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강남 푸른 정신과 원장]

 

당신은 완벽주의자(perfectionist)?

완벽주의자(perfectionist). 그들은 매사 완벽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경직된 탓에 일의 효율성은 오히려 떨어진다. 또, 목표 달성에만 매몰된 나머지 많은 것들을 놓치곤 한다. 당연히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좋을 리 없다. 그들은 타인과 자신에 대한 가치 기준이 굉장히 높다. 타인을 평가할 때 능력과 성과를 기준으로 삼고, 자신이 생각한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면 '함량 미달'로만 여겨버리고 냉대한다. 이런 잣대는 가족, 연인, 가까운 친구 사이에도 예외는 아니다. 완벽주의는, 적어도 인간관계에서만큼은 최악의 방해 요인일 것이다.

정신의학의 진단 체계로 사용하는 DSM-5에서는 이러한 성격 특성을 보이는 이들을 성격장애인 '강박성 성격장애'로 분류한다. 융통성이 없고, 절차와 규칙에 집착하며 자신이 감정표현을 하지도, 타인의 감정 표현을 용인하지도 않는 성격.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반듯한 외모에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조금은 재수 없고 냉담한 캐릭터를 떠올린다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고 매사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 탓에 물질적 '성공'의 기준에서는 남들보다 한 발 더 앞서 있는 경우가 많지만, 자신은 물론 타인들의 실패와 실수를 허용하지 않아 주변에 사람이 모이지 못한다.
 

사진_픽사베이


완벽주의, 그 뒤에 감춰진 나약함

사실, 완벽주의자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는 경우가 많다. 매사 삶에서의 실제적인 완벽함을 추구하는 일들의 기저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다. 그런 의미에서 완벽주의는 내적인 불안을 가리는 갑옷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위압적이고 화려한 갑옷 안에는 몸을 웅크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어린아이가 있다.

인간의 성격은 오랫동안 많은 경험을 거치며 숙성된다. 우리의 무의식 안에는 성장기에 겪었던 불안, 두려움, 고통 등에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해 일종의 방어기제가 형성된다. 해결되지 않은 내부의 문제들은 이러한 방어기제도 성격의 일부로 통합되어버리게 하는데, 어떤 이들은 이를 잘 처리하지 못하고 누가 봐도 매사 신경질적이고 위태로운 반응을 보인다. 또 다른 이들은 내적인 두려움에 대해 끊임없이 무시하고, 회피하는 식으로 대처한다. 강박성 성격장애의 성격 특성을 보이는 이들은 내적 불안에 대해, 조금의 위험 요소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식의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가로막는 완벽주의

완벽주의자들이 보이는 냉담하고 경직된 모습은 일견 '재수 없어' 보이기 쉽다. 자신에게 하는 것처럼 타인에 대한 기준이 엄격하여, 약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타인을 대하는 그들의 머릿속에는 흑백논리가 작동하여 자신의 '기준'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나약하고 뒤쳐진 존재로 여기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기에, 완벽주의자의 기준에 들어가는 길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듯 좁을 수밖에 없다. 또, 그들에게 사사로운 감정은 사치일 뿐이기에 감정 또한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결국, 완벽주의자들은 고립감을 느끼게 되고, 고립(isolation, 감정을 따로 떼어 놓는 듯 감정에 무뎌지는 방어기제)이 익숙해지는 것이다.

완벽주의자들의 상반된 내면도 인간관계를 가로막는 요인이 된다. 겉모습과 달리, 완벽주의자들의 내면은 결핍과 취약함으로 위태로운 상태다. 성장 과정에서 쌓아 올린 두려움, 이를테면 '나는 머저리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볼 거야, 결국 내가 모자란 사람인 걸 알게 될 거야'와 같은 왜곡된 믿음은 외면적 완벽함을 추구하게 하는 동인이지만, 타인과의 관계를 회피하도록 만드는 결정적 원인이 되기도 한다. 내부에 오랫동안 쌓여온 타인과 다른 나, 타인보다 모자란 자신에 대한 자기상이 인간관계를 괴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결국, 완벽주의의 내면과 외면 모두 인간관계에 독(毒)이 될 수밖에 없다.

 

다시, 새로운 관계를 열어가기 위해서

완벽주의자는 이미 속도를 높인 열차처럼 앞만 바라보고 직진하려는 관성을 가진다. 그들에게는 앞에 보이는 것들에 적절하게 대처하고,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이 중요할 뿐 거쳐 간 정류장이 몇 개인지, 그곳의 풍경이 어떠했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외적으로, 업무나 기능적 측면에서는 완벽하기 때문에 자신을 바라보고 통찰(insight)이 생기기는 쉽지 않다. 또, 내부에 관심을 기울이는 순간 모래성 같은 자기(self)가 허물어질 것 같은 느낌에 자신의 삶과 내면을 회피하려는 무의식적 방어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완벽주의자의 변화의 첫 출발점은 최근에 겪은 극심한 고통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심하게 고립되거나, 업무에 과도한 에너지를 쏟은 나머지 번아웃(burn-out) 되고 나서야 자신의 문제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삶의 전환점이 우연찮게 찾아왔다면, 그때가 바로 차갑고 두터운 갑옷에 덮인 내면 깊은 곳의 '나'를 만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자신이 그토록 높은 기준을 가지고, 고립감을 애써 무시하고 살아왔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의 삶을 되돌아보자. 성장 과정에서의 결핍감,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나름의 무의식적 노력은 아니었을까? 내면의 취약함을 애써 외적인 성취로 덮으려 했던 건 아닐까? 당신은 그리 나약하지 않다. 내면의 결핍감, 취약함, 두려움은 사실 성장 과정에서의 학습의 경험일 뿐이다. 어린 시절 학대를 당했던 아이들의 공통점은 정작 학대에 대한 분노가 학대자가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한다는 것이다. 완벽주의자의 두터운 갑옷을 만들게 한 성장 배경은, 사실 나약한 아이가 뭘 어찌해볼 수 없었던 경험들이었을 뿐이다. 자신의 삶을 곱씹고, 애써 외면했던 두려움을 마주하고 흘려보내며, 이를 애도하는 과정에서 내면이 더 단단해질 수 있다. 마음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외로운 아이에게 손을 내밀어보자. 매일 감정을 담은 일기를 쓰는 것도 좋은 실천 방법 중 하나다. 

일상에서의 행동 변화들도 뒤따라야 한다. 매사 자신이 고삐를 틀어 쥐고 통제하려 하고 있는가? 완벽주의가 삶을 뒤덮고 있다는 신호가 느껴진다면, 빨간 불이 들어온 것이다. '우선 멈춤' 하자. 그리고 자신의 업무와 관련된 이들에게도 권총 손잡이를 쥐여주자. 타인에 대한 높은 기준은 타인과 나누고, 함께 하는 일들이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타인에게 칭찬하는 연습도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Good'과 'Bad' 사이의 스펙트럼 사이 어딘가 있지 않은가. 'Good'에만 칭찬하기보다 'Not Bad'에 격려와 칭찬을 건네보자. 타인에 대한 칭찬은 자신을 향한 엄격한 잣대도 무너트릴 수 있다. 그렇게 작은 균열이 모여 큰 변화로 이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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