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40대 초반 남성입니다. 요즘 부쩍 깜빡하는 일이 많아서 걱정입니다. 회사에 출근할 때 주차장으로 들어가야 되는데, 깜빡하고 입구를 지나쳐서 회사를 한 바퀴 돈 적도 있고요, 용건이 있어서 전화를 걸어놓고, 내가 왜 전화를 했지? 잠시 멍한 적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러운 현상인가요?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자주 깜빡하다 보니 그 자체가 스트레스입니다. 예전엔 동시에 여러 가지 일도 척척 해냈는데 요샌, 지금 해야 할 일, 딱 하나에 집중해야 됩니다.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그런 걸까요?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데, 벌써부터 깜빡깜빡하는 자신에게 실망스럽습니다.

 

40대가 되면, 기억력이 떨어졌다, 라는 것을 누구나 느끼게 됩니다. 병원에서 진료하면서도, 이 연령대에 기억력 저하를 호소하며 찾아오시는 사람을 자주 보는데요. 그런데 이런 분들 중에서 실제로 치매처럼, 실제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는 매우 적습니다. 삼, 사십대 분들 중에서도 치매가 생긴 것은 아닌가, 하며 기억력 검사도 하고, 뇌 MRI 검사를 원하는 분도 적지 않게 있는데요. 막상 검사해도 이상 소견이 나오는 경우는 매우 적습니다.

저는 40대 중반인데요. 저도 건망증이 심해져서 난처할 때가 정말 많습니다. 얼마 전에도 직원식당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분이 오시더니, "선생님 잘 지내시죠?" 이렇게 인사를 했는데, 죄송하게도 저는 그분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누구인지조차 생각나지 않았지만 “네, 안녕하세요.”라고 답 인사를 했지만, 무척 난처했습니다. 그런데 식사하다 보니 그제야 예전에 저희 과에서 연구원으로 일하셨던 분이었다는 것이 나중에 떠오르더라고요.

비슷한 연령대 친구나 동료분들에게 여쭈어 보세요. 아마 열이면 열, 나도 요즘 깜빡깜빡한다고 누구나 다 그렇게 이야기할 겁니다. 저는 확언하건대, 이런 변화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사진_픽셀


이분처럼 생각할게 많아서 머리가 복잡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실제 기억을 저장하는 능력 그 자체에 문제가 생겼다기보다는, 주의집중력이 일시적으로 저하되어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바꿔 말하면, 컴퓨터 하드디스크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램의 메모리가 일시적으로 부족해진 것이거든요. 현재 일을 기억에 잡아두지 못 하거나, 저장된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에 일시적인 장애가 일어난 것입니다. 뇌의 용량은 한계가 있는데, 회사 일도 생각하고, 집 안 일, 부모님 걱정, 자식 걱정을 한꺼번에 안고, 그리고 남은 뇌 용량으로 작업을 해야 하니까, 뇌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워진 것이지요.

당장 치매를 걱정하기보다는,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느낀다면 “아!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럴지도 모른다.”하고 먼저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사실 30대, 40대에 기억력 저하나 건망증을 호소하는 경우, 가장 흔한 원인은 스트레스와 우울증입니다.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조금 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주의집중력이 떨어지고, 그것이 건망증을 유발하기도 하고... 의욕 저하와 피로 때문이기도 하고요. 휴식을 취하고, 걱정거리가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기억력도 따라서 회복이 됩니다.

또 하나는, 우울증인데요.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검사를 해보면, 실제 기억능력에는 문제가 없는데, 우울증 때문에 이런 증상이 생겼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울증으로 인한 기억력 저하를 가성 치매라고 하는데요. 이건 몇 가지 임상 양상에서 진짜 치매와 차이점을 보입니다. 진짜 치매에서는 환자 분이 자기 기억력이 저하되었다는 걸 스스로 인식하지 못합니다. 자기 기억력이 저하되었다는 것을 숨기고, 부정합니다. 하지만 가성 치매에에서는, 기억력 저하를 느끼고, 그것 때문에 괴롭다고 스스로 호소합니다. 가성 치매도, 우울증이 잘 치료되면, 자연히 회복됩니다.

