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장재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여러분 혹시 ‘정신과약은 독하다’라는 이야기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병원에서 약물처방을 할 때 “정신과약은 독해서 함부로 복용하면 안 된다는데...”라면서 투약을 몹시 겁내 하시는 분들을 꽤 많이 보게 되는데요. 사실 정신과약을 타 진료과에서도 많이 쓰고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한 통계에 의하면 신경안정제 처방의 20%만 정신과 의사들이 하고 나머지 80%는 타 진료과에서 한다는 보고도 있을 정도인데요. 오늘은 정신과 약물에 대해 흔히 하시는 오해들에 대해 말씀드려볼까 합니다.

 

우리는 흔히 ‘정신과약’이라고 통칭해서 표현하지만, 실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사용하는 약물은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요. 크게 항정신병약물, 항우울제, 항불안제, 기분안정제, 정신자극제, 치매약물 등으로 대략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정신과약이 독하다는 오해의 근원은 이 중 항정신병약물에서 생긴 게 아닌가 추정이 됩니다.

항정신병약물은 전통적으로 정신과에서 많이 진료해온 조현병(구, 정신분열병)의 치료제로 약물의 특성상 몸이 뻣뻣한 느낌, 졸림, 침흘림, 손떨림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조현병은 우리가 흔히 ‘정신병’이라 표현하는 질환인데요. 조현병에서는 망상, 환각, 횡설수설, 이상행동 등의 심각한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정신과에서 다루는 병 중에서도 가장 중증의 정신질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치료가 까다로운 경우가 많아 부작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약물을 강하게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꽤 자주 있는 것이죠. 이는 마치 감기 환자에게는 부작용이 거의 없는 약물을 처방하지만, 암환자에게는 머리가 빠지고 구토가 나더라도 항암제를 꼭 사용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주변에 조현병을 앓고 있는 분들의 이러한 부작용을 보신 적이 있는 분들은 약이 독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조현병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하는 수많은 질환 중 아주 일부일 뿐이므로 조현병 치료제인 항정신병약물을 정신과약으로 동일시하여 독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완벽한 오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내과약이 독하다’라는 명제가 성립하지 않는 것과 똑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내과약에도 감기약부터 항암제까지 다양하게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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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 정신과 외래에서 많이 사용하게 되는 약물은 항정신병약물이 아니라 항우울제나 항불안제인데요. 아무래도 신경이 예민하다거나 불안, 불면, 우울 등을 호소하면서 정신과를 방문하시는 분들이 조현병보다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도 약물을 처방하려 하면 겁을 내시면서 약이 독하지 않나, 중독되지 않나, 약 먹으면 치매가 오지 않나 라는 식으로 문의를 많이 하십니다. 단언컨대 이러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한 것입니다.

물론 항불안제나 항우울제가 신경이 예민하거나 불안한 분들에게 사용하면 신체를 이완시켜주는 효과가 있어 긴장이 풀리면서 약간의 노곤함이 느껴질 수는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을 민감하게 느끼시는 분들 중에는 몽롱하다거나 약에 취한다는 표현을 하시며 ‘역시나 정신과 약은 독하다’고 하시는 분이 계시지만, 사실 이런 종류의 약들은 정신과보다 내과에서 더 많이 처방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러저러한 증상으로 내과를 찾지만 검사를 해봐도 별 이상이 없을 때 ‘신경성’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처방하는 약물이 이러한 종류의 정신과약입니다. 내과의사들 사이에서는 이런 정신과약을 잘 쓰는 의사가 명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내과 처방 중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 외에도 신경과, 이비인후과 등에서도 여러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굳이 일일이 정신과 약이라고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많이들 모르고 계실 뿐입니다. 아마 그동안 타 진료과를 방문한 뒤 처방받은 약물의 종류가 적힌 약봉투를 유심히 보셨던 분들은 제 이야기가 쉽게 수긍이 되시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처방에 따르지 않고 임의로 약을 복용하거나 하는 방식으로 남용이 되면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의사의 지시에 따라서 복용을 하시는 것은 기본입니다. 약물복용을 너무 겁내시는 분들도 문제지만 실제로 너무 조심성 없이 임의로 약물복용을 추가로 더 하시는 분들을 간혹 보게 되는데 이런 경우는 정말 정신과 약물의 독함(?)을 경험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사의 처방에 따라 잘 사용하기만 한다면 광범위한 분야에서 안전하게 사용되고 있는 약물을 굳이 정신과에서 처방받는다고 해서 막연히 겁내실 필요는 전혀 없으니 안심하고 정신과를 방문하셔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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