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나도 좀 상담해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일하다 보면, 가족이나 친지의 "내가 최근에 말이지..."로 시작하는 갑작스러운 고민 상담을 접하게 되곤 합니다. 아마 그네들은 가까운 사람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기 때문에, 더 신뢰감을 가지며 흔히 하는 건강 상담처럼 이를 가볍게 여기는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사실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곤혹스러워집니다. 

놀랍게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을 진료하는 일은 금기에 가깝습니다. 물론 '가깝다'는 말은 완전히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가벼운 불안, 불면, 스트레스 상담, 혹은 질환에 대한 일반적인 상담 정도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만 금기시되는 부분은 '진지한' 정신치료적 개입이 동반되는 상담 및 치료 영역입니다. 깊은 상담을 원하는 지인에게 '다른 의사를 소개해 주겠다'는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상대에게 거절을 표하는 일도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간단한 상담과 약 처방이 그리 어려워?', '내가 진짜 이 사람과 친한 게 맞나?' 하는 부정적인 시선도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실망과 서운함을 표하는 경우도 종종 겪게 됩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지인의 직접 진료를 거부하는 것이 원칙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진_픽사베이


정신분석(psychoanalysis)과 치료적 관계(therapeutic relationship), 그리고 중립성(neutrality)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가 창시한 정신분석에서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치료적 관계를 중요시했습니다. 특히 의사에게는 극단적인 중립성을 강조했는데, 이는 의사의 중립성이 환자의 전이(transference)를 조장하고 환자 자신에 대한 점진적인 통찰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즉, 의사가 투명한 거울이 되어 준다면 환자는 그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좀 더 깊고 진실되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는 이치입니다. 감정과 관계가 얽혀들어 가면서 자신의 본모습에 대한 통찰은 점차 늘어나고, 환자의 내면은 서서히 변하게 됩니다. 때에 따라 중립성을 지키기 위해 진료실 안에 의사의 취향이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소품을 배치하는 것도 금기시되었을 정도로 정신분석에서는 환자와 의사 간의 치료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극단적인' 중립성을 지키는 전통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느슨해졌지만, 여전히 정신건강의학과 영역에서는 의사와 환자,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치료적 관계가 중요한 요소입니다. 마음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진심으로 연결된 두 사람의 내적 대화이기 때문이지요. 

정신건강의학과는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 의학의 다른 분야들과 몇 가지 구별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먼저, 정신과 질환과 증상은 겉으로 보이거나 수치로 측정되기 어렵기에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이를 정신과적 면담을 통해 파악하게 됩니다. 간단한 문진과 더불어 혈액 검사, 청진 등을 통해 병의 윤곽을 파악하는 다른 과들과는 다르게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병의 진단, 심각성의 평가 모두 공히 심층적인 면담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현재 파악할 수 있는 현상과 증상에 집중하기보다 과거의 성장 과정과, 삶의 궤적을 함께 파악해 진단과 치료에 활용하게 됩니다. 꽤 긴 시간 동안 환자가 이야기하는 삶의 여러 영역을 청취하고 파악하며, 이를 통합하여 현재 환자가 겪고 있는 고통과 문제의 실마리를 찾아가게 되는 것이지요. 

면담을 통해 문제를 파악하고 이를 치료하는 과정 모두에 치료적 관계는 중요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객관적이면서도 중립적인 시선으로 환자의 문제를 바라보며, 따뜻하게 아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의사도 인간인지라 상대에 대한 감정과 생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데, 자신이 환자에 대해 가지는 편견과 감정으로 치료 과정이 왜곡되는 것을 경계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를 환자가 의사에게 가지는 '전이'의 반대, 즉 역전이(counter transference)라 칭합니다. 결국 치료적 관계는 두 사람의 관계가 아닌, 과거에서 온 감정의 찌꺼기들과 전이, 역전이가 섞이면서 생겨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깊은 내면을 면담으로 드러내고, 이를 치료 과정에 통합해나가야 하는 정신건강의학과의 특성 때문에 치료적 관계는 치료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가까운 사람을 직접 진료하지 않는 이유?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가족이나 지인을 직접 진료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이 때문입니다. 의사의 입장에서,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정보를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참 어렵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미 상대방에 대한 '역전이'가 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 잘 안다고 여길수록 자신도 모르게 색안경을 끼고 그 사람이 이야기하는 과거의 경험들을 걸러 듣거나, 혹은 무시해버립니다. 과거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치료에 중요한 요소가 되는 정신건강의학과 영역에서 큰 제약인 셈이지요. 또, 상대를 너무 잘 알기에 현재의 어려움과 크게 관련이 없는 대목에서도 필요 이상의 감정이입을 하여 치료 방향이 흐려지는 경우도 생겨납니다. 

또, 이야기를 하는 상대도 마찬가지이지요. 가까운 이에게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의 어둠을 이야기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생각과는 다르게 무의식적 방어기제가 고민을 애써 밝은 색으로 포장해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고민 상담은 변죽만 울리다 어색하게 끝나버리게 됩니다. 상담을 하고 나서도 '이 이야기는 괜히 했나, 하지 말걸'하는 마음에 심경이 복잡해집니다. 

이렇듯 '가까운 지인'과 '의사와 환자', 이 두 관계가 뒤섞이면서 치료는 복잡해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 의사는 상대를 비추는 투명한 거울이 되지 못하고 얼룩덜룩하고 지저분한 표면으로 상대를 반영하고, 이를 바라보는 이는 결국 자신에 대한 통찰을 얻을 기회를 놓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는 자신과 지인, 모두에게 불편하고도 안타까운 상황이지요. 가장 가까운 사람의 고민 상담을 해봤다면, 상대가 마음 깊은 곳에 숨겨온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 왠지 모를 불편함을 받았던 경험은 다들 있을 겁니다. 고민 상담도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미적지근하게 끝나는 경우도 많았을 테고요. 이렇듯 치료적 관계의 왜곡은 실제적인 마음의 문제를 파악하고, 평가하며 이를 해결해 나가는 정신건강의학과의 치료 방향을 어긋나게 만들어버립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지인의 고민 상담에 밋밋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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