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서한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한 여학생입니다. 

실은 좀 부끄러운 사연인데요. 제가 안지 한 1년 정도 된 나름 친한 선배가 있는데요, 처음에는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남사친처럼 대수롭지 않게 지냈는데, 어느새 그 선배의 배려심에 점점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어요.

그 사람과 연애하게 되면 저랑 너무나 잘 맞고, 사귀는 자체가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고백을 하자니 사이가 틀어지는 게 겁났고, 또 그 선배의 마음이 확실치 않았기 때문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갈팡질팡하다 이대로 그냥 보내면 정말 후회할 것 같아서 결국 고백을 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너무 갑작스러웠지만, 어찌 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계속 따로 만나자고 하면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만나자고 하기도 그렇고.. 그래서 그냥 선배의 마음이 여유와 저에 대한 관심을 가질 시간도 없이 그렇게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결과는, 거절하더라고요. 그 후로 연락도 잘 안 하고, 확연히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저랑 잘 안 마주치려고 하는 거 같기도 했고요.

 

연애를 안 해본 것도 아닌데, 문제는 거절당한 뒤부터 나타났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너무 부끄럽고 진짜 공부가 머릿속에 하나도 안 들어오고.. 스스로에게 너무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있고, 가슴이 답답해요.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하는 생각이 들고, 자꾸 한숨만 나와요. 거울 속의 내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고, 매일 눈물만 납니다.

친구들은 금방 지나갈 거라고 위로하는데, 정작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할 것만 같아요.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사진_픽사베이

 

답변)

안녕하세요, 강남 푸른 정신과의 서한입니다. 고민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자님 나이대에 하게 되는 정말 중요하고도 절실한 고민이라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 하는 생각이기도 하고요. 

먼저, 조금은 현재 상황을 환기시키고, 거리를 두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느낌, '내가 매력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자책을 불러일으키는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만약 좌절감, 자책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내 마음을 뒤흔들고 있다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도 왜곡되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마련이거든요. 평소 같으면 잘 해왔던 학업, 친구관계들도 흔들릴 수 있고요.

또, 흔들리는 마음은 시야를 좁아지게 합니다. 흔히 하는 생각의 오류로, 이를 터널 시야(tunnel vision)라 하지요. 터널 시야에 빠져버리면 지금 당장은 그 일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같고, 그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멈춰버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절대 그렇지는 않아요. 어느 노래 가사말처럼, 인생의 ‘쇼는 계속되기 마련’이고 시간이 흘러 그 상처를 채우게 되니까요. 하지만 그 상황에 빠져만 있다면 현재 내 앞에 있는 것들이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이라 여기게 됩니다. 

 

평소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 있다면 몰입해서 하는 것도 좋고요, 이전에 즐겁다 느꼈던 활동들을 떠올려보도록 하세요. 학생이시니 한계는 있겠지만, 먼저 학교, 독서실과 같은 일상적인 장소를 잠깐 벗어나는 것도 좋겠습니다. 이런 정서적 환기가 사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케 할 거예요.   

또 하나 추천드릴 방법은 자신의 생각, 감정을 노트에 한번 적어보는 겁니다. 선배에 관해서, 연애에 관해서,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적고, 감정의 강도에 점수를 매겨보는 거지요. 또,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최대한 다양하게 생각해 목록을 만들어 봅니다. 그 선택의 장점과 단점들도요.

흔들리는 감정은 부정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이와 같은 감정에 기인한 행동(emotion-driven behavior)들은 ‘기록하기’를 통해서 이성의 힘으로 붙들 수 있게 됩니다. 또,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고 이를 다시 고민함으로써 생각과 감정에 거리를 둘 수 있습니다. 이 또한 좁은 시야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겠지요.

부끄러울지도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타인의 시각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더 객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지요. 혹은 10년 뒤, 20년 뒤 나를 돌아봤을 때 내가 한 선택이 어떻게 느껴질지에 대해서 고민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런 식으로, 현재 자신이 몰두해 있는 문제들에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날 수 있게 됩니다. 조금 떨어져 지금의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면, 현재 느끼는 생각과 감정들은 조금 다르게 느껴질지도 몰라요. 감정에 휘둘린 선택의 위험도 줄일 수 있겠지요. 

 

첨언하자면 짝사랑이든, 사랑했던 연인이든 '좋은 사람이었구나' 하는 느낌으로 내 기억에 통합되는 날이 분명 올 거예요. 이별, 상실, 짝사랑으로 인한 좌절도 시간이 지나면 내 기억의 한 페이지에 빛바랜 사진으로 남게 되는 거죠. 진부한 이야기지만, 시간만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러기 위해서는, 위의 노력과 더불어 일상으로의 빠른 복귀가 도움이 될 겁니다. 

힘든 마음에 부디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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