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신문 : 신재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사연) 

안녕하세요? 저는 직장 생활한 지 12년 정도 된 직장인입니다. 다른 부서에서 10년 넘게 근무하다 올해 새로운 부서로 발령 나서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데요. 새로 바뀐 부서의 업무가 너무 힘드네요. 매번 능력이 부족한 거 같아서 자괴감도 들고, 그러다 보니 아침에 출근하는 게 두렵고 이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어요.

쉬는 날이면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항상 업무 생각이 머리에서 맴돌고 그러다 보니 가족들과 있으면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는 경우가 많아요. 휴직도 생각했었지만 경제적 이유도 있어서 포기했고요. 자신감을 갖고 일하고 싶은데 새로운 오더가 떨어지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고 머리가 하얘지네요.

저만 이런 걸까요? 주위에 동료들 보면 일도 잘하고 쉽게 쉽게 일 처리를 하는 거 같은데…. 부럽기도 하고 제가 모자란 것 같아서 마음도 불편합니다. 매일 야근에다 주말에도 출근하니까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도 없고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되나 싶기도 하고. 정말 이러다 우울증 걸릴 거 같아요(이미 걸렸는지도 모르겠네요ㅠㅠ)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진_픽셀

 

답변) 

최근 바뀐 부서에서의 적응 문제로 힘들어하시는군요. 인간은 누구나 새로운 환경, 새로운 관계에 대한 불안을 조금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환경을 받아들이는 양상에 따라 불안이 오래가기도 하고, 잠깐 나타났다 금세 사라지기도 하지요. 그러나 인간이라면 공통적으로 ‘낯섦에 대한 불안’이 본능적으로 나타납니다. 심한 불안, 불면, 과도한 스트레스가 바뀐 환경과 더불어 나타날 경우 정신과에서는 적응장애(adjustment disorder)라는 진단을 붙입니다. 이름 그대로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가 가장 큰 고통의 원인이 된다는 말이지요. 

『변화는 누구에게나 힘들다』

이 말을 제일 먼저 마음에 새겨두셨으면 합니다. 질문자님을 가장 힘들게 하는 생각을 살펴보면, '다른 사람들은 잘하는데 나는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이 부럽다'라는 생각에서 '나는 제대로 못 해내고 있다' '내가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다'라는 식으로 화살을 자신에게 돌린 채 나쁜 방향으로 빠져드는 경향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생각들에는 왜곡이 많아요. 왜곡된 생각은 행동, 기분, 신체 감각에도 영향을 미쳐 고통을 주게 됩니다. 사소한 업무 지시에도 위축되거나, 초조하고, 불안감이 느껴지는 식이지요.

주위의 동료들이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지만, 그 사람들도 처음에는 똑같이 힘든 시간을 거쳤을 겁니다. 당장 질문자님께서 12년 전 처음 직장에 들어왔을 때의 모습도 그렇지 않았을까요? 실수투성이에, 항상 긴장하고 있던 모습에서 어느새 직장에 잘 녹아들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셨으면 합니다. 부서를 이동한 후 업무량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분명 현재의 부서에서도 능력을 잘 펼치실 수 있게 될 겁니다. 지금은 낯섦을 견디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강력한 스트레스 해소 수단이나, 가까운 친구나 연인과의 마음을 터놓은 대화 등을 해보는 것이 좋아요. 짧은 시간이라도 자신의 기분이 가장 '업!'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직장은 원래 힘든 곳이라는 것도 인정할 필요가 있어요. 12년간 몸담았던 부서를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더 그렇습니다. '내가 잘 못하는 것'이 아닌, '이 부서가, 그리고 직장이란 곳은 원래 힘든 곳'으로 생각하셔야 해요. 지금의 고통은 내 탓이 아닌, 바뀐 환경 탓인 거지요. 결코 질문자님이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닐 겁니다.

 

또 한 가지, 업무에 대한 과도한 부담으로 스스로 자신의 시간을 줄이는 건 아닌가 염려가 되네요. 업무에 대한 스트레스가 과도할수록 '업무와 휴식의 분리'는 꼭 필요합니다. 절대적인 업무량이 많더라도 하루 1-2시간은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도록 하세요. 무엇인가에 몰두할 수 있는 만들기, 악기 배우기 등등 차분한 분위기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좋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스스로 보상을 주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업무가 힘들고, 물질적 - 심리적 보상이 뚜렷하지 않은 경우 일에 대한 두려움이나 거부감이 더욱 커지기 마련이거든요. 월급은 통장에 찍힐 뿐이고, 정작 자신은 업무에 깔려 허둥댄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죠. 위에서 말씀드린 휴식도 보상이 될 수 있겠고, 조그맣게나마 평소 갖고 싶었던 것, 좋아했던 것을 누릴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글에서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만약 불면, 우울감, 죄책감, 불안감이 계속해서 삶을 억누르고, 이 때문에 업무나 삶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여 정확한 평가와 상담, 적절한 치료를 받아보기를 권유드립니다. 우울증은 적절한 때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문제를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지금은 낯섦을 견뎌야 하는 시간일 뿐입니다. 낯섦이 익숙함으로 변하는 때는, 언제나 그렇듯 찾아올 거예요. 부디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며, 질문자님을 먼 곳에서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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