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재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과 의사가 환자에 의해 살해되는 일이 일어났다.

조현병 환자의 묻지마 범죄는 그동안 계속해서 있어왔지만 그때마다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에 비해 높지 않다며 편견확산 방지에 노력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동안 환자의 편에 서서 많은 활동을 해 온 어느 정신과 의사가 무참히 살해당함으로써 의사들은 집단 멘붕에 빠졌다.

 

먼저 확실히 해둘 점이 있다. 이번 일을 정신과 환자의 소행이라며 일반화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정신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조현병이나 조울증 같은 중증 정신질환자도 있지만 그보다는 대개 우울, 불안, 불면 같은 증상을 앓고 있는 분들이 훨씬 더 많다.

요즘은 소아 청소년의 ADHD, 치매를 비롯해 부부상담이나 기업의 스트레스 클리닉 같이 병적인 증상이 아닌 문제까지 정신과의 영역이 넓어졌다.

이들 역시 소위 정신과 진료를 받는 사람들인데 이들이 사람들의 편견 어린 시선을 받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정적 시선으로 인해 이들이 더 위축되지는 않을지 이 부분이 가장 걱정스럽다.

 

제 얼굴에 침 뱉기 같이 느껴지고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더 힘들게 할까 봐 정신과 의사들이 그동안 꺼려온 이야기가 있다.

사실 조현병, 조울증 같은 중증 정신질환자가 활성기 증상을 겪고 있을 때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그저 근거 없는 편견이라 치부할 수 없다.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폭행당한 상처들을 몸에 훈장처럼 새기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병식이 없는 가운데 증상으로 인해 흥분하게 되면 폭력적 언행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치료를 통해 증상이 충분히 안정될 때까지는 의료진은 오롯이 그것을 감당해내야 하는 수밖에 없다.

의사뿐 아니라 일선에서 흥분하는 환자들을 일차적으로 대해야 하는 간호사나 보호사 같은 치료진들이 당하는 폭언, 폭행도 무시할 수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환자의 인권만 인권이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치료진의 인권도 고려해야 한다.

사실 정신병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인권위원회에 대한 치료진의 반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 일과 같은 일이 더 이상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처벌강화는 답이 아니다. 적어도 현실검증력이 없는 망상상태의 환자가 저지르는 범죄에는 전혀 소용이 없다.

강한 처벌을 받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으려는 동기가 발생하는 것 또한 온전한 판단력이 있을 때나 가능하다.

진료실 뒤에 문을 만들거나 경비요원을 배치해야 한다거나, 진료실 안에 폭력에 대처할 수 있는 호신도구를 비치해야 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도 나오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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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적인 방법은 환자가 치료를 쉽게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증상이 악화되기 전에 정신과에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올 수 있어야 한다.

아무리 중증 정신질환자라도 치료를 적절히 받는다면 위험성은 현저히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인식개선이 필요하지만 우선적으로는 민간보험가입 제약 및 실손보험 제외 등 정신과 환자에 대한 차별적 제도의 개선이 시급하다.

 

만약 자타해의 위험이 있는데도 치료를 거부하고 있는 환자의 경우 치료를 강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또한 필요하다.

일전에 강제입원에 대한 글을 썼다가 거센 비난에 직면한 적이 있다. 주로 환자의 인권 측면에서 그런 비판을 하는데 나는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너무 naive하게 보인다.

문제가 발생하면 법적 처벌을 통해 해결하면 되지 왜 본인의 의사에 반한 치료를 강요하냐는 것인데, 이번 사건을 보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조현병 환자가 증상이 심할 때의 상황을 직접 경험해본 가족들은 대부분 그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가족을 강제입원시키기를 좋아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보면 좋겠다.

 

수년 전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은 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을 지나치게 제한하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환자의 증상이 아주 심각해질 때까지는 그냥 방치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입원을 시킨다 해도 수많은 외부의 판단을 받게 만들어 의사로 하여금 질리게 만든다. 환자를 가장 잘 아는 주치의의 판단을 환자를 잘 모르는 외부의 비전문가가 서류만 보고 입원사실에 대해 재단하게 함으로써 의사들의 의욕을 꺾어버린다.

이는 기본적으로 정신과 전문의인 주치의의 판단을 믿지 못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물론 불필요한 강제입원을 막고 일부 몰지각한 의사들의 입원 남용을 막으려는 법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이 법의 시행 이후 정신질환자에 의한 사고가 더 빈번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많은 정신과 의사들이 현장에서 체감하고 있다. 교도소나 소년원에 정신질환자의 비율이 급격히 늘고 있다는 것 또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 기회에 차별적인 의료급여 수가에 대한 개선도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는 의료보험 환자와 의료급여 환자의 식사에 차별을 두게 조장하고, 치료에 있어서도 보험 환자대비 70% 밖에 되지 않는 정액수가로 인해 최선의 치료를 국가가 앞장서서 막고 있는 형국이다.

저질 의료를 강요하면서 환자가 온전히 회복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반인권적인 정책에 대해 왜 인권위원회는 아무 말이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이상하리만큼 슬펐다.

이 일들을 방조한 책임이 국가의 불합리한 정신의료제도에 있는 것 같아 너무 화가 난다.

한 정신과 의사의 죽음이 부디 헛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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