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iversity of Cambridge


▶ 2005년, 스물세 살의 영국 여성이 교통사고로 심각한 뇌손상을 입었다. 그로부터 5개월 후, 그녀는 잠자고 깨어나 눈을 뜨기만 할 뿐, 지속적인 후각·촉각·시각반응(움직이는 물체를 시선으로 추적하기)을 보이지 않았다. 달리 말해서, 그녀는 식물인간상태(vegetative state)의 임상기준을 충족했다.

2006년 《Science》에 실린 논문에서(참고 1), 한 연구팀은 "fMRI를 이용하여 그녀의 뇌활성을 관찰하면서, 테니스를 치거나 집안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했다"고 보고했다. 관찰 결과는 놀라웠다. 연구자들이 "테니스를 치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라고 요청하자, 뇌의 운동영역(motor areas)이 건강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활성화된 것이다. 이는 그녀가 fMRI 장비 속에 '외견상 무반응 상태'로 누워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인지능력(complex cognition)을 보유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 연구결과는 "그녀를 비롯하여 (그녀와 유사한) 다른 식물인간들이 '숨은 인지능력'을 보유하고 있을 수 있으며, 그런 능력이 - 발견될 수 있다면 - 그들의 의사소통을 돕거나 예후를 향상시킬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 이후로, 전 세계의 연구자와 임상의들은 과제중심 뇌영상화(task-based neuroimaging)를 이용하여 다른 (외견상 무반응 또는 최소의식) 환자들이 도전적인 인지과제(challenging cognitive task)를 수행할 수 있는지를 테스트했다(참고 2). 그러나 그런 (숨은 의식을 찾아내기 위한) 테스트 방법에는 문제가 있었으니, "분석하기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들며 모든 환자들이 접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당신은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지켜보거나 인지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그런 환자들을 효과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라고 웨일 코넬 의대의 니콜라스 쉬프(신경과학; 참고 3)는 말했다.

이제 《Crrrent Biology》 11월 21호에 실린 논문에서(참고 4), 쉬프가 이끄는 연구진은 의식을 탐지하는 손쉬운 방법을 제시했다. 그것은 인간언어에 대한 뇌파도(EEG) 반응을 측정하는 것이다. EEG는 두피에 부착된 전극망을 이용하여 뇌의 전기활성을 특정하는 방법으로, 비용이 저렴하고 fMRI보다 널리 사용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EEG는 병상 옆에서 수행될 수 있어, 접근하기도 쉽다.

그 결과, 일부 뇌손상 환자들이 인간의 언어에 반응하여 나타낸 EEG 패턴은 건강한 사람과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에 정상적으로 반응한 뇌를 가진 환자'들은 'fMRI 검사를 받는 동안 어려운 인지과제를 수행한 환자'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약 「EEG 결과와 숨은 의식 간의 관계」가 더 많은 뇌손상 환자들에서 검증된다면, '언어에 대한 반응을 평가하는 방법'은 '인지능력을 좀 더 조사해야 할 환자'를 구별하는, 경제적이고 접근성 높은 방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획기적인 연구다. 왜냐하면 '숨은 의식'을 보유한 환자를 확인하는 검사방법이 탄생할 수 있음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구팀이 환자의 '숨은 의식'을 증명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언어에 반응한 환자들이 지시사항을 따른 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의 브라이언 엘도(신경과 전문의)는 논평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결과가 후속연구에서 재현된다면, 「EEG 기반 기법(EEG-based technique)」이 일반화되어 전 세계의 의료기관에 보급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심층검사가 필요한 환자를 확인하고, 궁극적으로 그들의 의식회복을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는 덧붙였다.

 

▶ 선행연구에서는 "뇌가 소리의 강도변화를 추적하여 그에 상응하는 전기신호를 방출하므로, 그것을 EEG로 측정할 수 있다"고 제안한 바 있다. 이번 연구에서, 쉬프가 이끄는 연구진은 숨은 의식을 좀 더 간단히 측정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13명의 건강한 대조군에게 다른 사람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낭독 소리를 들려준 다음, 그들의 EEG를 21명의 뇌손상 환자들(이들은 가족 구성원으로부터 자신들의 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의 EEG와 비교했다. 환자들의 의식 상태는 다양해서, 그중 여섯 명은 약간의 의사소통과 운동이 가능했고, 세 명은 식물인간상태에 있었다.

다음으로, 연구팀은 fMRI를 이용하여 환자들 중에서 복잡한 인지과제(예: 손바닥 펴고 오므리기, 수영하기, 테니스 치기)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fMRI 검사에서 예상되는 뇌영역이 활성화된(인지능력이 있음을 시사함) 환자들은 EEG로 측정된 언어반응이 정상범위 내에서 지연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에 반해, fMRI 결과가 전형적인 뇌활성 패턴과 일치하지 않는 환자들은 EEG로 측정된 언어반응이 훨씬 더 지연된 것으로 나타났다.

"fMRI는 비용이 매우 많이 든다. 더욱이 그것은 접근하기가 어렵고 시간과 전문지식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EEG는 다양한 임상환경에서 접근할 수 있다"라고 벨기에 리에주 대학교의 박사후연구원 카미유 샤텔레(참고 5)는 논평했다. "뇌손상 환자들의 상태는 들쭉날쭉하므로, 제대로 진단하려면 일주일 내에 여러 번 측정할 필요가 있다. EEG는 반복적인 측정과 임상 도입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라고 그녀는 덧붙였다.

"심각한 뇌손상의 문제점은, 겉으로 보기에는 전부 똑같아 보이지만 '시간경과에 따른 회복경로', '치료에 대한 반응', '이미 달성된 회복 수준'이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EEG 기반 기법」은 다양성을 분류함으로써 '좀 더 면밀하고 즉각적으로 관찰해야 하는 환자'를 구별해 내는 데 안성맞춤이다"라고 쉬프는 말했다.

"이번 연구결과('언어에 대한 뇌반응'과 '인지능력' 간의 밀접한 상관관계)가 다양한 환자군에 적용될 수 있는지 확인하려면 훨씬 더 많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EEG 기반 기법」의 가장 큰 장점은 비용이 저렴하며 사용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어느 병상에서나 5분이면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라고 쉬프는 설명했다.

 

※ 참고문헌

1.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13/5792/1402
2.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250463
3. http://vivo.med.cornell.edu/display/cwid-nds2001
4. https://doi.org/10.1016/j.cub.2018.10.057
5. http://www.coma.ulg.ac.be/home/chatelle.html

※ 출처: TheScientist https://www.the-scientist.com/news-opinion/researchers-develop-new-strategy-for-detecting-consciousness-65123

 

글쓴이_양병찬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기업에서 근무하다 진로를 바꿔 중앙대 학교에서 약학을 공부했다. 약사로 일하며 틈틈이 의약학과 생명과학 분야의 글을 번역했다. 포항공과대학교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의 바이오통신원으로, <네이처>와 <사이언스>등에 실리는 의학 및 생명과학 기사를 실시간으로 번역, 소개하고 있다. 그의 페이스북에 가면 매일 아침 최신 과학기사를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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