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남편이 욱하는 성질이 있어요. 대화를 하려고 하면 정말 가슴이 떨릴 때가 많아요. 별 것 아닌 일에 버럭 소리를 질러요. 그때마다 제가 상처를 엄청 많이 받아요. 남편이 버럭 할까 봐 나는 아예 말을 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남편의 성질을 내가 고쳐줄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해 보기도 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너무 답답하고. 다른 남편들은 아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자상한 것 같은데... 나는 왜 저런 남자를 만났을까, 하고 비참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남자분들 중에 이런 경우가 많은데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 유전적으로 다혈질의 기질을 가지고 있거나, 화가 나면 바로 폭발하면서 그게 습관이 되었거나, 남편의 아버지(사연을 주신 분에게는 시아버지이겠죠)가 화내는 것을 보면서 남편이 아버지의 감정 처리 방식을 자기도 모르게 학습했을 수도 있어요. 원래 유순하던 분이 스트레스가 쌓이고 감정적인 문제가 생기면서 갑자기 변하는 경우도 있고요. 술 많이 드시는 분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감정 조절이 더 잘 안 되면서 문제가 악화되기도 하죠.

감정 난독증이라고 저는 표현하는데요. 불안하고, 우울해지면 화로 표현하는 남자들이 자주 있어요. 자기감정을 모르는 거죠.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자기 마음이 진정될지도 잘 해독하지 못하는 거죠. 강해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에 매달리는 사람은,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화로 자기감정을 덮어 버립니다.
 

사진_픽사베이


어떤 분은 분노로 타인을 지배하려는 사람도 있어요. 평소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찍소리 못 하고 다 받아주다가, 만만한 사람에게만 화를 내는 거죠. 이런 사람은 강한 사람 앞에서는 ‘무력감’을 느끼다가, 자기보다 약한 존재에게 화를 내서 ‘나는 무력하지 않다’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려고 합니다. 

아내가 사랑의 힘으로 남편을 고쳐 보겠다, 내가 어떻게 하면 남편을 고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남자는 자신이 무력하다는 느낌이 들면, 분노로 타인을 지배해서, 무력감을 해소하려고 해요. 그런데 부인이 자꾸 자기를 바꾸려고 하면, 부인이 자기를 지배하려고 든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래서 오히려 더 화를 내요.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낫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고 싶다면... 남편의 성격이나 태도를 고쳐 놓겠다고 달려드는 것보다 남편이 요즘 스트레스받는 것이 없는지,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아닌지, 불안할 만한 일은 없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 낫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풀리면 분노가 조절되기도 하니까요.  

 

아내는 잘못한 것도 없고 남편이 화를 내도 더 잘해주려고 하는데도, 남편이 화낼까 봐 항상 눈치를 보고, 남편에게 맞춰주려고 하기 때문에 아내의 마음이 더 다치는 거예요. 물론, 남편의 분노가 심한 상태라면 피하는 것이 맞지만 남편의 분노가 두려워서 남편 감정에 무조건 맞추기 시작하면 남편은 화를 내서, 분노로 아내를 자꾸 조정하게 돼요. 피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약한 모습, 두려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겁이 날 수밖에 없는 경우도 많겠지만 당당해지셔야 해요. 남편이 화를 내는 것 때문에 주눅이 들고, 자기주장도 못 하고, 남편 감정에만 맞추다 보면 “내가 왜 이렇게 사나.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이것이 우울증으로 이어져요. 

아버지가 이런 모습이라면 자녀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만약 딸이 있다면, 아버지가 딸에게 화를 내거나 어린 시절 화로 정서적 학대를 하면 딸이 남자를 선택하는 기준, 남자에 대한 인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나중에 사회생활하면서 아버지와 비슷한 권위적인 인물에 대해서 적대적인 감정이 앞서기도 하고요. 그래서 나이 많은 남자 상사와 계속적으로 갈등이 생기도 하고요. 아버지로 인해서 자존감의 상처를 반복적으로 받고 자라면 조그만 비판에도 예민해지고, 자녀도 예민해지고, 분노 조절이 잘 되지 않는 문제가 생겨요. 더 심각한 것은, 아버지와 비슷한 성향의 남자와 연애를 하거나, 이런 사람과 결혼해서 무의식적으로 아버지에게 복수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죠.
 

사진_픽사베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화를 심하게 낼 때는 피하는 것이 맞아요. 맞서면 안 됩니다. 하지만, 남편의 감정이 격해져 있지 않을 때는, 남편에게 분명하게 요구 사항을 말해야 합니다. 비록 남편이 지킬지 아닐지..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남편이 변화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분명히 이야기를 해 둬야 해요. 그래야 나중에 남편이 딴 소리–네가 그렇게 상처 받은 줄 몰랐다- 안 해요. 

조금 극단적인 방법이기는 한데..... 저는 당분간 떨어져서 지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어요. 출가한 딸 집에서 당분간 지낸다거나.... 실제로 이렇게 하는 분들도 종종 보는데요. 그러면 부인은 오히려 더 편하게 잘 지내고. 남편은 힘들어하거든요. 나중에 남편이 조심하겠다고, 스스로 이야기하게 되고.

화를 자주 내는 남자 중에, 내면에는 무력감, 낮은 자존감 문제, 취약성...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오히려 이렇게 약한 부분을 스스로 개방하고, 부인에게 털어놓고 나면, 굳이 화로 자신의 약한 부분을 숨기지 않게 되고, 화로 부인을 지배할 필요가 없어지거든요. 이럴 때, 역할극을 하거나, 빈 의자 대화 같은 것을 해 보면 도움이 많이 돼요. 남편의 마음속에 약하고, 상처 받은 부분에게 말을 거는 거죠.

 

김병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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