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녕하세요. 정신과 전문의 김병수입니다. 오늘은 가정에서 행복하지 않으니 일을 하는 의미도 사라져 버린 것 같다며 괴로워하는 박 차장님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박 차장님은 결혼한 지 15년째가 되어간다고 하더군요.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요즘 아내와 싸우는 일이  많아졌다고 하더군요.

박 차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나는 밖에서 고생하는데, 아내는 내 마음을 몰라 줘요. 내가 뭘 원하는지, 아내는 관심도 없어요.”라고요.

부부싸움을 하고 나면 일에 대한 열정마저 식어 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돈 벌어 와 봐야, 아내가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는데. 내가 밖에서 고생해서 일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나’하는 생각 때문에요.

‘아내는 별 것 아닌 일에 나에게 짜증만 부리는데 이런 여자를 위해 내가 밖에서 그 고생을 해야 하는 건가’하고 회의감마저 든다고 하더군요.

 

부부 문제로 상담하면서 흔히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남편이 내 마음 같지 않다. 아내가 내 마음을 몰라 준다. 나하고 생각이 너무 다르다”입니다. 그리고 부부는 서로를 향해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하소연합니다.

결혼해서 평생을 같이 살아도, 부부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10년 이상 부부가 같이 살고 나면, 서로가 서로를 잘 안다고 착각합니다. 아내(혹은 남편)에 대해 실제로 자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에 빠집니다.

부부가 함께 한 시간이 길수록, 배우자에 대해 더 많이 안다고 자신하는데, 이런 착각과 오만이 부부 사이에 갈등을 만들고, 미움을 키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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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자리 잡은 배우자에 대한 기대, 부부 생활에 대한 바람을 현실적으로 다시 조정해야 합니다.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을 바라지 않아야 합니다. “결혼 생활 이쯤 했으면, 아내가 내 마음을 척 알아줘야 하는 것이 당연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를 갖지 않아야 합니다. “아내가 나를 외롭지 않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바람을 접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도 편해지고 배우자도 편해집니다. 그래야 이혼하지 않고 오래오래 부부 생활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 성격이 비슷해서, 자기 마음과 똑같은 사람을 만나 함께 살면 행복할까요?

성격이 조화를 이룬다고 평가된 부부와 그렇지 않은 부부를 대상으로 조사를 해 보면, 두 그룹 간에 부부 만족도는 1% 정도의 차이밖에 없다고 합니다. 부부 만족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생각의 일치나 성격의 조화가 아니라, 부부간의 의사소통 방식입니다.

 

부부 관계와 관련된 책을 읽다 보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연구가 있습니다. 존 가트먼(John Gottman) 박사의 실험인데요. 부부간의 대화를 녹화해서 보면, 그 부부가 6년 안에 헤어질지 아닐지를 예측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도 대화 시작 후 3분만 관찰하면, 바로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혼할 부부의 특징적인 대화 패턴이 있다는 것이죠.

그건 바로, 비난과 멸시입니다. 아내와 남편이 대화하면서 서로에 대한 비난과 멸시가 많을수록 이혼할 가능성도 커진다는 겁니다. 이건 당연한 이야기죠.

그런데, 폭언이나, 막말과 같은 험한 말이 아니고, 겉으로 확연히 드러나지 않아도, 결과적으로는 비난과 멸시의 의미를 포함하는 말들이 있습니다. 오히려 이런 의사소통이 더 위험합니다.

 

“당신이 뭘 알아”
이건 나는 옳고, 상대방은 잘못되었다는 비난의 말입니다. 가르치려 드는 것도 비난과 멸시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내가 이렇게 하라고 했잖아” “내 말을 잘 들어야지”라는 표현들이지요. 이런 말들의 속 뜻은 “당신이 잘못했잖아. 당신이 문제야”라는 것을 품고 있습니다.

성격에 대해 말하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본질을 건드려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너무 이기적이야. 당신이 성격 고쳐야 돼”
이런 말 하고 멀쩡히 부부 관계 유지하기란 어렵습니다.

“당신이 그렇게 하자고 한 거잖아. 당신이 그렇게 하자면서!”
이렇게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는 말투도 부부 관계를 해칩니다.

 

좋은 부부 관계를 만들기 위한 법칙을 하나 알려 드리겠습니다. 5대 1 법칙과 3대 1 법칙입니다.

좋은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편과 아내가 주고받는 말 중에서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의 비율이 5대 1이 되어야 합니다. 혹시 부정적인 말을 배우자에게 했다면, 그것을 상쇄하기 위해서 5가지의 좋은 말, 긍정적인 말, 칭찬과 격려의 말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부부 관계가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의 비율이 3대 1 보다 적으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1:1로는 한참 부족하고요.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하기 쑥스럽고, 낯 뜨거워도 ”당신이 있어서, 지금에 내가 있을 수 있었어. 고마워" “당신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라고 해야 합니다. 매일매일 배우자를 향한 긍정의 말을 차곡차곡 쌓아 나가야 합니다. 부지런히 쌓아 나가야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 사이의 균형을 5:1로 맞춰 나갈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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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이 10년을 넘어가면, 당연히 사랑의 열기는 식습니다. 이게 정상입니다.

박 차장님은 결혼한 지 15년 되셨다고 하니, 이제 중년의 부부일 텐데요. 중년의 부부는 서로에게 ‘덤덤한 마음’을 갖는 것이 정상입니다. 뜨거운 것이 정상이 아니라, 미지근한 것이 정상이죠.

부부 사이에 알콩달콩, 깨가 솟아지는 일은 이 나이쯤 되면... 없습니다. 열정은 사라지고, 부부가 같이 있어도 외롭고, ‘나는 혼자다’라는 느낌이 드는 것이 오히려 보편적이지요. 이 나이쯤 되면 영화에서 나오는 열정적인 부부란, 현실에서는 거의 없습니다.

 

결혼 기간이 길어지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건강한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원래 어렵습니다.

사람은 잘하는 것보다 잘못하는 것이 쉽게 눈에 들어옵니다. 상대의 결점, 잘못된 것, 실수하는 것이 상대의 장점이나 잘하고 있는 것보다 쉽게 눈에 띄죠. 그러다 보니, 상대를 비난하는 이야기, 가르치려는 말, 배우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은 그냥 쉽게 나옵니다.

의식적으로 조심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칭찬하기보다는 비난하기 쉽습니다. 특히 부부처럼 오랜 시간 같이 살아서 서로에게 익숙해지면, 더 그렇게 됩니다. 그러니 부부가 같이 산 시간이 길어질수록 노력하고 애써야 할 것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부부가 같이 하는 활동이 점점 더 필요해집니다.

마음만 좋게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몸을 써야 합니다. 퇴근 후에 아내와 같이 공원을 산책하는 것도 좋고, 결혼식 앨범을 같이 꺼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이들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며, 추억을 떠올려 봐도 좋고요. 주말 저녁에 심야 영화를 봐도 좋고. IPTV로 야한 영화를 같이 봐도 좋습니다.

몸을 써서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아내에게 이런저런 바람만 잔뜩 갖고 노력하지 않으면, 갈등은 깊어지고 외로움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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