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정호승, 수선화에게 中 )

 

혼자서는 버거운 세상에 홀로 남겨졌을 때, 마음 한 켠에 드는 스산함을 외로움이라 한다.

결코 떠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그이가 떠났을 때, 가족조차 속마음을 몰라줄 때, 지친 퇴근길, 집에 돌아와 방문을 열어도 어둠만 보일 때, 보통 외로움에는 선명한 이유가 있다.

그래, 그래서 외롭구나, 이 아픈 시기가 지나면 마음도 아물고, 괴로움도 지나가겠지.

외로움을 마주하는 우리는 조금만 참자며 스스로를 다독이거나, 혹은 이를 덮어 줄 누군가가 다가와 주길 기다리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를 당혹게 하는 감정이 있다.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기 힘든 외로움이다.

가만히 음악을 듣다 문득 느끼는 공허함, 길을 걷다 갑자기 발견한 마음의 조그만 빈자리, 왜 찾아오는지 알 수 없어서, 그 때문에 그래, 이 일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라고 잠깐의 위로를 던질 수도 없는 감정.

생채기에서 피어나는 외로움이 아프다면, 보이지 않는 깊은 마음속에서 배어 나오는 외로움은 서럽다.

왜 그런지조차 알 수 없어 더 서글픈, 이 외로움은 어디서 오는 걸까.
 

사진_픽셀


흔히 외로움의 이유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찾는다.

사람들과 동떨어져 느끼는 소외감, 깊이 유지하던 관계가 단절되었을 때의 허전함.

타인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감정과 외로움을 동일시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외로움이란 연결의 부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홀로 있어도 충만한 순간이 있는가 하면, 수많은 이들과 함께 있어도, 혹은 진실된 사랑의 곁에 있어도 불현듯 외로움이 찾아오는 시기도 있다.

의외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무관하게 괜찮다가도, 소중한 많은 것들 사이에서도 한없이 외롭다.

만남과 이별, 함께함과 홀로됨, 살며 겪는 수많은 단편적인 서사 아래의 근원적인 무언가, 외로움의 뿌리가 있는 것만 같다.

도대체, 그게 무엇일까.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가 오토 랑크는 그의 저서 ‘The trauma of birth'에서 출생 자체가 심리적 외상일 수 있음을 언급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물론, 어머니의 안전을 위협받는 예외적인 상황들이 많겠지만, 일반적으로) 자궁 내의 태아는 완벽하고도 충만한 상태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물리적, 심리적으로 보호받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분을 원 없이 제공받는다.

어떠한 두려움, 불안 없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기다.

 

그런데, 평안과 충만함만이 가득하던 공간이 갑자기 와르르 무너지는 때가 온다.

지금까지 자신을 부드럽게 보듬어주던 주위 세상이 자신을 향해 격렬히 좁혀져 온다.

고통 속에서 아기는 생존의 빛이 비치는 좁은 통로를 겨우겨우 헤쳐 나간다.

완벽한 평안으로부터 세상으로 던져진다.

탯줄이 단절되며 스스로 서야 함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극심한 불안과 슬픔 속에서 격렬히 운다.

출산의 순간이다.

 

그의 견해가 사실인지 아닌지를 과학적(객관적 방법론으로 재현을 통해 증명 가능한, 즉 출생하는 아기에게 그렇게 느꼈는지를 물어본다든지)인 방법론으로 증명할 방법이 있을지는 의문이나, 한 가지, 의미심장한 영감을 준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완벽한 상태에 대한 갈구다.

먹고 살 걱정, 다른 이들보다 뒤처지는 불안, 삶과 죽음에 대한 고뇌도 없고, 사랑하는 이와의 완벽한 일체감 속에서 지금, 여기의 감정과 느낌에만 집중할 수 있는 초월적이고도 충만한 상태.

어쩌면 태어나기 전에만 유일하게 느껴봤을지도 모르는.

 

인생은 우리에게 무한함을 허락하지 않는다.

노래 한 곡은 5분, 아무리 아름다운 영화도 두 시간 남짓이면 끝난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처음의 설렘이 영원하기를 바라지만, 그 바람이 클수록 이별도 아프다.

낭만이 아닌 현실은 더욱 냉정하다.

밥을 먹고, 자고 일어나기 위해 하루를 온전히 소진해야 하는 일상의 연속.

허전함을 느끼는 시간조차 아껴 살아가다, 어느 날 불현듯 마음의 빈자리를 발견한다.
 

사진_픽셀


굳이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가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누군가와 이어지며 충만했던 기억이 있다.

