하기

모든 스트레스가 공황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니다. 또, 모든 사람에게 과한 업무나, 신체적 피로감이 공황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스트레스의 개인적 취약성을 고려해야 한다. 업무적 부담이 가장 힘든 상황인 사람이 있는 반면, 인간관계에서의 갈등에 유독 취약한 사람도 있다. 결국, 자신이 스트레스를 바라보고, 받아들여 대처하는 방법은 자신이 가진 고유의 시각(스키마, schema)에 기인한다. 그러니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가 나타났다면, 스트레스 자체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살아오며 일관적으로 ‘위협’으로 받아들였던 사건, 사람의 유형에 대해 생각하고 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맞닥뜨린 스트레스가 스스로 얼마나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헤아려 보는 일은, 앞으로 맞이할 삶의 여정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테다.

스트레스가 공황을 촉발하는 요인임을 이해하는 시각은 중요하다. 자신이 겪었던 공황의 발생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공황장애를 치료하는 첫걸음이다. 공황에 대해 ‘원인을 알 수 없는 두려운 그 무엇’으로 인식한다면, 이를 극복하는 과정은 안개에 둘러싸여 바닥을 더듬으며 나아가는 것과 같을 것이다. 불안에 무너지거나 애써 외면하려 하기보다, 불안을 유발하는 내 - 외부의 위협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강렬한 불안 반응에 대해 자신이 최근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것은 아닌지, 그리고 스스로 그 스트레스에 과도하게 취약한 것은 아닌지 점검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막연한 불안과 공포의 윤곽이 보인다면, 이제 남은 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스트레스를 좀 더 현명하게 관리해야 한다. 막연하게 쉬고, 즐거운 일을 하는 것이 다는 아니다. 스트레스 자체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스트레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의 반응에 대한 모니터링도 필요하다. 끊임없는 자신과의 내적 대화가 필요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공황이 공황장애로 발전하기 전, 적절한 휴식과 스트레스 관리를 통해 늪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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