 

사연을 주신 분처럼 사십대가 되면 누구에게나 생기는 기억력 저하를, “이러다 치매에 걸리면, 아이들은 어떻게 될까? 우리 가족은 누가 돌봐주나? 가족에게 짐만 되는 것 아닌가?” 하며 극단적으로, 재앙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자연스러운 변화를 마치 큰 문제가 생긴 것처럼 해석하면서, 스스로 불안을 키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죠. 단순하게 표현하면, 기억력 저하 그 자체보다는 치매 공포증 때문에 괴로운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 치매로 오랜 시간 동안 고생하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본 자녀라든지, 가족은 치매에 대한 두려움을 더 많이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알츠하이머 치매의 발병에는 유전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니까, 이런 경우 다른 사람들에 비해 치매 걱정을 더 하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지만... 치매 가족을 곁에서 지켜보며 느꼈던 절망감과 무력감 때문에 치매에 대한 두려움을 더 크게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면,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에만 파고들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자주 이렇게 말하곤 하는데요. “자기 손금에 연연하는 사람은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다”라고 말이죠. 자기 자신에 대한 생각에만 파고들어서는 행복해질 수가 없어요. 내 마음속으로만 파고 들어가다 보면, 더 우울해지고, 불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보다는, 의도적으로 다른 것에 집중하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심리적 변화나 신체적 변화 그 자체에 대해서는 무심하게 내버려둘 필요도 있고요.

치매를 과도하게 걱정해서, 불필요한 검사나 치료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고, 차라리 그 돈으로 여행이나 가십시오. 좋은 곳으로 여행 가서, 맛있는 음식 사 드세요”라고 말해주는데요. 40대 초반 혹은 그 이전에 기억력이 떨어진다고 느낀다면, 덜컥 겁부터 먹지 말고, “스트레스가 많아서, 뇌가 지쳐서, 그런가 보다.”라고 이해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달래주세요. 지친 뇌에게 휴식의 시간을 조금 더 내어주면 좋겠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많이 걸어 다니라고, 조언드리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걷는 시간을 따로 만들어 두시면 좋겠어요. 점심 먹고 30분 걷고, 퇴근하고 나서 집 근처에서도 30분 걷는 식으로요. 계단을 더 많이 이용하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려고 애를 써 보면 좋겠어요. 누구나 경험해 보셨을 텐데 산책을 하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된다거나, 걷다가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하죠.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걷다 보면 스트레스도 해소되고, 고민했던 것들이 정돈됩니다.

이런 심리적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걷기는 실제로 기억력을 증진시켜 줍니다. 미국 일리노이 의대 연구팀이 일반인 21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요.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일주일에 세 번씩 걷도록 지시를 했어요. 삼 개월 뒤에, 기억력을 담당하는 뇌 세포의 활성화도를 평가했더니, 이게 좋아졌더라는 겁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실제 나이보다 평균 세 살 정도 어린 사람들의 뇌 세포 활성도를 보였다고 합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걷기를 꾸준히 하고 났더니 뇌 혈류도 그 이전에 비해서 좋아졌다고 하는데요. 뇌 혈류 공급이 원활해지면, 뇌 세포를 파괴하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나쁜 영향을 막아주고, 뇌의 기능도 향상됩니다.

그러니, 요즘 들어 건망증이 심해진 것 같다고 느낀다면, 너무 겁먹지 마시고요. 불안하다며 병원으로 달려오시기 전에, “내가 요즘 고민이 많은 건 아닌가? 걱정거리가 많은 것은 아닌가?”하고 먼저 스스로를 돌아보시면 좋겠어요. 자가 검진을 해 보시면 좋겠어요. 

스트레스가 너무 많다,라고 판단되면 2주에서 4주 정도 일을 조금 줄이고, 휴식 시간도 조금 더 늘리시면 좋겠고요. 그리고 평소보다 조금 더 빨리, 더 많이 걷겠다,라고 결심하고 실천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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