처음 사랑에 빠지던 순간, 20년 지기와 같은 삶의 고비를 서로 위로하는 술자리, 은사와 함께 미래를 고민하던 나날들, 그리고 집에 돌아가면, 늘 그렇게 가족들이 있던 특별하지 않은 밤.

허전한 마음의 구멍을 메워주는 고마운 사람들과의 기억.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구멍을, 마치 처음에는 없었던 것처럼 인식한다.

언제나 채워져 있던 그 자리가, 소중한 사람이 떠나서 혹은 그와 비슷한 이유들로 인해 홀로 되어 비어졌고, 이것이 외로움의 본질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채워 줄 누군가 혹은 무언가, 이를테면 평생의 동반자, 남부럽지 않은 지위, 써도 써도 줄지 않는 부, 클수록 좋은 권력 같은 것들을 갈구한다.

그것들을 손에 넣었을 때 비로소 마음의 구멍도 메워질 것이라 생각하면서.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외로움이라 칭하는 그 마음의 빈자리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온전히 채워진 적이 없다.

모든 것이 충만하고 만족스럽다는 것은 매우 많은 변수들이 충족된 상태이므로, 실상 조그만 틈으로도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위태로움 그 자체다.

삶에 완벽한 순간은 있으나 완벽한 삶이란 없다는 것, 그것이 실체를 알 수 없는 외로움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다면 어쩌자는 것일까.

어차피 외로움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고, 이 괴로움도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한다는 것일까.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허전함을 반드시 채워야 하는 것으로만 생각했구나, 채우지 못할 것을 채우려니, 밑이 없는 독에 물을 끝없이 부으며 물이 차오르지 않음에 절망하곤 했구나, 라는 생각.

 

돈이든, 명예든, 사랑이든, 원하는 것은 넘치도록 채우는 것이 미덕인 요즘, 비어 있는 느낌은 어딘지 모르게 삶이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진다.

외로움도 일과 사랑, 삶의 실패를 증명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외로움은 그 어떤 것도 증명하지 않는 근원적인 감정이다.

어떤 삶도 완벽할 수 없고, 삶이란 완벽할 수 없음을 일깨워주는 느낌이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찾아드는 외로움을 다른 무엇으로 억지로 채우려 들면 더욱 공허해진다.

잠깐의 위안을 위해 쉽게 누군가에게 마음을 허락하거나, 일회적인 만남을 추구하거나, 혹은 말초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끝에 더욱 공허함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는 채워지지 않을 허전함을 일시적으로 잊게 만들 뿐인, 일종의 마약 같은 자극에 소중한 삶의 시간과 자원을 소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_픽셀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깃든다.

이를 생의 위험신호로 받아들여 동요하거나, 그 이유를 찾아 해결하려 하기보다, 어쩔 수 없는 삶의 불완전함에서 오는 당연한 감정이라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면 어떨까.

다행히 삶은 외로움만으로 점철되지 않는다.

친구의 장난기 어린 격려, 집밥, 사랑하는 이가 남몰래 잡아 주는 따뜻한 손, 때로 젖어드는 외로움을 구태여 덧나지 않도록 그대로 두고 살아가다 보면 마음을 기댈 진심들이 찾아온다.

 

쓰고 나니, 결론이 썩 그럴 듯 하진 않다.

그런데, 그래서 글이 우리네 삶과 닮아 보인다.

불현듯 스며드는 외로움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획기적인 마음가짐, 왕도?

잘 모르겠다.

다만 온전하고도 평안한 삶에 대한 갈구, 그리고 이를 제공해 줄 것이라 상상하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외로움을 부른다는 것은 알겠다.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아무리 많이 가지고 사랑받는 이에게도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것도 알겠고, 본디 우리의 마음, 우리의 삶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수용하고 오늘의 삶에 전념하다 보면, 그래도 삶은 살아갈 만한 것이라 느끼게 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는 것도 알겠다.

 

그러니, 과감히 제안하고 싶다.

외로움이 찾아온다면, 그냥 두시길 바란다.

정호승 시인은 울지 말라고 했지만 견디다 지치면 때로 울어도 좋다.

외로움을 없애줄 것이라 기대하며 그럴듯한 누군가를 찾아 헤매거나, 외로움을 지울 만한 자극에 마냥 삶을 소비하기보다, 그저 충분히 울고 또 가끔 찾아오는 행복에 충분히 웃으며 묵묵히 삶을 걸어가 보자.

외로움의 완전한 종말을 선사해 줄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가다 보면, 어느새 서로가 서로의 외로움을 돌아봐 주고 공명하며, 이에 함께 울고 웃어 줄 이가 곁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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