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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건 마음이 약해서일까? 마음의 문제란, 비슷한 듯 다른 고통과 나약함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승인 2019.02.09 14:15

[정신의학신문 :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요. 하루 종일 우울하기만 하고 가슴도 답답해요.

참아보다가 겨우 가족들한테 이야기를 했어요. 걱정도 해주고 위로도 해주면서 하는 말이 마음이 약해서 그렇대요. 운동이 좋다고도 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면 좋아진다고도 해요.

저는 진짜 죽을 것 같은데, 웃긴 건 그럴만한 이유도 딱히 없고 가족들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헬스도 등록하고 영어학원도 다녀봤는데 그럴수록 자꾸 무리하는 것 같고 더 힘들어요.

나름대로 노력하면 할수록 더 아무것도 못하겠어요.’

 

‘마음의 문제.’

진료실에서 수도 없이 듣는 말이다.

위로를 가장하여 자주 오고 가는 말이고, 나를 찾았던 많은 이들이 정신과의 문을 두드리는 것을 망설였던 이유 중 하나다.

우울한 건 마음이 약해서 그렇다, 상황이나 진료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에는 개인의 의지에 달린 거다, 마음만 잘 먹으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는 문제다...

진심에서 나온 나름의 충고이지만, 진심인 줄 알아서 더욱 상처가 되는 그 이야기들.

어쩌면 마음의 문제라는 것은 마음만 잘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 다시 말해 다른 건 문제가 아니고 ‘마음만 문제’라는 것을 돌려 말하고 싶을 때 쓰는 말은 아닐까.

 

평안, 즐거움처럼 절망, 좌절도 일상적인 감정이다. 아무리 행복한 이도 힘들어 본 경험이 있다.

인기 연예인, 성공한 운동선수, 꿈을 이룬 예술가, 일견 행복할 것 같기만 한 이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을 터다.

삶의 가짓수는 살아가는 사람 수만큼 있다.

사람들에겐 각자의 기쁨과 슬픔이 있다.

다만 삶의 맥락이 다르기에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정확히 상상하기 힘들 수가 있고, 이는 때로 오해를 부른다.
 

사진_픽사베이


어렴풋하게 느껴지는 감정을 서로 나누고 이야기하고자 인간은 언어의 힘을 빌린다.

가만히 있어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고 마음이 간질거리거나, 크게 웃으며 마구 뛰어다니고 싶거나, 삶에 대한 사랑으로 벅차오르는 느낌 등을 기쁨이라 이름 붙여 소통에 사용한다.

납으로 마음을 짓누르는 듯한 답답함, 아무것도 하기 싫고 눈물만 나오는 감정, 삶의 명도와 채도가 낮아지는 느낌을 슬픔이라 하기로 약속한다.

 

문제는, 실체가 없는 주관적인 마음을 한정된 단어로 소통하다 보니 한 단어가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포괄한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슬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그가 힘든 그 감정 그대로가 아니라, 내가 슬퍼봤던 경험, 그때의 생각과 감정, 힘든 정도이다.

단어가 연상시키는 각자의 슬픔으로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의 슬픔은 당신의 슬픔보다도 더욱 짙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금 당신의 슬픔은, 세상 어느 누구가 이해해 주기 힘들 정도로 깊을 수도 있다.

 

많은 분들이 타 환자와의 이야기를 통해 큰 위로를 받았다고 이야기한다.

일상생활에서는 만나기 힘든, 자신만큼 혹은 자신 이상으로 힘들었던 이들을 만난다.

절망의 심연에 다녀오면, 지금 그곳에 있는 이들에게 상상이 아닌 과거 자신의 이야기를 건넬 수 있게 된다.

그간의 경험과 감정을 나누며 비로소 ‘나 혼자만 이렇게 힘든 것이 아니었구나.’ 하고 위로받는다.

그간 들어왔었던, ‘나도 그렇게 힘들어 봤었어.’로 시작되는 말들이 공허했기에 더욱 그렇다.

 

흐르는 물이 오염을 스스로 정화하는 자정 작용처럼, 우리의 마음도 회복력이 있다.

행복을 지향하는 인간은 칼날 같은 아픔도 천천히 다듬을 수 있다.

날카로운 상처들이 시간이 지나 다듬어지면, 원석 그대로인 기쁨보다도 더욱 빛나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굳게 마음먹기’의 정체다.

 

다만 지나친 오염이 물의 자정 능력을 넘어버리면 되돌릴 수 없이 더럽혀진다.

이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수용할 수 있는 좌절, 견뎌낼 수 있는 슬픔을 넘어서는 절망이 찾아오면 마음도 스스로를 다독일 능력을 소실할 수 있다.

아무리 ‘굳게 마음을 먹어도’ 이겨내기 힘든 고통도 있다.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그렇기에 아픔을 딛고 다시금 행복을 찾은 이들의 경험은 분명 특별하다.

많은 사람들의 회복담이 위로로, 인터넷의 짧은 글로, 미담으로, 또 책으로 널리 알려지고 공유된다.

하지만 범람하는 자기계발서의 성공담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일괄적으로 적용될 수 없는 것처럼, 특별한 누군가의 회복 과정을 따르면 모두에게 평안이 찾아온다고 볼 수는 없다.

삶도, 아픔도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사진_픽셀


더욱 아픈 시선은, 극복하지 못하는 슬픔이 실패와 연결되는 것이다.

불굴의 노력으로 좌절을 이겨낸 이의 스토리가 훌륭한 성공담으로 공유되고 타인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 반대급부로 끊임없이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이들의 능력이 부족한 것으로, 그들의 삶이 실패로 폄하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편견은 오히려, 한 번도 힘들어보지 않은 이들의 시각이 아니라, 절실한 아픔을 스스로 회복한 이들의 경험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서글픈 역설이다.

 

다리를 다치는 것에 비유해 보자.

뛰어난 운동선수도 다리가 부러질 수 있다.

부러진 다리는 우선 고정해야 한다.

의지를 굳게 하는 것과는 별개로 뼈가 붙는 시간과 치료가 필요하다.

휴식과 영양도 주어져야 한다.

뼈가 재차 붙더라도 바로 달릴 수는 없다.

한 걸음 한 걸음, 그간 쇠약해진 근육과 인대가 회복하도록 적절한 강도의 재활이 필요하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지쳤다면 휴식을 취하고 다잡으면 다시금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부러진 마음은 치유받아야 한다.

힘듦에도 수없이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위로받고 스스로 이겨낼 아픔도 있고, 치유받고 회복해야 할 절망도 있다.

운동선수의 부상이 심하다는 것이 그의 실력이 부족하고 의지가 약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극복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것이 의지의 부족함, 마음의 나약함, 삶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의 아픔이 그를 규정짓지는 못한다.

필요하다면 정신과의 문을 두드려도 좋다.

홀로 위로하기 어려운 아픔일수록, 그 생채기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못할수록, 스스로를 더욱 깊이 돌아봐 주고 쓰다듬어 주자.

당신은 누구도 알아주지 못하는 아픔으로 힘들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은 잘못되지 않았다.

 

 

이두형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info.psy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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