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욕실의 온수기는 좋지 않다. 처음엔 뜨거운 물 쪽으로 끝까지 돌려서 틀어도 한참 동안 찬물이 나오다가 어느 순간 서서히 따뜻한 물이 되더니, 갑자기 뜨거운 물이 마구 나온다. 그러면, 또 그때부터는 찬물 쪽으로 틀면 또 금방 찬물이 안 나오고 좀 이따 갑자기 찬물이 나온다. 몸을 담글 만한 적정온도는 양쪽 온도를 한참 왔다 갔다 해야 겨우 맞춰진다.

남녀관계도 이런 식으로 서로의 적정온도를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다만, 온도차가 너무 커서 뜨거운 물 혹은 찬물만 한동안 계속 틀어야 된다면 적정온도를 맞추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 힘들겠다는 생각에 짝사랑을 떠올렸다.

일방적인 짝사랑은 정말 고되고 힘든 일이다. 이는 내 에너지를 소진하기만 하므로, 훗날 정서적 마비나 죽음 상태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 즉, 학습된 무력감(Learned helplessness)으로 설명할 수도 있는데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 어떤 변화나 성과도 없는 그런 경험을 오랫동안 하게 되면, 나중에는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도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마틴 셀리그먼의 개 실험 참조) 시간이 흐르면,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나게 되어 있고 결국 중요한 것은 본인의 선택이다. 옳은 결정은 없다. 다만 나의 결정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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