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재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키가 작아서 열등감을 느껴요”

10여 년 전 전공의 시절에 어떤 학생이 진료실에서 제게 한 이야기입니다. 그 말을 듣고 당시 제 마음에 바로 든 생각이 무엇이었을까요? 

‘너 지금 나 놀리니?’

 

저는 남자인데도 키가 160cm 정도밖에 안됩니다. 노인이나 소인증 환자분들을 제외하고는 저보다 작은 남자를 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제게 상담을 한 그 남학생도 키가 166cm 정도 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를 앞에 두고 그렇게 이야기하니 '내가 너 만큼만 크면 소원이 없겠다' 싶은 생각을 속으로 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 학생은 저를 놀릴 마음이 있었던 건 전혀 아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제 열등감이 그 학생의 말을 저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피해의식을 만들고 있었던 거죠.

이렇듯 저는 진료실에서 키가 작고 못생겼다는 등 외모로 인한 열등감에 싸여 있는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외모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시대 분위기 때문인지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아주 실제적인 고민인 듯합니다.

이렇게 외모에 열등감이 느껴지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픽셀


물론 외모가 훌륭하면 좋습니다. 나쁠 게 없지요. 그렇기에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부분은 바꾸면 좋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씀드리는 건 외모 그 자체에 절대적 가치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이 본질적으로는 중요하지 않다 하더라도 외모를 하나의 경쟁력으로 여기는 사회의 거대한 조류 속에서 바른 가치에 대한 신념만으로 그러한 분위기를 꿋꿋하게 이겨내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의 외모에 관심을 많이 갖고 성형수술을 시키거나 성장호르몬 주사까지 맞히는 이유도 그것이 절대적인 가치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마음에 상처를 덜 받고 자신감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고민에 대한 답은 명백합니다.

"외모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면이 중요하다. 외모가 훌륭하다면 물론 좋겠지만, 그것보다 사람 됨됨이와 인성, 이런 것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외모가 좀 부족해도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밝은 사람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빛이 난다"

뻔하게 들리지만 이것은 확실한 진리입니다. 절대 외모가 훌륭하지 않은 사람을 그저 위로하려고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이런 말들이 그렇게 와 닿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사회문화적 분위기, 사람들의 시선 같은 것들을 보통 사람들이 완전히 무시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그만큼 인격적으로 충분히 성숙해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꿀 수만 있다면 성형을 하거나 다이어트를 하거나 키가 클 수 있는 노력들을 일차적으로 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존감이 높아지고 남들 사이에 관심과 부러움을 받게 된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지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노력들은 한계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조건 굉장히 예뻐질 수도 없고 키도 항상 내가 원하는 만큼 커지는 것이 아니지요. 그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습니다. 받아들일 수밖에요. 세상에는 원래 노력만으로 되지 않는 일들도 많습니다. 그런 것들은 인정을 하고 그 바탕에서 시작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키가 작고 못생겨도 사실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들은 40대만 돼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10대, 20대, 많이 봐도 30대까지는 외모가 아주 중요한 가치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40대에는 그것이 아주 부차적인 것이라는 것들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깨닫게 됩니다.

사실 10대에도 머리로는 알 수 있지만 가슴에 직접적으로 잘 와 닿지 않는다면, 40대가 되면 가슴으로도 직접 와 닿게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보다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40대에도 외모에 중요한 가치를 두는 사람은 연예인 같이 외모가 직업인 사람이거나 아니면 아주 미숙하거나 유치한 사람일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저는 남자이지만 키가 160cm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작다고 무시하거나 하는 일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청소년기까지는 키가 작다는 것에 대해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어 연애를 할 때가 되니(제가 학생 때는 고등학생이 연애를 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었습니다) 작은 키가 핸디캡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종종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조금 위축되기도 했지요. 대학생 때는 폭탄으로 취급을 받을까 봐 단체미팅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개팅만 했었죠. 소개팅은 일대일로 하는 것이라 여러 명 가운데서 비교되는 일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 저 스스로가 위축되면 더 못나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제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사건이 있었는데요. 한 번은 소개팅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분위기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헤어질 무렵에 상대 여성분이 자신은 사실 현재 누구를 사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말이 물론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절한 것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래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굉장히 우울해졌습니다. '아, 내가 키가 작아서 이 여자가 나를 마음에 안 들어하는가 보다' 그렇게 느꼈죠.

그런데 한 번 더 생각을 하다 보니 그 생각과 감정이 그 여성이 저를 거절했다는 객관적 사실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저의 열등감에서 나오는 감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저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있다면 그 여성이 제게 그렇게 얘기했을 때 우울해 하기보다는 '나 같이 괜찮은 사람을 싫다고 한다면 네가 스스로 복을 차는 거지' 이렇게 담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는 ‘누구를 만날 생각이 없다고 하니 과거에 무슨 상처가 있거나 아니면 무슨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나’ 그렇게 생각을 했을 수도 있었겠죠. 즉 객관적 상황은 똑같더라도 제가 스스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진_픽셀


그때부터 저는 제 자신에 대해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따져 보면 저 자신이 그렇게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한 그런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때부터 저는 제 자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려고 의지적으로 노력했습니다.

물론 오랜 열등감이 저절로 바뀌는 것은 아니기에 저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반복적으로 되뇌곤 했습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저 자신에 대해 조금씩 자신감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키가 작다고 어떤 여자가 저를 거절하면 그건 그 여자가 미숙한 것이지 제가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부터는 소개팅을 해도 자신감 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재수 없어 보였던 사람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위축되기보다 자신에 대해 당당한 태도를 보고 제게 호감을 느끼는 분들도 꽤 많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다 보니 오히려 저에게 먼저 고백하는 여학생이 여럿 생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결혼해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잘 살고 있죠.

 

지금 저에게 키가 작은 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나이 40대 중반에 키가 크고 작은 게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기왕이면 키가 크면 좋다는 건 뭐, 저도 인정합니다. 시대의 조류가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이 그러한데 쉽게 무시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자꾸 말하면 거기에 또 상처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정말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더 깊이 생각해보는 기회로 삼는다면 남들보다 더 빨리 인생의 가치, 인간의 가치를 깨닫고 인격적으로 더 성숙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인격적 성숙은 삶을 뒷받침하는 훌륭한 자산이 됩니다. 10대에 벌써 40대가 되어야 알게 되는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면 앞으로의 인생에 얼마나 큰 자산이 되는지요.

지금은 이런 이야기들이 크게 와 닿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번 들어 놓고 기억해 놨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다시 한번 다시 떠올려 보세요. 제 말이 정말 맞나 틀리나.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꿔도 좋다. 하지만 노력해서 바뀌지 않는 것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외모가 좋든 나쁘든 관계없이 외모의 가치를 본래 가치보다 더 중요한 위치에 두지 말라. 오히려 내면의 됨됨이가 훨씬 중요하다.”

외모에 대해 고민이 되신다면 이런 진리들을 더 깊이 새기는 기회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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